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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금빛 눈의 고양이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금빛 눈의 고양이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중간중간에 놓친 권이 있어서 제가 읽은 걸로는 세 권 째네요. 언제나처럼 4편이 아니라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작 중 <<열리지 않는 방>>은 굉장했습니다.. <<벙어리 아씨>>도 성내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은 꽤 볼 만 했고요.

그러나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덧붙여진 설정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몰래 듣는 역할을 넘어서서, 이야기를 오치카와 함께 듣고 난 뒤, 관련된 그림까지 그린다는 설정 처럼요. 애초에 오치카가 괴담을 듣게된 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미지로는 부잣집 도련님이자 한량으로 괴담은 재미삼아 들을 뿐이에요. 이래서야 시리즈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심지어 이번 권 결말에서 오치카가 시집을 가게 되어 도미지로가 공식적으로 괴담을 듣는 역할을 물려받게 되는데, 더 이상 시리즈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외에도 이전 권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들, 소품들이 많아서 별로 무섭거나 섬찟하지도 않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이전부터 반복되어왔던 문제인데, 뻔한 설정이 많고 의외성 부족하다는 단점도 여전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열어서는 안 되는 방>>은 아주 좋으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열어서는 안 되는 방>>
인기밥집 돈부리야의 주인 헤이키치가 흑백의 방을 찾아와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원래 철물상인 미요시아의 막내 아들로 부모님과 3남 3녀로 이루어진 대가족이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헤이키치가 10살 때 소박맞고 집에 돌아왔던 누님 오유가 아들이 보고 싶어서 소금을 끊고 애매하게, 하지만 절실하게 기원한 틈에 요물이 파고 들고 말았다. '행봉신'이라 자칭한 요물은 집 골방에 자리잡은 뒤, 소원을 이루려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가족 일부의 일탈이 시작되고, 행복했던 대가족은 헤이키치를 제외하고 모두 목숨을 잃고 마는데...


악마나 요물이 사람의 욕망을 가지고 논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바로 전편의 <<오쿠라 님>>도 비슷한 설정이었지요. 하지만 <<오쿠라 님>>은 비젠야를 도와준건 맞는 반면, 이 작품의 행봉신은 소원을 빈 사람에게 비참한 말로를 가져다 준다는, 전통적인 재앙신 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뻔하지만은 않습니다.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덕분입니다. 행봉신을 통한 소원 성취가 비참한 말로를 맞는 두 가지 이유처럼요. 첫 번째는 '등가교환' 이에요.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간과합니다.
두 번째는 '소원이 애매하다'는걸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장녀 오유가 이혼당한 뒤, 시댁에 빼앗긴 아이를 보고싶다는 소원입니다. 어떻게 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이 그냥 아이를 돌려달라고 빌었고, 행봉신을 집 안에 끌어들인 죄책감에 자살하자 아이가 돌아오게 되었다는 결말이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비열하게 이용해서 무조건 최악의 결과를 만드는 술수에 걸려든 셈이죠. 다른 가족들의 소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글을 읽으니 로또 당첨된 사람들 말로가 좋지 않다는 뉴스가 떠오릅니다. 비슷한 이치인것 같아요. 요행을 바라지 말고,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게 맞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네요. 하지만 이왕 살 거라면, 막연히 1등을 바라지 말고 1등이 된 뒤 어떻게 할 지 계획을 잘 세워두는게 바람직해 보이고요.

여튼 오랫만에 괴담이라는 주제에 충실했던 작품이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행봉신에 의한 행복했던 대가족의 파멸 과정은 충분히 섬찟했어요. 에도라는 시대 상황과 소원들을 맞물려 묘사한 솜씨도 일품이었습니다. 설정이 뻔하고 결말이 좀 시시했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다 용서가 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벙어리 아씨>>
데릴 사위인 종이 도매상 미노야의 후사노스케가 친모 오세이를 모시고 흑백의 방에 찾아왔다. 오세이는 귀신을 부르는 '몬모 목소리'의 소유자로, 자신이 젊었을 때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몬모 목소리 때문에 고향인 아사히 마을을 떠난 뒤, 이런저런 경험 끝에 영주 측실 딸 가요히메의 요강담당 하녀가 될 수 있었다. 오세이는 성에서 선대 영주의 장자 잇코쿠의 망자와 친해졌고, 잇코쿠가 때문에 가요히메가 목소리를 잃었다는걸 알게되었다. 그래서 잇코쿠를 둘러 싼 죽음의 진상을 알아낸 뒤, 잇코쿠가 성을 떠나 성불하고 가요히메가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데....


