Y의 비극 -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
어느날, 뉴욕만의 한적한 바다에서 처참한 시체가 발견됩니다. 조사결과 밝혀진 시체의 정체는 미치광이 해터 집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치광이 모자”의 패러디)으로 알려진 부호 해터 가문의 가장인 요크 해터로 방수 지갑안에 “나는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자살한다”라는 짤막한 유서도 있었죠. 그리고 몇 주 후, 해터 집안의 딸인 벙어리이자 장님이고 귀머거리인 루이자 해터의 독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수사에 나섭니다. 내부의 인물 누구든 동기가 있고, 독을 넣을 수 있었던 상태.
어느날 밤, 실질적인 해터 가문의 주인인 에밀리 헤터 여사의 살인과 루이자 독살 미수가 다시 발생하고 드루리 레인은 친구 샘 경감의 요청으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됩니다...
저는 사실 X,Y,Z 시리즈 중에서 Z부터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Z”에 굉장히 실망했던 터라 이 작품에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읽다보니, 과연 엘러리 퀸!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위의 줄거리 처럼 일단 콩가루 부잣집의 살인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악과 음모의 상징 같은 콩가루 저택에서 살인이 달랑 한번 (두번이긴 하지만 두번째는 응징..에 가까우니) 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인데 일본풍 (특히 “아마기 세이마루” 풍) 이라면 거의 전가족이 몰살당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긴 장편을 흥미진진하게 끌어나가고 있으며 특유의 “독자와의 대결”도 공정한, 정통 추리소설로서의 미덕을 잃지 않습니다. 복선이나 트릭 역시 큰 줄기에서 파생된, 완벽한 형태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범인역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는 것이겠죠. 발표당시에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범인이었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충격이 많이 퇴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서 자체가 너무 상식 가능한 선인 것 같습니다. 중간 부분의 루이자의 증언으로 거의 밝혀지거든요… 사실 이 이후의 후반부는 레인이 범죄의 동기나 실제로 이미 죽어버린 “실체”를 찾기 위한 활동이지 범인을 드러나게 하는 트릭면에서는 별 비중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분명한 정보를 두루뭉실하게 표현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삽화나 사진 등으로 직접 눈으로 보게된다면 보다 쉽게 진범을 알아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은 현장 묘사에 의한 트릭이 많아서 공감하기 쉽지 않았어요. 번역본이라 더 심하게 느껴진것 같기는 한데 특히 “만돌린”을 흉기로 쓴 타당성에 관한 묘사는 영문학적인 지식 없이는, 그래서 국내 독자에게는 조금 이해 불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또 탐정인 드루리 레인 역시 불만스러웠어요. 원래 세익스피어극의 명배우 출신으로 부유하다는 설정까지는 이해해도 왜 귀머거리라는 설정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귀머거리라서 더 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당시, 추리소설 황금기의 명탐정들이 워낙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던 탓에 나름 색다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인 것은 알겠지만 단순한 설정에 불과하여 반세기 이상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목 역시도 불만스럽습니다. 말장난 같은데 이 “Y”라는 제목의 의미가 전~혀! 거~의! 내용과 상관없는 부분이거든요. 차라리 단편 “미친 티 파티” 처럼 아예 앨리스를 가져다 쓴 제목을 붙이던가…. 일부러 X,Y,Z로 글자를 맞추고 싶어한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허나 이러한 단점들은 소소할 뿐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정통파 고전의 품격을 갖춘 명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른바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라는 명성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번역도 괜찮은만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PS : 전 이렇게 순위 매기는 것,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객관적 근거 없는 "세계 3대 어쩌구..."하는 말에는 거부감이 있네요. 사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나 “환상의 여인”은 정통파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거리가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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