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
장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입스씨와 석스비 부인에 의해 양육된 사영수의 딸 수전 트린더는 입스씨와 친분이 있는 건달 "젠틀먼" 리버스의 계획, 즉 부유하지만 삼촌에게 얽매여 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처녀를 꼬셔 결혼한 뒤 유산을 가로챈다는 계획에 협조하기 위해 모드라는 처녀의 하녀로 임시 고용되어 "브라이어"라는 저택으로 향한다.
음란서생 삼촌에게 기계처럼 양육되며 고독한 생활을 보내던 모드와 친분을 쌓으며 연민의 정을 키워나가던 수전은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까지 들 정도로 깊이 빠지지만 3천파운드라는 거금 때문에 모드와 결혼한 뒤 그녀를 정신병원에 집어 넣는다는 리버스의 계획에 협력하여 그녀가 리버스와 결혼하는 것을 돕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레즈비언 소설"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2005년판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의 해외판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추리계에서 유명한 작품이죠.
읽고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정말로 두꺼운 책이라는 것. 즉 대 장편이라는 것이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판형은 작지만 페이지는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거든요. 이렇게 긴 이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과 브라이어, 정신병원 등의 배경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옷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묘사한 것에 더하여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엄청나게 장황한 탓이 큽니다. 여성 작가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심리묘사가 책의 반을 차지한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더군요. 디테일이 지나쳐서 나오는 인물들이 다 미친것 처럼 보일 정도니까요. 뭐 실제로 미친 애들도 있고.
읽기가 쉽지는 않은 분량이라 3개로 나누어진 - 수전 트리더, 즉 수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지는 1부, 그리고 모드의 시점으로 쓰여지는 2부, 다시 수의 1인칭으로 돌아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3부 - 이야기를 각각 3권의 책으로 분책하여 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무겁고 길기에 들고 다니면서 읽은 제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네요.
그러나 길이에 비한다면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재미는 물론이고 빅토리아 시대의 하층 계급들과 음란서생(?)등 성적인 요소를 등장시키면서도 싸구려스럽지 않고 나름의 품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시기에 대해 방대한 묘사를 통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칠 정도로 추리물의 궤도에서는 꽤 많이 빗나가 있다는 것이 좀 아쉽더군요. 물론 뻔한 사기극으로 전개되다가 충격적으로 터지는 1부 마지막의 반전은 정말 효과적이었고, 2부에서 밝혀지는 1부와의 연관성도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기는 해요. 그러나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핑거포스트와는 달리 별다른 단서도, 복선도 없고 "고백"에 의존하는 전개이기 때문이며 진상 그 자체도 그리 복잡하거나 뒤틀린 구조는 아니었거든요. 또한 진상 자체가 워낙 고전적 설정이기에 1부 이후에는 크게 충격적이지도 않았고요.
그나마 1부와 2부는 나름 추리물의 구조를 지니지만 3부는 소설의 마무리를 위해서만 존재하기에 전혀 추리물스럽지 않습니다. 아울러 나름 해피엔딩을 좋아하긴 하나 이 작품의 대단원은 별로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꽤 재미있고 가치도 있지만 제 취향은 절대 아닌 작품이었어요. 레즈비언 코드는 제껴놓더라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작품은 추리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나름의 가치는 충분하나 자료 조사 목적이 아니라면 두번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제작했다는 TV 시리즈는 꽤 관심이 가는군요. 영상으로라면 무척 화려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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