귀신이 잘 꼬이는 <<백귀야행>>의 리쓰를 비롯 (몇 권까지 읽었더라....), '귀신을 부르는 체질'이라는 설정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목소리'가 귀신을 부른다는 설정으로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목소리는 단순한 설정 수준에 그칩니다. 잇코쿠가 죽은 이유를 알아내고, 성불시키는 과정에서 몬모 목소리의 역할은 별로 없거든요. 오히려 몬모 목소리로 귀신이나 망자, 요괴를 불러내도, 오세이를 도와주는 쪽이라 딱히 저주나 괴로운 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수호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 이래서야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그래도 잇코쿠의 죽음을 둘러 싼 진상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잇코쿠는 선대 영주의 장자이자, 측실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실이 아들 구니카즈를 낳자, 성은 잇코쿠파와 구니카즈파로 쪼개져 다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정실은 에도에 거주하고, 측실은 현지 성에 거주하던 탓이었지요. 그런데 다툼 중 잇코쿠가 갑작스럽게 죽어서 이런저런 의혹을 낳았는데, 알고보니 측실의 아버지이자 잇코쿠의 할아버지 센자에몽이 잇코쿠를 독살했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가문의 충신이자 영주의 오른팔로 성주 대리까지 맡았던 할아버지가 가문의 단결을 위해 손자를 죽인겁니다. 그 뒤 사실을 알게 된 딸도 죽고, 스스로도 할복해 버리고 말았고요.
현재 영주는 이렇게 잇코쿠 죽음과 관계가 있는 구니카즈이기 때문에, 잇코쿠가 성을 떠나야 가요히메가 목소리를 되찾을 거라는 설정도 꽤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잇코쿠가 성을 벗어나기 위해 '그릇'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오세이가 백방으로 노력해서 초대 영주의 영웅담을 그린 인형극 인형을 써먹는다는 결말도 괜찮았고요.

그런데 잇코쿠 사건 이야기는 재미는 있었지만, 솔직히 와 닿지는 않았어요. 모시는 가문이 중요하다고 해도, 가족보다 소중한건 없을텐데 말이죠. 측실이더라도 손자는 엄연히 영주의 피를 이었으니, 손자 편을 들어 주도권을 갖는게 당연하지 않나요? 주군의 가문이 자기 피붙이보다 중요하다는건 지극히 일본적인 발상이었다 생각됩니다.
또 잇코쿠 사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개도 지루했습니다. 특히 체질 탓에 어린 시절을 외지에서 보낸 오세이의 파란만장한 청춘은, 성에서 일하게 된 상황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한 빌드업에 불과해서 이렇게까지 길게 묘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요괴를 불러오는 목소리를 타고 났기에 고향에서 더 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귀가 먼 노부부의 하녀로 일하게 되면서 그 분들의 수화를 익혔다. 노부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수화 기술 덕분에 벙어리 공주님이 계신 성의 하녀로 뽑혔다." 가 전부니까요.

