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주교 -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장백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페리 메이슨 사무실로 멜로리 주교가 찾아와 더듬는 말투로 한 과실치사 사건에 대한 변호를 의뢰하며 억만장자 렌월드 C 블래운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 상세한 내용은 추후 관련인물들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전한 후 사라진다. 페리 메이슨은 사립탐정 폴 드레이크를 통해 주교에 대한 모든 정보와 과실치사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나 곧바로 주교가 폭행당한 뒤 사라지고 주교에게 고용되었던 간호사 아가씨마저 종적을 감춘다.
페리 메이슨은 주교가 말한 과실치사 사건의 당사자이자 블래운리 가문에서 내쳐진 며느리인 줄리아 블래너와의 만남을 가진뒤 정확한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게 되나 곧바로 렌월드 C 블래운리가 살해당하며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줄리아 블래너가 체포되고 페리 메이슨은 증거를 얻기 위한 활동 덕에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미국 추리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 쪽이야 걸작도 많고 이래저래 접한 작품이 많지만 그외의 작품들은 뭔가 흥행을 굉장히 의식한 듯한, 시드니 셀던 류의 작품이 너무 많다고 여겨졌거든요. 때문에 진정한 흥행 대마왕인 페리 메이슨 시리즈 역시 선뜻 손이 가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자유추리문고 구입에 포함되어 있어 모처럼 주말에 진득하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동서문화사 판이지만 뭐 어차피 같은 작품이니까...)
"관리인의 고양이"라는 작품을 포스팅 하는 등 이전에도 페리 메이슨 시리즈는 몇편 읽어보았는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조금 다른 분위기였어요. 정통 추리적인 부분이 부족하고 외려 하드보일드적인 성격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페리 메이슨과 하드보일드는 잘 어울릴 듯한 소재는 아니지만 이 작품은 페리 메이슨이 혼자 쳐들어가서 악당을 두들겨 패는 장면이나 악당과의 담판 등 세세한 분위기 및 범행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뚜렷하게 하드보일드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개 역시도 여러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사건의 본질을 추적해 나간다는 하드보일드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더라고요.
그래서 정통 추리물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어요. 무엇보다도 사건은 단 한건의 살인 사건만 벌어질 뿐이며 그 동기가 너무 뚜렷하고 악당 캐릭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도드라져서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물론 어차피 페리 메이슨 시리즈에서 사실 기대하는 것은 정통파적인 요소보다는 법정쇼겠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법정쇼" 대신 일종의 속임수로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 내는 결말이기에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법정쇼는 등장하긴 하지만 사건의 해결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자리였기에 긴장감이 떨어지거든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양한 증언과 증거 수집,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법정쇼라는 최대의 매력이 없는 앙꼬없는 찐빵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페리 메이슨, 델라 스트리트, 탐정 폴 드레이크라는 고정 캐릭터 3인의 협력 관계 등 시리즈의 팬이라면 즐길 만한 요소가 많고 위에서 이야기한 하드보일드적인 부분때문에 색다른 느낌도 전해주며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최대 장점인 "쭉쭉 읽히는" 재미는 여전하지만 단지 추리소설로만 놓고 본다면 높은 수준의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번역도 좀 애매한 편이고요. 제목에서 유래되는 주교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초반부가 외려 저는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런데, "주교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라는 일종의 통설이 구미권에서는 속담처럼 널리 쓰이는 말인가보죠? 제목이 저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작품 안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로 쓰이고 있어서 궁금해지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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