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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5

소실점 (2026) - 청웨이하오: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아파트에서 집을 나선 소년 창눠가 사라졌다. 집을 나선 뒤 건물 현관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친하게 지냈던 잉잉 누나의 집인 302호에 들렀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곳에서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2. 도박에 빠진 옌우는 빚에 쫓기다 급사한 아버지의 돈을 써버린 뒤, 아버지 시신을 은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3. 린위퉁은 예전에 살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해서 이사했다. 이 사실을 우연히 공유하게 된 회사 동료 아준과 함께 사건 수사에 나선다. 

별개로 보이는 세 개의 사건이 동시에 펼쳐지는 중국산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추천하는 기사를 읽고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위의 세 사건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 돋보입니다. 아이의 실종, 시신 은닉, 과거의 성폭행 사건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각각의 의문이 다른 사건의 해답으로 이어지도록 구성된 덕분입니다.

요약하자면, 아이의 실종은? 잉잉의 집 302호와 옌우의 집 301호를 잇는 비밀 통로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통로를 발견한 창눠가 301호에 들어왔다가, 마침 시신 은닉을 하던 옌우와 마주쳐서 감금당했던 겁니다. 과거 성폭행 사건은? 302호에 사는 잉잉의 아버지 쉬즈제가 비밀 통로를 통해 저질렀습니다. 그는 인테리어 공사 업자라는 직업을 이용해 두 집을 잇는 통로를 만들었고요.

이러한 진상이 드러나기까지, 잘 배치된 단서와 복선으로 이야기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전개도 좋으며, 스릴러물답게 긴장감도 잘 불어넣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옌우 시점의 촬영분입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숨겨야 하는 그의 상황을 따라가는 화면에서는 갑갑하면서도 날이 선 듯한 긴장감이 잘 전해집니다. 당장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영상으로 잘 살리고 있어요.

그러나 다소 길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특히 린위퉁과 아준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나 두 사람이 탐정처럼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요. 사실 아준은 나올 필요도 없고요. 이런저런 불필요한 요소를 쳐내고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을 조금 줄였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전개도 아주 매끄럽지만은 않습니다.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을 연결하는 방식에 작위적인 부분이 있는 탓입니다. 잉잉이 지나치게 입을 다무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옌우가 시신을 숨기는 데 필요한 타일을 산 곳이 하필 쉬즈제의 가게였다는 우연도 지나칩니다. 쉬즈제가 옌우를 찾아가 다그치는 장면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웃집 남자가 사람을 죽일 배짱도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무슨 수로 확신한 것일까요? 평소 만만하게 보았더라도 옌우 부친의 시신을 발견한 순간에는 질겁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옌우를 몰아붙이는 태도는 억지스러웠어요.

옌우의 집이 쉬즈제의 바로 이웃집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순간까지 감추는 방식도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관객은 알려주지 않은 정보를 알 방법이 없으니까요. 물론 이 관계를 일찍 드러냈다면 비밀 통로와 실종의 진상이 뻔해졌겠지만, 그렇더라도 핵심적인 공간 정보를 감춘 채 유지하는 반전은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네요.

아울러 경찰이 너무 하는 일이 없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아이가 건물 밖으로 나간 흔적이 없다면 당연히 아파트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랬다면 옌우의 범행과 실종 사건의 진상은 훨씬 일찍 드러났을 것입니다.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수께끼가 유지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잘 만든 범죄 스릴러라는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10/24

장국의 알타이르 1~27 -- 카토 코토노: 별점 2.5점

루메리아 대륙의 상업 국가 투르키에는 13인의 장군들에 의해 통치되는 '장국'이다. 17세의 나이로 장군에 오른 마흐무트는 12년 전, 빌트리안 제국과의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던 경험 때문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대륙의 패권을 노리는 발트라인 제국은 결국 전쟁을 일으켰고, 마흐무트는 주변국들과 '반제 동맹'을 결성하여 이에 맞섰다. 