아울러 도미지로가 그림을 그린 뒤 인상을 그림에 남긴다는 설정도 이 작품에서 첫 등장하는데, 앞서 말씀드렸듯 이런 설정이 덧붙여지는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도미지로가 추가된 것 부터가 별로에요. 첫 등장했을 때는 비젠야를 찾는데 남다른 행동력을 보여주면서 나름 활약했지만, 그 뒤는 그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게 전부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면의 방>>
어느날, 소녀 오타네가 괴담 이야기를 하겠다며 미시마야를 찾아왔다가 무례를 범한 끝에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다음날, 소녀는 공동주택 관리인에게 끌려와서 오치카와 도미지로에게 '가면의 집'에서 겪었던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곳은 악의 결정체인 가면을 봉인하여 지키는 저택으로 오타네는 하녀로 고용되었었다. 악인만이 가면의 행동을 보고 들을 수가 있어서 좀도둑 오타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작 석달여만에 오타네는 가면의 꾀임에 넘어가 가면이 도망가는걸 돕고 마는데...

세상에 재앙을 불러 온다는 가면이 쌓여 있는 저택이라는 설정이 신화나 전설을 연상케했던 작품. 그래도 가면을 악당만 볼 수 있다는 설정은 신선했습니다. 덕분에 화재가 일어났던 가게 아들과 주변 사람들이 '사람 얼굴'을 보았다고 주장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재미를 느낄만한 극적 요소는 별로 없었습니다. 가면이 오타네를 유혹해서 도주한 뒤, 화재를 일으켰다는 전개는 예상 가능했거든요. 오히려 가면이 무엇이고 가면을 지키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등에 대한 정보는 쏙 빼 놓고 있으며, 가면이 달아날 수 없게 방에 파수꾼을 세워 놓으면 되지 않나? 와 같은, 설정상 헛점이 눈에 더 많이 뜨여서 별로였어요.

이렇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고, 딱히 에도물일 이유도 없어 보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기이한 이야기책>>
다른 무사의 약혼녀와 사랑의 도피를 한 탓에 고향에도 돌아갈 수 없던 도망 무사 쥬베에는 일류 세책방 잇센도로부터 책 필사를 100냥이라는 거금으로 부탁받았다. 수상했지만 고민 끝에 빚을 갚고 홀로 남은 딸과의 삶을 위햐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쥬베에는 책 필사를 하면서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게 된 뒤, 자주 왕래하던 세책집 효탄고도의 주인에게 딸의 안녕을 부탁하는데....

세책집 효탄고도의 작은 주인 간이치가 흑백의 방에서 들려준 이야기. 여러모로 <<가면의 방>>과 좀 유사합니다. 구멍투성이라는 점에서요. 잇센도가 필사를 맡긴 책의 정체도 알 수 없고, 책 내용이 무엇인지도 전혀 알려주지 않거든요. 간이치가 잇센도 책 필사를 했었고, 덕분에 스스로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고 있다는걸 암시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는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 이야기를 들은 오치카가 간이치와 결혼할 결심을 한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전에 연심을 품고 있다던가 하는 묘사도 없이, 간이치가 남은 수명을 알고 있고, 그래서 뭔가 세상만사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는게 드러난 이유의 전부라서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노안'이나, 조금 원숙해 보이는 사람이 오치카 취향이었나....

하여튼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금빛 눈의 고양이>>
오치카 결혼식으로 미시마야는 분주해졌다. 도미지로의 형 이이치로도 파견나갔던 가게에서 겸사겸사 잠깐 돌아왔고, 그는 도미지로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둘이 어렸을 때 겪었던 기묘한 고양이 마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미시마야에서 일할 뻔 했지만, 손을 다쳐서 포기하고 말았던 여성 삯바느질꾼 오킨의 생령이 고양이 마유가 되었었다는 이야기. 도미지로와 미시마야 가족들의 젊은 시절이 그려지는 소품입니다.
그냥 귀여운 고양이로만 남았다면 나름 훈훈한 추억담이었을텐데, 오사토가 낳았던 갓난 아이를 죽일 뻔 했다는 전개로 이야기가 무거워진건 아쉽습니다. 자기 대신 삯바느질 일꾼 자리를 차지했던 오사토에 대한 원망이 쌓였다면 오사토를 직접 노렸어야죠. 갓난아기를 죽이려고 한 건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잖아요.

이 작품의 존재 의미는 도미지로가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는걸 확정하는 것 뿐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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