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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5

처단 - 리 차일드 / 다니엘 J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잭 리처는 자신이 조회를 요청했던 차량의 주인을 추적하던 중, 미국 법무부 요원들과 접촉하게 된다. 리처는 차량의 주인이 10년 전 자신이 처단했던 자비에르 퀸이라고 확신하지만, 법무부는 그 차량이 벡이라는 마약상의 것이며, 벡의 저택에 잠입시킨 수사관 테레사가 실종되었다고 설명했다. 리처는 퀸이 살아있을 가능성을 직감하고 법무부와 손을 잡았다. 리처는 벡의 아들 리처드가 유괴당하는 것을 막는 척하며 작전을 수행해 벡의 집에 잠입하는데 성공했고, 점차 벡의 신임을 얻어가며 내부 조직원들을 하나씩 제거해갔다. 그 과정에서 벡이 사실은 퀸에게 협박당하고 있었으며, 퀸이 실세라는 사실을 알아 냈다. 

결국 정체가 드러난 리처를 퀸 일당이 공격했지만, 리처는 이들을 물리치고, 악당들의 무기 밀매 사실을 파악한 뒤 실종되었던 테레사까지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리처와 퀸의 최후 대면에서, 퀸이 벡을 인간 방패로 삼는 바람에 아버지를 구하려 나선 리처드의 개입으로 오히려 잭 리처는 궁지에 몰렸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이안류가 몰아치는 저택 앞바다로 몸을 던지고 마는데...

"처단"은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으로, 원제는 Persuader입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시리즈인 잭 리처 시즌 3의 원작이고요. 드라마 원작이 되었다는게 수긍이 될 정도로 분량도 많고, 내용과 상황도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10년 전 잭 리처의 부하들을 죽였던 전직 장교 사건과 현재의 무기 밀매 조직 사건이 엮이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잭 리처가 악당 조직에 잠입하여 온갖 액션을 수행하는 덕분입니다. 

또한 시리즈 다른 작품들보다 추리적인 장면이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벡의 가정부는 잠입 요원으로 퀸 일당에게 정체를 들켜 살해당했습니다. 리처는 법무부 요원 더피에게 문의했지만, 다른 요원은 파견한 적이 없다고 했고요. 리처는 벡이 지나치게 많은 총기를 보유하고 있고, 총기 지식이 상당하다는 점을 근거로 그가 마약상이 아니라 무기 밀매업자일 가능성을 떠올립니다. 이는 가정부는 법무부가 아니라 재무부 ATF(주류·담배·화기 및 폭발물 단속국)에서 보낸 요원이었다는 추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벡 저택 통신이 금요일 저녁에 완전히 차단되었던 상황에 대한 추리도 인상적입니다. 리처는 일반적으로는 통신이 원활한 시간대에 모든 휴대폰, 유선전화, 인터넷이 동시에 끊겼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생각했고, 자신이 처리한 벡의 경호원들이 사라진 것을 숨기기 위해 더피가 일부러 통신망을 차단한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퀸 일당이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고급 케이터링 서비스를 불렀다는 것도 사소하지만 괜찮았습니다. 리처는 이들이 파티를 열 예정이고, 양고기 메뉴를 통해 손님들이 중동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걸 유추하거든요.
10년 전 사건에서 고로프스키가 군 감시 하에 있던 무기 설계도를 빼돌렸던 방법도 흥미로왔습니다. 리처는 그가 들고 있던 봉투는 주목을 끌기 위한 미끼이고, 실제 설계도는 신문에 숨겼을 것이라 추리하지요. 양키스 팬이 스포츠 면을 그냥 넘길리 없다는 사소한 단서에서 출발해서요. 도미니크가 퀸에게 살해당한 후, 리처는 퀸이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가 중요한 물건들을 챙길 것이라 예측하고 미리 그를 기다리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이처럼 단순하지만 논리적인 접근은 그동안 시리즈 작품에서는 강렬한 힘과 폭력에 밀려 간과되어 왔던 리처의 지적 능력을 한껏 드러내고, 적의 심리를 꿰뚫고 예측하는 능력이 힘과 폭력과 균형 있게 어우러지게 만들어서 매력을 더해줍니다.

물론,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인 특유의 강렬한 힘, 폭력,  액션은 여전히 중심축을 잡고 있습니다. 총격전, 잠입, 암살, 맨몸 격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악당들을 제압해가는 과정은 펄프 픽션 장르의 미덕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에서는 잭 리처보다도 더 덩치가 큰 괴물 같은 상대 ‘폴리’와의 맨몸 격투가 압권입니다. 단순히 큰 덩치가 아니라,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과 힘의 싸움이 실제처럼 묘사되어서 몰입도가 상당했습니다.
* 드라마로 만든다면 클라이막스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아서 찾아보았는데, 실제로는 약간 실망스럽네요. 

등장하는 다양한 무기들도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M500 퍼스웨이더와 브레네케 매그넘 탄환은 시멘트 벽에 사람 크기의 구멍을 낼 수 있다고 하며, 실제로 적을 두 조각 내는걸로 묘사되는데, 이런 휴대용 총기가 실존한다는게 놀랍네요.

하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벡과 퀸의 관계가 다소 불명확합니다. 전체 분위기를 보면 벡은 아들 리처드가 유괴되어 학대받았던 탓에 퀸에게 종속된 듯 보이지만, 리처드는 학교를 다니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고 벡도 듀크 등 개인 부하를 두고 있는 등 충분한 반격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 그가 아무런 저항 없이 퀸에게 휘둘리고, 아내가 농락당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본다는 설정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설정들도 비현실적인게 많아요. 벡의 저택부터 그러합니다. 출입구가 단 하나뿐이고, 도망칠 길이 막힌 구조인데, 이런 공간을 고의로 설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단지 긴장감을 위해 배경을 비현실적으로 만든 느낌이 강합니다. 가족간의 애정이 거의 언급되지 않다가, 마지막에 리처드가 아버지를 구하겠다며 잭 리처를 공격하는 장면도 급작스럽고요.  

결말 부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잭 리처가 퀸에게 일부러 반격 기회를 준 후, 바다로 스스로 몸을 던지고 기적적으로 생존하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꽤 두뇌 싸움을 펼쳐보였기 때문에, 한 수 더 치밀한 계획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빌런 퀸의 최후 역시 싱겁습니다. 폴리와 싸운 직후에 거센 바다에서 겨우 생환한 탓에 리처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퀸은 단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 안에서 리처에게 단숨에 제압당해서 죽고 맙니다. 이 정도 거물급 악역에게는 조금 더 극적인 종말이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잭 리처와 더피가 관계를 맺는 설정도 굳이 필요했을까 싶습니다. 시리즈 전통처럼 여성 캐릭터와의 로맨스를 넣은 셈이겠지만, 이 작품의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감정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화끈한 액션과 시리즈 특유의 묘미는 여전하지만, 설정의 허술함과 후반부 정리의 아쉬움은 약간의 흠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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