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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엘러리 퀸 / 정영목 : 별점 2점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4점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던 백만장자 노부인 애비게일 도른이 수술을 살해당한다. 범인은 병원 내에 있는건 확실하지만 수사는 난항에 빠지고, 주요 사건 관계자였던 외과 과장 닥터 프랜시스 재니까지도 살해된 채 발견된다. 실마리를 잡지 못해 괴로워하던 엘러리는 친구인 네덜란드 병원 의료과장 존 민첸이 한 말 덕분에 범인을 추리해 낸다.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입니다. 국명 시리즈다운 본격 추리물로,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 게임이 펼쳐집니다. '독자에의 도전'도 적절한 위치에 삽입되어 있고요.

공정하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더해, 중요 단서는 엘러리 퀸이 중요하다고 콕 짚어 주기까지 하니까요. 때문에 추리 자체는 비교적 쉽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31년에 발표되었던, 비교적 초기작인 탓이겠지요.
가장 중요한 단서라고 언급하는 '구두'가 대표적입니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이미 엘러리는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구두 혀가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며, 닥터 제니의 구두 사이즈를 물어봅니다. 키가 165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닥터 제니의 발 사이즈도 245밀리미터인데, 발견된 구두는 240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았지요. 이를 통해 독자는 범인은 발이 240밀리미터보다 작은, 아마도 여성일거라는 추리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구두 끈을 수선했던 반창고도 마찬가지에요. 닥터 민첸이 "외부인들은 아무도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반면, 병원에서 이런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지"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범인은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일 거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동기도 쉽게 드러납니다. 애비게일 도른이 죽으면 이득을 얻는 사람은 많지만, 닥터 재니가 죽음으로써 이득을 얻는 사람은? 닥터 재니의 아들로 밝혀진 토머스 스완슨밖에 없습니다. 책을 함께 쓰고 있다고 밝힌 닥터 존 민첸이 책을 오롯이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지만, 엘러리 퀸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 구태여 살인이라는 무리수를 둘 이유는 없으니까요. 즉 범인은 토머스 스완슨과 관계가 있는, 네덜란드 기념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인 거지요.

물론 그냥 이렇게 사건이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트릭도 적절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범인인 루실 프라이스가 어떻게 닥터 재니로 변장한 범인과 함께 범행 시각에 함께 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트릭으로, 그녀가 닥터 재니로 변장하고, 목소리는 자기 목소리만 내었다는 간단한 1인 2역 트릭이지만 꽤 효과적으로 보였습니다. 트릭은 언제나 간단하면 간단할 수록 설득력이 높은 법이지요.
범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추리쇼도 멋졌습니다. 속기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루실 프라이스를 모든 수사 관계자가 모여있는 범행 현장에 불러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메모를 쓰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을 눈치 챈 퀸 경감이 "‘도른 부인과 닥터 재니의 살인자는…….’ 토머스, 이 여자를 잡게! ‘루실 프라이스입니다!’”라고 외치는데, 셜록 홈즈의 <<주홍색 연구>>에서, 짐을 가져온 마부를 붙잡고 범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나중에 추리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그렇게 쉽고 단순하지만은 않고, 나름 여러가지 변수를 생각해서 추리를 했다는걸 잘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셜록 홈즈만큼 멋지지고,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주요한 부분에서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티가 물씬 나는 탓입니다. 가장 작위적이었던건 '사라진 캐비닛' 입니다. 원래 닥터 재니가 살해된 현장에는 캐비닛이 있었습니다. 등 뒤 캐비닛으로 향하는 사람을 닥터 재니가 의심하지 않아서 살해당했고, 이로써 닥터 민첸이 초반에 말했던 "그 기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재니와 나 그리고 재니의 조수인 프라이스 양뿐일세. 프라이스 양은 훈련받은 간호사인데, 일반적인 사무를 본다네.” 를 통해 범인이 드러나는 중요한 단서죠. 그러나 캐비닛의 존재는 마지막에서야 밝혀집니다. 함께 책을 쓰던 닥터 민첸이 모든 관련 서류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라면서요. 서류를 없앨 때 '캐비닛' 째로 가져가는게 말이나 될까요? 게다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서류가 아니라 휴지 한 장을 가져가도 문제가 될 상황인데 캐비닛 째로 무언가를 가져가서 없앴다? 현장을 지키던 경찰이 허수아비도 아니고,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설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캐비닛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책상 틈을 통과하여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는데, 시체를 놔 둔 채로 캐비닛을 어떻게 치웠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또 앞서 구두와 반창고 때문에 범인이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라는건 이미 추리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병원에 있던 모든 관계자,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인적 사항을 낱낱이 파헤치는게 경찰의 할 일인데, 도대체 경찰은 뭐 하는지, 엘러리는 왜 이야기를 안 해 주었는지 모르겠어요.
두 번째 사건이 벌어진 마침 그 시간에 모든 주요 관계자들 알리바이가 증명되지 못하는 것도 작위적이며, 제목 역시 마찬가지에요. '네덜란드' 는 이야기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사건 무대가 된 병원 이름이 네덜란드 기념 병원일 뿐이니까요. 국명 시리즈는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네요.

아울러 전개도 불만스럽니다. 수상한 용의자들을 잔뜩 만들기 위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는건 억지스럽고 짜증만 났어요.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 앞에서 모든 주요 관계자들이 뻔뻔하게 자신이 했던 일, 만났던 사람은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주하는에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들이 사실만 이야기했어도 절반 분량의 이야기는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이런 억지는 고전 본격 추리의 황금기 시절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기는 합니다. <<비숍 살인사건>>에서 처럼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묘사였습니다.
등장인물들도 억지스러워요. 정신나간 인물들이 태반이에요. 정신병자이자 광신자인 사라 풀러, 누이 돈을 축내며 살아가는 기생충 헨드릭 도른은 고전 본격물에 등장하는 짜증나는 용의자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였고, 기묘한 합금을 발명한다는 헛똑똑이 모리츠 크나이젤은 엘러리 퀸이 호적수를 만났다 운운하면서 띄워줬는데, 바로 다음에 자신이 살인자의 목표라는 허황된 추리를 떠벌여서 왜 등장해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더군요. 아이가 죽고, 산모도 곧 죽을거라는 잔인한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는 산부인과 의사 닥터 펜니니도 사악함만 기억에 남을 뿐 등장할 이유가 없던건 마찬가지고요.
사라 풀러를 강간하다시피해서 훌다 도른을 낳게 한 내과 의사 루시우스 더닝은 그야말로 최악의 쓰레기였는데, 적절한 응징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엘러리 퀸이 인물 묘사에 약하기는 한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공정함' 측면에서는 백만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본격 추리물로서의 묘미를 잘 갖추고 있지만, 추리 자체는 추리 퀴즈 수준인데다가 작위적인 전개와 함량 미달의 인물들로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국명 시리즈는 저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세상에 읽어야 할 추리물은 많으니, 국명 시리즈는 이제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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