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멸종 - ![]()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오멜라스(웅진) |
서기 2013년, 물리학자 칭-메이 황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했다. 두 명의 캐나다인 고생물학자 브랜디와 클릭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로 떠났다. 공룡 멸종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타임머신은 목표했던 시기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브랜디와 클릭스는 지구의 중력이 현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공룡의 몸집이 그토록 거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가벼운 중력 덕분이었다.
이후 그들은 점액질과 같은 기이한 생명체와 조우하고, 일련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들의 정체가 화성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니다. 클릭스는 예기된 멸종에 대비하여 이들을 현재로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브랜디는 조사 도중 화성인들이 사실은 호전적인 바이러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목격하여 이에 반대하는데....
로버트 J. 소여의 SF 소설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 멸망 시기로 이동한 두 명의 고생물학자가, 화성에서 온 바이러스 형태의 지적 생명체와 조우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요. 긍정적인 평이 많았기에 기대를 품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서는 아쉬웠습니다. 기본 설정부터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졌고, 이야기 전개도 전형적인 일본 망가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분위기였던 탓입니다.
가령, 거의 달 착륙에 맞먹는 수준의 프로젝트임에도 예산 문제 등으로 너무 소규모로 묘사되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 두 명의 시간 여행자가 모두 고생물학자이며, 그것도 서로 연적 관계라는 설정부터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당연히 군인이나 생존 전문가, 엔지니어 같은 인물 한 명쯤은 포함됐어야 했습니다.
화성 바이러스들이 중력을 조절하여 자신들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공룡을 병기로 진화시켰다는 설정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클리셰였어요.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들이 군체 형태로 하나의 생명체처럼 행동한다는 설정 역시 참신하다고 보기 어려웠고요.
무엇보다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정말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생체병기임이 분명한 중력 조절 위성에, 미래의 지구산 무전기를 통해 해제 코드를 보내 위성을 추락시킨다? 솔직히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인 비행체를 지구의 컴퓨터 바이러스로 감염시킨다는 설정 수준의 유치하고 안이한 전개였습니다. 그걸 실행하는 장치가 도시바 팜탑이라는 묘사 부분에 이르르면, 일본 SF 만화의 영향력이 짙게 느껴져 더더욱 몰입하기 힘들어졌고요.
또한, 또 다른 미래의 브랜든 섀커리가 등장해 기묘한 일기를 통해 타임 패러독스를 정리하려다가, 이 모든 것이 절대자(창조주)의 의지로 귀결되는 결말도 SF적인 매력을 반감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나비효과"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룡 멸종 원인에 대해 대담한 가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 하나 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공룡의 거대한 체격과 그에 비해 다공질의 뼈 구조, 익룡이 빈약한 날개를 가졌음에도 비행이 가능했던 이유 모두가 당시 지구의 중력이 지금보다 작았기 때문이라는 가정은 매우 흥미롭고 설득력 있었던 덕분입니다. 디테일한 설명에서도 작가가 공룡에 대해 상당한 연구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위기 순간, 중력 조절 위성이 기능을 멈춘 뒤 공룡들이 중력에 눌려 하나둘씩 쓰러지는 장면은 상당히 강렬했고, 영상으로 표현되었다면 굉장한 장면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SF 영화 같은 구성으로, 소개만큼의 걸작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였다면 훨씬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흥미나 속도감은 충분하기에, 더운 여름날 가볍게 읽을 만한 오락용 SF 소설로는 추천드릴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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