초전, 카리르 장군의 대패에도 불구하고 마흐무트는 제국 육군을 패퇴시켰고, 독약의 자가노스 장군이 이끄는 동맹군이 제국의 수도 성 미하엘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국의 여장군 레레데릭이 일으킨 군대가 반대로 투르키에의 수도인 금색 도시를 향해 진격했고, 양측의 수도를 둘러싼 마지막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총 27권으로 완결된 장편 만화입니다. 가상의 대륙을 무대로 투르키에 장국의 젊은 장군 마흐무트가 발트라인 제국의 팽창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정치와 외교, 전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거의 15년 전에 1권을 접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간 읽지 않고 있다가 모처럼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를 연상시키는 투르키에 장국의 장군이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역사를 모방한 가상 역사물은 적지 않지만,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기했어요. 

그리고 거대한 대륙의 패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대하 서사물로 볼 수 있습니다. 등장하는 국가와 인물도 많고, 외교적 이해관계와 전쟁 양상도 제법 복잡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7권이라는 적당한 분량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비슷한 규모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분량을 늘리거나 마무리에 실패하는 작품도 적지 않은데, 적어도 이 작품은 결말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깔끔한 편이에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전투 묘사입니다. 주요 전투마다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가 비교적 명확하고, 특별한 기술과 신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4장국의 반란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입니다. 마흐무트는 압도적인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동궁(총)'이라는 신무기였습니다. 발트라인 제국의 수도를 방어하는 철벽의 성, 성 미하엘 공략에서도 거대한 대포인 '경고의 종'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요. 중해에서 펼쳐지는 해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베네딕크 함대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 만든 기동성 높은 갤리선과 꺼지지 않는 불인 '포이니크스의 등' 덕분이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무기와 기술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설정도 재미있지만, 단순히 무기의 위력만으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전투 상황과 지형, 병력의 특성을 이용하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4장국의 반란을 진압할 때 마흐무트가 나뭇가지를 이용했던 전략이나, 발트라인 제국의 피노 장군이 투르키에 장국의 카리르 장군을 섬멸할 때 펼쳤던 매복과 포위 방진이 좋은 예입니다. 무르물로 분지에서 벌어진 전투의 기병대 운용도 인상적이고, 제국 남령군을 따라잡기 위해 벌이는 기마 추격전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해안선을 달리는 장면은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전술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전투의 구성과 비교하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외교와 전략은 의외로 허술한 편입니다. 우선 마흐무트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역에 뛰어드는 전개는 억지입니다. 밀짚을 비롯한 상품의 교역으로 국가 간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 탓입니다. 물론 무역을 통해 국가 간 분쟁을 막는 전략은 현실에서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게 석유같은 거라면 모를까 짚단 정도로 전쟁을 막는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게다가 어차피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서 이러한 무역 이야기는 분량 낭비에 불과합니다.

마흐무트의 성공이 지나치게 운에 좌우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위기에 처하거나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나 물건이 등장하는 식입니다. 우라도 왕국의 비료처럼요. 이런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다 보니 천재라는 마흐무트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조직에 무한한 충성심을 보이며,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뿐 배신이나 개인적인 야심은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물론 군인이라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쟁과 권력 투쟁을 다루는 작품에서 거의 모든 인물이 이토록 단순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과 갈등이 부족하다 보니 정치극으로서의 깊이도 떨어지고요. 

