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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6

최후의 일격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1.5점

최후의 일격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9년 겨울, 작가로 갓 데뷔한 엘러리는 크리스마스부터 공현절까지 12일간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어 인쇄업자 아서 크레이그의 저택으로 향한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젊고 매력적인 시인이자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이기도 한 존과 그의 약혼녀, 허영 가득한 여배우, 출판업자인 댄 프리먼 등을 비롯해 모두 12명.

모두가 파티 분위기로 들떠 있는 사이 저택은 폭설로 고립되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나 초대 손님들에게 열두 별자리를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넨다. 그리고 얼마 후, 초대받지 못한 13번째 손님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엘러리 퀸의 마지막 장편.
말년의 엘러리 퀸이 고전 본격물의 향취를 되살리고자 의욕적으로 도전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부터가 엘러리 퀸 데뷰작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 직후니까요. 작품은 고전 본격물에 굉장히 충실합니다. 클로즈드 서클에 가까운 무대 설정과 부유한 주요 등장인물들, 기묘한 범행과 단서들 모두가요. 모든 단서는 공정히 제공되며, 심지어 '독자에의 도전'도 삽입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 인용했다는 형태로 말이죠.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망작입니다. 고전 본격물의 단점만 집대성해 놓은 결과물이에요.

고전 본격물의 존재 가치가 멋진 트릭과 기발한 설정에 있다는건 분명합니다. 어떤 작품은 트릭과 설정만으로도 모든 단점이 덮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런 설정들은 '비현실성;을 강화한다는 문제가 큽니다. 기상천외할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고요. 그나마 이런 설정들이 최소한의 현실성을 가지려면, 사용되거나 그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라도 명확해야 합니다. 작위적인 상황 연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의 예를 들자면, 범인이 피해자의 목을 잘라 T자 형으로 매단 이유는 피해자인척 하기 위해서 벌인 행동이었죠. 작위적이기는 하나, 말은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트릭도 변변치 않고, 설정들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대표적인건 범인이 12일에 걸쳐 20가지 선물을 예정된 피해자에게 보낸다는 설정입니다. 선물들은 폐니키아 알파벳이 유래한 사물들을 의미했습니다. 첫번째 '황소'는 알레프, A, 두번째 집은 베스, B 라는 식으로요. 이 경우 마지막 Z는 단검인 자인을 뜻하죠.
하지만 범인은 스무번째 선물이 전달되는 마지막 날, 단검으로 존을 살해한다는걸 미리 알리기 위해 선물을 보낸게 아닙니다! 범인 아서 크레이그는 존을 꼭 죽였어야 했어요. 파산을 막기 위해서요. 누군가 존의 죽음을 막거나, 자기 범행을 멈추어 주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선물을 보냈을까요? 이유랍시고 나오는건, 명탐정 엘러리 퀸이 선물은 페니키아 알파벳이고, 선물 카드 뒤에 그려진 그림은 교정용 기호를 쓴 거라 편지를 보낸건 이쪽 분야에 정통한 인쇄업 종사자 아서 크레이그라고 추리해내기를 원했다는 겁니다. 너무 뻔한? 단서라서 명탐정은 아서 크레이그는 진범이 아니고 누명을 쓴 거라고 주장해 줄 걸 기대했다면서요.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어요. 이러니 명탐정들이 현대의 비웃음거리가 된 겁니다...
차라리 피해자만 아는 일종의 기호로 피해자의 두려움을 가중시키려고 했다던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트릭을 알아채서, 자신의 범행을 멈추어 줄 것을 기대했다던가, 범인이 페니키아 알파벳에 집착하는 미치광이였다는 이야기가 조금 더 나았을 겁니다. 딱히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 속 설정보다는 말이 됩니다.

애초에 아서 크레이그가 선물을 보내면서, 열 두명이나 되는 손님이 모인 저택에서 12일 동안 파티를 즐기면서 시간을 끌 이유도 없습니다. 언제든 존을 죽이면 되요. 사고로 위장해서요. 실제로 작 중에서도 존은 2번의 큰 사고 - 승마 중 낙마, 과음 후 계단에서 추락 - 을 겪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범죄를 저지를 경우, 유산이라는 동기 때문에 의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기 부분은 선물을 보낸 뒤 살해해도 어차피 똑같습니다. 구태여 복잡하고 번거롭게 단서만 늘린 셈이에요. 게다가 아무리 자기 저택이라지만, 경찰마저 상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려 12일 동안 몰래 선물을 놓아둘 수 있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선물을 놓아두다가 잡혔다면 어쩔 생각이었을까요?

전개와 설정도 엉망입니다. 존3가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협박하는 장면은 볼썽사나울 지경입니다. 뭐 프리먼의 인쇄소를 손에 넣고자 했던건, 돈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허나 롤랜드 페인을 협박해서 존1이 쓴 시집에 대한 호평을 얻고자 한 건 설명이 안됩니다. 스스로가 존1이 될 생각이었을까요? 협박했다는 사실을 존1에게 숨긴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건 마찬가지고요. 물론 협박을 한게 존 1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협박대로 인쇄소와 시집에 대한 호평을 손에 넣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마디로 존을 죽이고 싶은 용의자를 만들기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협박을 한 건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되고 선물이 보내지고 난 이후이니, 이 둘을 용의자로 보기도 힘들어요.

아울러 작품 속 경찰들은 정말로 무능했습니다. 사건 이후 아서 크레이그의 재산 흐름만 확인했어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건 별로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이 정도 수사도 하지 않고 미해결 사건으로 덮었다?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아예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존의 쌍둥이 형제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사실 존은 '세쌍동이'여서 존 2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나름의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살아있는게 존 1이냐 존 3이냐는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되고 있고요.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평가를 끌어올리기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제 정말 엘러리 퀸은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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