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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2

라스트 사무라이 - 에드워드 즈윅

 


조국과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터를 누볐던 네이든 알그렌 대위(탐 크루즈).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세상은 변했다. 용기와 희생, 명예와 같은 군인의 덕목은 실용주의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가 참여했던 전쟁의 명분조차 퇴색해버리자 알그렌은 허탈감에 빠진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선 또 한명의 무사가 가치관의 혼란 속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황제와 국가에 목숨 바쳐 충성해온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자 카츠모토(켄 와타나베)가 바로 그. 미국이 신문명의 조류 속에서 변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던 그 시기에 일본의 전통 문화 역시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개혁의 홍역을 앓고, 새롭게 도입된 철도와 우편제도는 사무라이가 수세기 동안 목숨 걸고 지켜온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츠모토에게 사무라이의 정신이 없는 삶은 곧 죽음이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 알그렌과 카츠모토, 이 두 군인은 서구 열강의 신 문물에 매료된 일본 제국의 젊은 황제가 신식 군대 조련을 위해 알그렌을 초빙하면서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서구화를 가속화 시키기 위해 황제의 측근들은 사무라이 집단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알그렌은 자신이 뜻밖에도 사무라이에 대해 연민과 동질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신념과 무사정신으로 무장한 사무라이의 모습이야말로 한때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두 시대와 두 세계가 거세게 충돌하는 이 낯선 세계에 던져진 알그렌. 그는 군인의 명예심 하나로 자기의 앞길을 헤쳐나가는데…


요약하자면, 인디언 살육에 앞장선 추억땜에 술에 절어살던 알그렌 대위가 폼나게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끼어든 사무라이, 부시계급의 기득권 확보를 위한 남의 나라 전쟁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이 남의 나라에 있던 사무라이라는 소재를 미화한 방식이 엄청납니다. 근면성실에 명예를 존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을때도 시를 읆어주고 두목 카츠모토는 어디서 배웠는지 알 수 없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특히나 전투에 패한 후에 할복하여 죽어가는 카츠모토를 향해 군대가 무릎을 꿇는 장면! 에 이르러서는 실소가 나오더라고요. 이게 무슨 만화도 아니고… 끝 부분에는 천황조차 사무라이 정신에 감화되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 사절을 꾸짖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영어를 잘 했던가? 마지막에 알그렌이 켄신처럼 마을에 돌아가 숨어살았다는 설정까지 살짝 보여주며 영화가 막을 내립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알그렌. 그 동네 남자들은 거의 다 죽었으니 여자들은 모두 너의 차지가 되겠구나.

일단 이 영화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톰 크루즈를 기용한 일본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까지 미화시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더라고요. 우리도 비슷한 시기에 유학의 거두로 을사조약에 항의하여 제자와 친구 유생들을 데리고 70대 노령에 궐기한 의병대장 최익현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이 계신데 고작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고자 내란이나 일으킨 인물을 모델로 이렇게 남의 나라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다니 일본이 부럽습니다.

영화에서 사무라이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카츠모토는, 아마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델로 한 것 같습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천황에게 힘을 실어 주었지만 구 귀족층을 대표하며 개혁 관료파와 대립하던 인물이었죠. (영화의 오무라 대신은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지였던 개혁파 관료 오쿠보 도시미치를 모델로 한 듯 합니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장한 것이 “정한론”, 즉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만큼 우리로서는 달가운 인물은 아니죠. 이 영화의 전쟁은 관료파의 독재를 타파하자고 일어난,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동한, 1877년의 “세이난 전쟁”, 마지막으로 사무라이(부시)계급이 최후의 저항을 했던 이 전쟁을 무대로 한 것 같습니다. 사무라이 계급의 권한 철폐, 단발령 등의 시기도 1871년이라니 얼추 시기가 비슷하네요. 하지만 모델과 시기를 빼고는 거의 전부가 왜곡된, 미화된 역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도 돈은 많이 들인 영화답게 여러 세트나 배경묘사, 화려한 의상들, 그리고 “글로리”같은 전쟁영화를 찍었던 에드워드 즈윅 감독 답게 몇 번의 전투장면은 볼 만 합니다. 톰 크루즈나 다카쿠라 켄의 연기도 무척 좋고요. 무엇보다 다카쿠라 켄이라는 배우의 카리스마는 끝장입니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 한대로 이야기의 무대나 설정 같은 것이 서양애들한테는 모를까… 우리한테는 그다지 와 닿을 수 없는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말로 하자면…^^ “후까시”가 잘 나타나 있는 영화랄까요… 보는 동안은 제법 즐거웠지만 보고 난 후에 가슴에 담아둘 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군요. 저는 알그렌 보다는 차라리 “켄신” 녀석이 더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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