인물의 기본적인 설정 역시 전형적입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천재 마흐무트부터 시작해서, 주변 인물들 역시 익숙한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방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국가 관계에 비해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방식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대하 서사물인데도 불구하고 군웅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전투에서 적의 지휘관을 제거하는 전략이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휘관을 잃은 군대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지휘관 제거를 노리는 작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대장만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도박수가 너무 많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규모와 양상이 달라져도 이런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정교한 전략보다는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모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후반부에 이르면 이런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지막 전쟁은 투르키에 장국의 자가노스 장군이 발트라인 제국의 수도 성 미하엘을 먼저 함락시키느냐, 아니면 레레데릭이 장국의 금색 도시를 먼저 점령하느냐의 시간 싸움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경쟁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레레데릭이 금색 도시를 함락시킨다고 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레데릭의 군대는 이미 투르키에 장국의 한복판까지 깊숙이 진격해 있습니다. 주변 동맹국들의 군대가 규합되어 포위망을 형성한다면 장기간 버티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무엇보다도 병력을 보충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포에니 전쟁 당시 이탈리아 깊숙이 진격해 여러 차례 로마군을 격파했지만 결국 전쟁 자체를 끝내지는 못했던 한니발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적국의 수도를 점령하는 것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성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쟁의 최종 승리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자가노스가 공격하는 성 미하엘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발트라인 제국은 이미 주요 영지를 모두 잃었고, 수도는 외부와의 통로도 거의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성 미하엘의 함락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두 전선의 전략적 상황이 이토록 다른데도 마치 어느 쪽이 먼저 상대의 수도를 점령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제국 황제의 항복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입니다. 성 미하엘에는 여전히 7만여 명의 상비군이 남아 있는데도 황제는 전면 항복을 선택합니다. 물론 수도가 고립되고 전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제국이 멸망하면 황제 자신도 목숨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남은 병력을 총동원해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적어도 그 정도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결전을 시도할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대장군까지 직접 전선에 나서 레레데릭과 맞서 싸우는 투르키에 장국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제국 황제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제국의 항복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족에 가깝습니다. 투르키에 장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후의 정세가 제시되지만, 전쟁이 끝난 뒤라 긴장감이 크게 떨어집니다. 새로운 국제 질서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별다른 흥미나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작품의 주된 갈등이 해소된 시점에서 굳이 이만큼의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국의 알타이르"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전쟁의 전체적인 흐름과 외교적 전략에는 허점이 많고 인물 묘사도 단순하지만, 개별 전투만큼은 상당히 공들여 구성했습니다. 실제 역사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배경으로 신무기, 기발한 전술, 대규모 회전과 공성전, 해전 등을 두루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대륙의 패권을 둘러싼 거대한 이야기를 27권으로 마무리했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치밀한 정치극이나 깊이 있는 인물 묘사를 기대한다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다양한 무기와 전략이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중세 전쟁 만화를 좋아한다면 추천드립니다.

2026/10/23

400년의 유언―죽음의 정원의 죽음 - 츠카토 하지메: 별점 4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의 사찰 류온지에서 정원사 이즈미 시게타케가 목에 공구가 박힌 채 소년을 끌어안고 발견되었다. 역사사물보전재단 직원 가와베 다쓰헤이 역시 옷이 앞뒤로 바뀌어 입혀지고 양쪽 손목이 절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두 사건이 4년 전 류온지에서 벌어진 시게타케의 아들 신타로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나섰다.

신사와 사찰을 순회하는 보안원 가게야마는 시게타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인연으로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가 남긴 말의 의미를 추적하던 가게야마는 일련의 사건을 풀 열쇠가 류온지의 창건과 역사에 얽힌 수수께끼에 있음을 알아내는데…….

정말 오랫만의 독서입니다.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아서 원서를 번역해서 읽었습니다. 

교토의 사찰 류온지를 주 무대로 하는 작품인데, 류온지의 구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지만 중반부터는 굉장히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쿠레 키리시탄의 역사와 센노 리큐의 할복, 리큐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가설을 류온지라는 가공의 절에 결합한 상상력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류온지가 실은 박해받는 기독교 신자들의 성당이었다는 발상도 신선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탄탄합니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했던 류온지의 구조는 물론이고 정원석과 석등, 건물과 족자의 기묘한 특징들이 성당의 기능과 상징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는걸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덕분입니다.
족자 "네마겐게쓰"의 비밀이 대표적입니다. 이 그림은 도코노마 너머에도 공간이 이어지는 듯한 착시를 만드는데, 그 가상의 공간을 실제 건물에 더하면 오쿠쇼인 전체가 거대한 십자가가 된다는 것이지요.
단순한 학술적 토론에 그치지 않고, 석등에 불을 붙인 뒤 ‘용의 꼬리를 움직여라’라는 전승에 따라 잉어돌을 움직이자 석등이 회전하며 빛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장관으로 이를 극대화하는 연출도 좋습니다. 우물 속 성모상이 드러나는 장면도 인상적이에요.

