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울 속에 - |
상류층 여학생들을 위한 고급 기숙학교의 미술 교사 포스티나 크레일은 교장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녀의 동료인 기젤라를 통해 사정을 전해 들은 정신과 의사 배질 윌링 박사는 포스티나와의 면담, 그리고 학교 방문 등을 통해 그녀에게 일어난 기이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데...
일본식 분류 기준에 따르면, '3대 여성 서스펜스 스릴러 작가' 중 한 명인 헬렌 맥클로이의 대표작입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샬럿 암스트롱과 "내 안의 야수"의 작가 마거릿 밀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준이 다소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세 작가 모두 매력적인 작품을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하여튼, 이 작품은 도플갱어 전설을 모티브로 한 기묘한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덕분에 고딕 호러 스타일의 공포스러운 서스펜스와 본격 정통 추리물의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두 장르를 능숙하게 결합해나가는 전개는 마치 존 딕슨 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잘 짜여져 있어서 흡입력도 무척 뛰어나고요.
여성 작가라 돋보이는 점도 있습니다. 특유의 재기발랄한 대사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여성 특유의 향수에 대한 언급은 단서로도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고요(다소 노골적인 느낌이 없진 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아쉽게도 본격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핵심 트릭이 단순히 ‘대담한 변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 중심에 있는 앤드류 바이닝이 포스티나와 아주 흡사한 외모를 지녔다는 중요한 정보를 초반에 전혀 드러내지 않는건 불공정한 전개입니다. 주변 인물들 모두가 동일 인물로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면, 이는 초반에 밝혔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바이닝은 포스티나를 아는 이들이 모인 학교 파티에 아무렇지도 않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최소한 그들을 피해 등장하는 식의 정교한 장치도 필요했고요.
두 번째로는 바이닝의 동기가 너무나도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고 설명됩니다. 그런데 고작 몇 년치 연봉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 보석 때문에 복잡한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할머니의 복수 때문이었다는건 더욱 신빙성이 떨어졌고요. 이래서야 본격물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동기면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어요.
마지막으로, 포스티나를 죽이는 이유는 이야기의 흐름상 납득할 수 있었지만, 앨리슨을 살해한 동기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포스티나를 심장마비로 죽이기 위한 계획에는 앨리슨의 존재가 방해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그녀를 제거할 이유는 없습니다. 도플갱어 관련 사건에서 앨리슨은 일종의 공범자였기에 진상을 밝히기도 어려웠을테고요. 설령 밝혔더라도 포스티나의 사망 원인이 심장마비라는 점, 그리고 거울 장치 트릭이 들통나더라도 단순한 장난으로 변명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기소 자체는 어려웠을겁니다. 바이닝의 말대로 사건 자체가 무혐의 처리될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요. 즉, 불필요한 범행이었습니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유명 고전답게 몰입감과 긴장감만큼은 최고 수준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아주 높아, 번역은 물론 디자인, 판형, 장정 등에서 소장 가치를 느낄 수 있었고요. 위에서 언급한 추리물로서의 문제점들 때문에 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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