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로드의 손톱 - ![]()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박순녀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페리 메이슨에게 이바 글리핀이라는 미모의 여성이 찾아와 사건을 의뢰했다. "스파이시 빗츠"라는 협잡 신문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으니, 이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페리 메이슨은 "스파이시 빗츠"의 실제 주인인 베르타를 찾아가 협박을 중단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오히려 베르타의 아내가 이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이바에게서 베르타가 살해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초기작이라고 합니다. 단 4일 만에 완성된 작품이라네요.
일단 굉장히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빨라 과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스파이시 빗츠'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페리 메이슨이 알아내는 데, 채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게다가 그 인물은 바로 그날 밤에 살해되기까지 하니까요. 이렇게 빠른 호흡으로 쉴 틈 없이 사건이 전개되고, 해결을 위한 페리 메이슨의 작전도 줄기차게 이어지는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당대의 인기작다운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추리적인 요소도 꽤 괜찮은 편입니다. 모든 증거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전개는 아니었어요. 이바에게서 자백을 이끌어내는 장면도 인상 깊었고, 베이츠의 젖은 몸, 닫힌 문 등의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도 충분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또한 캐릭터 자체가 주는 재미도 상당히 컸습니다. 주역 3인방인 페리 메이슨, 델라 스트리트, 폴 드레이크의 매력은 여전했고, 특히 이 작품에서의 페리 메이슨은 직업은 변호사이지만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의 모습을 보여주어 독특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유산 검인 장면 한 곳을 제외하면 변호 활동도 거의 나오지 않아, 굳이 직업이 변호사일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바 베르타가 정말 인상적입니다. 한마디로 어벙한 팜므 파탈인데요, 탐정에게 이렇게까지 무시당하는 팜므 파탈은 또 없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어요. 유혹해도 무시당하고, 죄를 뒤집어씌우려다 되레 들통나고 망신당하는 등 한없이 찌질한 모습만 보여줘서 여러모로 신선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대리만족(?)도 느껴졌고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글리핀의 베르타 살인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유산은 자신에게 돌아올 텐데, 굳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하녀 딸과의 관계가 드러나 유산 상속에 위협이 된다는 정도의 설명은 필요했을 것 같은데, 너무 간단히 넘겨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페리 메이슨 시리즈에 공통된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사건 해결을 위한 메이슨의 연극과 공작이 지나치게 쉽게 성공하는 점, 대부분의 사건이 자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점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은 아니지만, 당대의 인기작다운 재미는 충분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지친 머리를 식히기 위한 심심풀이 독서로는 제격인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출간된 페리 메이슨 시리즈를 완독했기에 더 좋았고요.
덧붙이자면, 책 뒤 해설에서 얼 스탠리 가드너가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소개되는데, 나름 감동적이었습니다. 바쁜 생활 중에도 하루에 최소 4,000단어의 소설을 써냈다는 점, 타자기를 너무 많이 쳐서 손톱이 빠질 정도였다는 점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만 대고 있는 저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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