리큐의 할복과 뒤이은 류온지 초대 주지 료도의 할복을 기독교 신앙과 연결하는 설명도 지적 재미를 더합니다. 리큐에 관한 가설의 진위와 별개로, 작품 안에서는 설득력 있게 활용됩니다. 나름대로 팩션같은 느낌도 주고요.

현대를 무대로 한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시케타케를 살해한 범인이 현장에서 도주할 수 없었다는 불가능 범죄, 범인 군지의 알리바이 트릭 등 수수께끼와 트릭이 풍성한 덕분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합니다. 예를 들어 시케타케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설치했던 장치로 일어났다는게 밝혀집니다. 피해자를 살해한 흉기였던 버어니어 캘리퍼스(밧줄 고정 용도), 가게야마가 발견한 나무에 걸려있던 밧줄, 쓰토무 소년이 목이 졸렸던 이유, 시케타케가 오래전 사냥 등으로 생활했다는 등이 단서로 제공됩니다.

이런 유형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물게 경찰의 활약도 인상적입니다. 군지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다카시나 형사거든요. 그는 '조작된' 녹음테이프에 담긴 팩스 작동음의 시각이 군지가 팩스를 보냈다고 증언한 때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또한 ‘온기쿠’의 배송 차량에 위치 추적기를 부착해 알리바이를 꾸몄다는 사실도 간파하지요. 피해자 가와베의 손목을 자른 이유도 추론을 통해 밝혀내고요. 간만에 보는 경찰의 활약이었어요.

하지만 대담한 상상력은 돋보이지만, 16세기에 창건된 류온지에 이처럼 정교한 장치들이 설치되었다는 것도 현실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류온지의 구조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장치들의 동작 원리는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도 문제고요. 그리고 설령 당시에는 작동했더라도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 움직인다는 점은 비현실적입니다.
탐정 역인 가게야마가 시게타케의 친아들이었다는 반전과 친구 다카시나의 아내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는 설정도 굳이 필요하지 않았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은 작품인만큼, 국내에도 정식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2026/10/18

약사의 혼잣말 Season 2 (2025) 후반부 - 나가무라 노리히로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사의 혼잣말" 시즌 2에 대해 이전에 리뷰를 남겼었지요. 이번에 시즌 3가 새로 시작되어 보기 시작했는데, 모르던 이야기가 나오길래 조사해보니 시즌 2를 다 못 본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이전에 보았던 36화 뒤의 12편을 주말에 몰아 보았습니다.

후반부는 기존의 소소한 사건들 중심이 아니라 시 일족의 반란이라는 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래도 리슈비가 유령을 목격한 사연이나 러우란비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에피소드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좋습니다. 진시가 왕제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마오마오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등 주요 인물들의 상황이 급변하는 과정도 흥미로웠고요.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러우란비의 정체가 시스이였다는 반전입니다. 이는 화려한 복장과 두꺼운 화장, 부채로 가린 무표정한 얼굴이 정체를 감추는 장치 등 다양한 복선 덕분에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시스이가 보여 준 교육 수준과 유복한 집안 출신 같은 분위기라던가, 그녀가 낙태약을 구하거나 낙태를 유도하는 꽈리를 먹는 장면 역시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러우란이라는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일족의 몰락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마지막을 전용 음악, 그리고 화려한 무대와 함께 장식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녀가 원하는걸 이루라고 보내주는 마오마오의 쿨함도 빛납니다.

