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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점과 선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4.5점

점과 선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카사카의 요정 '고유키'에서 일하던 두 명의 종업원은 단골손님인 기계 공구상 야스다 다쓰오를 바래다주기 위해 도쿄역 13번 플랫폼에 섰다. 그곳에서는 15번 플랫폼이 보였다. 둘은 동료 종업원인 오토키가 낯선 남자와 함께 하카타행 침대 특급 '아사카제'에 오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남자는 최근 부정부패 사건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OO성의 과장대리, 사야마 겐이치였다.

6일 뒤, 오토키와 사야마 겐이치의 시신이 후쿠오카 가시이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은 청산가리가 든 주스를 마시고 동반 자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후쿠오카 경찰서의 베테랑 형사 도리카이 준타로는 사야마가 가지고 있던 열차 식당의 영수증이 1인분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동반 자살을 하러 가는 남자가 정말 여성을 두고 혼자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마쓰모토 세이초의 첫 장편이자, 발표 당시 대히트를 기록하며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저도 약 20여 년 전 해적판 번역본으로 처음 접했었는데, 이번에 모비딕과 북스피어가 함께한 ‘세이초 월드 시리즈’의 일환으로 정식 출간되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미하라 형사가 야스다의 알리바이를 깨뜨리기 위한 집요한 수사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거나 거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구성을 뛰어난 트릭과 현실감 넘치는 수사 전개로 탁월하게 끌고 가는 점에서, 고전 명작다운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도쿄에서 거의 존재할 수 없는, '4분의 공백'을 이용하여 사야마와 오토키를 목격하도록 만드는 공작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하면서도 멋진 트릭이고, 규슈와 홋카이도를 오가는 알리바이 공작의 큰 스케일, 그리고 그것을 차근차근 파헤쳐가는 수사 과정 모두 지금 다시 읽어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도 압도적입니다. 단순한 정사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을 각각 살해한 후 마치 함께 동반 자살한 것처럼 꾸몄다는 진상은 그야말로 ‘두 개의 점을 잘못된 선으로 연결한 것’이라는 제목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상식이라는 맹점을 찌르는 이 반전 트릭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이전 번역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사회파적인 요소들과 사건 이후의 씁쓸한 여운도 정식판에서는 더욱 두드러지더군요. 관청의 비리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 결국 자살한 야스다는 잊혀지고, 비리에 연루되었던 부장은 오히려 더 잘나가게 되었다는 후일담은 무척 씁쓸하면서도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200여 페이지라는 부담 없는 분량, 알리바이 트릭을 이해하기 위한 표와 도식들, 적절하게 삽입된 일러스트도 독서의 재미를 더해주고요.

물론 약간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야스다의 동기, 그리고 실제 흑막이라 할 수 있는 야스다 료코의 캐릭터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은 사건 외적인 묘사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지나치게 사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병약했던 탓에 기차 시간표를 탐독하다가, 어느새 그것을 활용한 알리바이 조작의 달인이 된 야스다 료코라는 캐릭터가 좀 더 부각되었더라면 훨씬 풍성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변함없는 흥분을 안겨주는 훌륭한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명작은 역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별점은 4.5점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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