그러나 후반부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습니다. 시 일족의 반란이 대하 서사극처럼 펼쳐지면서, 이 시리즈의 장점이었던 소소한 일상과 추리의 재미가 크게 줄어드는 탓입니다. 사건의 규모가 커진 만큼 재미도 커졌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러우란의 계획도 허술합니다. 마오마오가 의관이 시 일족과 한패라는 사실을 알아내 납치되고, 진시가 그녀를 추적하다 반역 음모를 밝혀 금군을 이끌고 일족을 처단한다는게 주요 전개입니다. 여기서 마오마오를 살려 둔 것은 친구인 시스이(러우란)의 배려였다 하더라도, 이후의 추적과 정벌까지 러우란이 안배했다고 보기에는 우연에 기대는 부분이 너무 큽니다. 썩어 버린 일족과 가족을 도려내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 이야기 속에 마오마오를 억지로 끌어들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러우란이 살아남아 외국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도 지나치게 전형적입니다. 차라리 시장에 나온 비녀만 보여 주며 생사를 여운으로 남겼다면 더 좋았을거에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반전과 인물의 매력은 괜찮았지만, 후반부의 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시리즈의 큰 서사를 이해하려면 건너뛰기 어려운 만큼, 시리즈 팬에게만 추천합니다.

2026/10/17

끝장수사 (2026) - 박철환: 별점 1.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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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 나가던 광역수사대 에이스였지만 사건 말아먹고 인생도 꼬인 형사 재혁은 재벌 2세 인플루언서 신입 형사 중호가 경찰을 그만두도록 만들기 위해 파트너가 되었다. 둘은 티격태격하던 와중에 교회 절도범을 체포했는데, 그가 서울 강남 살인사건의 범임이라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강남 사건은 이미 조동오가 범인으로 체포되어 유죄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고, 둘은 담당 검사 미주의 지원으로 재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강남 경찰서 형사들이 수사를 방해하기 시작하는데... 

요새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네요. 그나마 틈틈히 운동하면서 본 영화입니다. 넷플릭스 순위에 있어서 보게 되었네요.

도입은 흥미롭습니다. 보통 이런 작품은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사람의 누명을 벗기는 데 집중하지만, 여기서는 먼저 잡혀 있던 조동오가 다른 연쇄살인의 진범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범행을 입증할 피해자의 반지를 아내 영희가 늘 가지고 다니던 성경책 안쪽을 파내 숨겼다는 디테일 등 범죄물로 볼 만한 부분도 제법 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한물간 형사와 돈 많고 잘생긴 신참의 조합 역시 괜찮았고요.

그러나 전개가 좋은 설정을 살리지 못합니다. 특히 강남경찰서 형사들이 두 사람의 수사를 방해하는 과정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조동오가 진범이라고 확신해서 무리하게 체포했다면, 그 사정을 미리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면서까지 훼방을 놓는 모습은 갈등 구조를 만들기 위한 억지로만 보였습니다.

강미주 검사가 스스로 미끼가 되어 조동오를 자극하다 납치되는 절정부는 더욱 황당합니다. 검사가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되었는데 구하러 나타나는 형사가 달랑 두 명이다? 그나마도 갓 출소한 중년 범인 하나를 제압하지 못해 쩔쩔매는 장면에서는 긴장감보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만 듭니다. 액션마저 보잘것없어 후반부는 좋은 점수를 줄 여지가 없습니다.

중호의 인플루언서 설정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합니다. 초반의 티격태격하는 재미마저 중후반부터 재혁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며 사라지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6/10/11

눈의 아이 - 미야베 미유키/김욱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눈의 아이"는 표제작을 포함한 다섯 편이 수록된 중, 단편집입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오싹하게 펼쳐지고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로 가득하다'라고 소개되어 있길래 읽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은 한 편도 없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마음에 드는 묘사와 설정은 있었지만 책 소개가 약속한 재미를 어느 작품에서도 느끼지 못한 만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작품별 간단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눈의 아이"

초등학교 시절 소꿉친구 유키코를 죽인 화자 '나'의 이야기입니다. 일상적인 회상 속에서 서서히 차오르는 묵직함, 친구 스기지도 '나'의 범행을 눈치채고 있다는 마지막 장면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지나치게 소소합니다. 게다가 유키코의 유령을 '나'만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결정적인 단서처럼 다루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오히려 가해자에게 유령이 나타나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정상적인 '나'는 이십 년 전에 죽었다는 마무리도 이야기의 결론으로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장난감"

소소한 유산 문제가 이상한 소문으로 번지고, 죽은 할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추억 한 토막을 듣는 느낌인데, 유령 이야기치고 무섭지도 않고 기승전결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유령이 남을 해코지하지도 않고, 숨겨진 과거가 밝혀지지도 않는 탓입니다. 한마디로 드라마가 없어요.

"지요코"

인형 탈의 눈으로 보면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했던 무언가로 보인다는 일상 판타지입니다. 소중히 여긴 물건이 없는 사람은 지켜주는 존재 없이 이상한 것에 씌어 있다는 설정은 괜찮아요. 추억이 누군가를 지켜줄 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설정이 아주 새롭지는 않고, 이를 넘어서는 드라마도 부족했습니다. 대프니 뒤 모리에의 "푸른 렌즈" 정도의 이야기는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돌베개"

기자 이시자키가 중학생 딸 아사코와 남자친구 가야노의 조사를 토대로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범죄물입니다. 피해자 아유미의 행실이 좋지만은 않았다는 진상, 그리고 이시자키의 추억을 현재에 겹치는 묘사는 인상적이에요. 

그러나 고전 이야기인 "돌베개"를 사건에 빗대는 부분은 억지스러우며, 정작 진상이 밝혀지는게 아유미 사건이 아니라 별개의 나카노 여자 단대생 살인 사건이라는건 당황스러웠던 부분입니다. 나카노 사건에 대해 짧은 설명이 스쳐 지나가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사건 해결도 다쿠미의 자백에 의존해 추리의 재미도 없고요. 무엇보다도 다쿠미가 왜 유령 이야기를 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유령을 본 건지, 죄책감의 표현인건지... 

"성흔"

자신을 학대하고 끝내 죽이려 했던 친모와 계부를 살해한 소년 A 가즈미가 폭력 피해자들의 영웅으로 부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을 겪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센카와의 홍보 활동은 치밀하고 그럴듯했습니다. 

하지만 가즈미가 신의 계시를 받아 자살한 뒤 진짜 신이 되고, '철퇴의 유다'인 센카와가 예언자가 된다는 결말이 너무 황당해서 이게 뭔가 싶네요. 피해자들의 분노와 구원받고 싶은 마음이 홍보를 통해 일종의 신앙으로 변할 수는 있습니다. 가즈미가 죽으면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굳어지고, 센카와는 그의 뜻을 해석하는 권위를 독점하게 된다는 것도 말은 되고요. 그래도 현실적이던 전개가 갑자기 신과 계시로 넘어가는 결말까지 납득할 수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멀리 나갔어요. 설정이 아깝습니다.

2026/10/0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 넬레 노이하우스 / 김진아: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비아스는 고향 마을에서 두 소녀, 로라와 스테파니를 살해한 혐의로 10년간 복역한 뒤 출소했다.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고 자신은 사건 당일 만취해 기억이 없었지만, 정황 증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출소한 그가 마을로 돌아온 뒤 주민들의 적대감이 커져 테러까지 당했다. 그 무렵 10년 전 실종된 로라의 시신이 발견되고, 스테파니를 닮은 소녀 아멜리까지 실종되자 보덴슈타인 형사반장과 피아 형사는 10년 전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소녀가 다른 이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로라는 토비아스의 친구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달아나다 죽었고, 스테파니는 불륜 관계였던 교사 그레고어와 다투다가 그에게 살해당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가해자들과 관계자들은 토비아스가 범인으로 몰리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다는 게 진상이었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가 발표한,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타우누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유명 시리즈이지만 그동안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오래전 읽었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 심하게 별로였던 탓입니다. 그런데 지난 추석 연휴, 아내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TV 드라마를 웨이브로 감상하다가 재미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두 소녀를 살해했다는 죄로 10년간 복역한 토비아스가 고향 마을로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흥미진진합니다. 토비아스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도가 지나친 증오, 그리고 토비아스 가족에게 닥친 여러 불행이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재미를 더하고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합니다. 핵심은 로라와 스테파니의 죽음이 전혀 다른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로라는 토비아스의 친구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고, 스테파니는 불륜 관계였던 교사 그레고어에게 살해됐습니다. 그중 로라 사건의 가해자였던 친구들의 부모가 현장을 조작하고 거짓 증언을 보태 토비아스에게 두 사건의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지요.

이때 과거 현장에 있었던 ‘남자’가 실은 유명 배우가 된 토비아스의 소꿉친구 나디아였다는 일종의 복선과 반전도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모든 사건을 목격했던 티스에게 그레고어의 아내인 다니엘라가 협박과 부적절한 약 처방을 통해 입을 막아 왔다는 사실도 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 진상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요.

동기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아들들의 범죄를 숨기려던 부모들, 남편 그레고어를 지키려 했던 다니엘라의 행동 모두 당연합니다. 나디아가 당시 진상을 밝히지 않았던 것도 그녀가 토비아스에게 강하게 집착했다는 묘사를 통해 잘 설명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독자가 '추리'를 할 만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건을 풀어가는 데에는 티스의 증언과 그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단서들도 모두 수사를 통해 차례대로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잘 짜인 수사물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정통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그리고 몇몇 설정은 다소 편의적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토비아스를 집단으로 폭행했는데도 경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든가, 토비아스가 하필 사건 당일 술에 취해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10년 전 어린 시절, 스테파니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 충격에 만취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시점에 친구들을 만났다고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다는 건 잘 설명되지 않아요. 마침 그날 아멜리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억지스럽고요.

가장 큰 문제는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보덴슈타인 아내의 불륜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게 다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도 불륜이 넘쳐나는 건 볼썽사나웠습니다. 아멜리가 토비아스에게, 보덴슈타인이 클라우디스의 처제에게 첫눈에 끌리는 설정도 이야기에 꼭 필요한지 의문이고요.

그래도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의 정교함이나 군더더기 없는 구성 측면에서는 부족하지만, 두 죽음의 진상이 차례로 밝혀지고 마을 사람들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의 흡입력은 충분합니다.

2026/10/03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 키르케의 마녀(2026) - 무라세 슈코: 별점 2점

전작에 이은 "섬광의 하사웨이"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넷플릭스로 감상하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3D와 2D의 조화입니다. 예전에 "원더풀 데이즈"에서 느꼈던 묘한 결합이 훨씬 완성도 높은 형태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케네스 대령이 기지 내부를 이동할 때 카메라가 복도를 따라 함께 움직이는 장면은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따라가는 실제 영화 촬영과 다를 바 없더군요. 이런 방식이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도 별다른 드라마는 없지만 꽤 재미있습니다. 평범한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연출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사웨이가 캐리아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멜로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어요. 이런 연출에는 적절한 음악 사용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특히 엔딩의 "Sweet child O'mine"은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건담에서 건즈 노래를 듣게 되다니!
"역습의 샤아"를 새로운 작화로 그려내어 하사웨이의 붕괴된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후반부 연출도 볼거리고요.

하지만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전 학습이 필요한 탓입니다. 저만해도 우주세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역습의 샤아"도 보았지만, 하사웨이가 왜 마프티에 가담했고 어떻게 조직의 리더이자 에이스가 되었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영화에서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심지어 이야기의 핵심 설정조차도 설명이 불친절합니다. 애들레이드에서 무슨 회의가 열리는지, 마프티가 왜 목숨을 걸고 이를 막으려 하는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든요.

인물 설정과 묘사도 아쉽습니다. 주인공 하사웨이 노아가 대표적입니다. 테러리스트 조직의 리더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나약하고 여자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많습니다. 카리스마도 부족하고 파일럿으로서의 실력이 특별히 부각되지도 않고요. 물론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아무로, 카미유도 미성숙한 인물들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의로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보기 힘든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이미 성인이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테러에 뛰어든 하사웨이와는 입장이 전혀 다르지요. 솔직히 왜 하사웨이가 주인공인지 의문입니다. 

기기 안달루시아와의 관계 역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운에 기대고 싶은 군대 지휘관 케네스가 그녀의 신묘한 능력에 매료되는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사웨이가 캐리아와의 관계까지 끝내가면서 그녀에게 빠져드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너무 어리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1년 전쟁에서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시대인데도 최첨단 병기를 여전히 소년들이 맡고 있다는 설정은 말도 안되지요. 일본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이제 시대가 변한 만큼 어른들이 등장할 때가 되었습니다.

앞서의 단점은 설정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시한 액션입니다. 크시 건담의 거대한 체급을 생각하면 미사일과 빔 위주의 원거리 전투가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기대하는 육중한 격투전의 재미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영상, 연출은 마음에 들고 건담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겠지만, 대부분의 일반 관객에게는 애매함이 더 큰 작품입니다. 건담 팬에게만 추천드립니다.

2026/10/02

들쥐 - 루드비코: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황장애로 10년 간 방문 밖을 나가지 않은 제문제는 신분을 '들쥐'라 자칭한 누군가에게 송두리째 빼앗겼다. 주위 지인들도 들쥐에게 포섭되거나 살해당해 아무도 남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건 제문제가 등쳐먹었던 사채업자 노자 뿐이었다. 노자와 손을 잡은 제문제는 들쥐가 중학교 때 작문부 친구들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래서 옛 중학교가 있던 섬마을로 향해 과거를 뒤지기 시작하는데...

루드비코의 장편 스릴러입니다. 동명 넷플릭스 드라마의 원작입니다. 핵심은 제목이기도 한 '들쥐'가 과연 누구인가에 있으며, 현재와 중학교 시절의 과거를 오가며 진상에 접근하는 전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인물은 옛 친구였다'는 기본 구도는 "20세기 소년"을 떠올리기는 하지만 '인생을 빼앗겼다'는 설정에서 차이를 보이고요.

가장 큰 장점은 들쥐의 정체가 밝혀질 때의 반전입니다. 들쥐는 제문제의 옛 친구 중 한 명인 오기완이었습니다. 동기들보다 세 살 많았던 오기완은 동네 파락호의 양아들이었는데, 원래는 제문제의 부모가 난임 때문에 입양했던 양자였습니다. 그들은 친아들 문제를 낳은 뒤 기완이를 유원지에 버리고 말았고요.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문제 어머니는 자살했던 겁니다. 이러한 반전은 오기완이 제문제의 인생을 빼앗은 동기의 설득력을 높입니다.

반전과 진상을 밝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작문'이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문제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던 기억을 그린 듯한 작문은 알고보니 오기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장소에 함께 있던 문제가 3인칭 시점을 1인칭으로 착각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결정적 단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드러나지 않게 숨겨서 교묘하게 녹여내는 솜씨는 돋보입니다.

그러나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세부 설정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신분을 빼앗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조직이 다단계처럼 회원을 모집하고 자선 단체로 위장한다는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지나친 과장입니다. 고위 경찰까지 조직에 속해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거대 조직을 등장시키는 것 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가볍게 처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제문제의 친구인 '안경'이 들쥐의 편이 되었으니 재산을 빼앗는 정도는 훨씬 쉬웠을 테니까요. 

제문제를 도작과 표절, 횡령까지 저지른 인물로 만든 설정 역시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문제가 옛 기억을 거의 떠올리지 못한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최소한 친구였던 오기완의 죽음이나 자신이 중상을 입고 입원했던걸 기억하지 못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전개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과거사가 지나치게 길다는 문제가 큽니다. 아이들의 일탈과 범죄가 장황하게 이어지는건 몰입을 방해합니다. 본편과 별 관련도 없고요.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사용하거나 액션 장면의 연출이 부족한 점도 최근 화려한 웹툰과 비교하면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반전은 좋은데, 반전에 도달하기까지 과장된 설정과 장황한 전개가 발목을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