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에 한 번 피는 '대나무 꽃'을 촬영하기 위해 식물 사진가인 네코타 나츠미와 자연 관찰가 도비야마는 행상인 료안의 도움으로 오스미반도 남단에 위치한 '치쿠모 마을(竹茂村)'을 방문했다. 이곳은 단 7가구의 주민들이 '노장사상(장자의 사상)'을 생활 규범으로 삼아 숨어 살듯 지내는 매우 폐쇄적인 마을로, 20년 전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이 방문한 직후 마을에서 키우던 동물들이 화살에 맞아 죽더니, 결국 주민 중 한 명인 메구미 돈이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이후 미쓰루, 료안 등이 차례로 죽지만 마을 공동체가 경찰의 수사마저 거부하자, 도비야마와 네코타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도리카이 히우의 데뷔작으로, 제21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원서로 읽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인 "죽음의 모래시계"가 영 별로였기에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좋았습니다.
폐쇄적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은 추리소설에서 흔하디흔한 설정입니다.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패턴이니까요. 치쿠모 마을은 장자의 사상을 따르는, 일종의 가족 같은 공동체입니다. 완벽하게 닫힌 공간은 아니라는 차이는 있지만, 용의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범인을 밝혀내는 '후더닛물'이라는 점에서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전형을 충실히 따릅니다.
추리적으로는 볼 만한 점이 많습니다. 메구미 돈의 참수, 미쓰루의 의문사, 료안의 살인 등 사건이 풍성합니다. 메구미 돈의 목은 누가, 왜 잘랐는지, 모두가 같은 술잔을 돌려 마셨는데 왜 미쓰루만 독살되었는지 등의 수수께끼도 흥미롭습니다. 탐정 역할의 도비 선배가 밝혀내는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메구미 돈은 미쓰루의 약혼자 아키라에게 최면을 걸어 제정신을 되찾게 하려 했습니다. 아키라가 어린 시절 참극을 일으킨 뒤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동물들을 죽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최면술 도중 아키라에게 빙의한(?) 다케시의 망령이 돈에게 화살을 쏘고 맙니다. 돈은 고통을 끝내기 위해 미쓰루에게 자신의 목을 베어 달라고 부탁했고, 함께 최면에 걸렸던 미쓰루가 그 말에 따라 목을 베었지요.
미쓰루는 이 사건 이후 죄책감으로 스스로 독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술잔을 이용한 독살 사건은 애초에 없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돈의 친구 료안이 미쓰루를 구하려고 입에 손을 넣어 토하게 한 행동 때문에, 아키라는 료안이 미쓰루를 독살했다고 오해합니다. 결국 아키라는 료안을 살해합니다.
이러한 진상을 밝혀내는 근거도 작품 곳곳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미쓰루가 들고 다니던 기묘한 봉의 정체가 바람총이었다는 점, 메구미 돈이 소장한 최면술 관련 서적 등이 대표적입니다. 네코타가 말한 '해석'을 료안이 할복할 때의 '가이사쿠'로 오해했던 대목도 재미있는 단서이고요.
배경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특히 장자의 사상을 사건에 연결한 발상이 독특합니다. 지도자인 '소' 가문은 장자의 직계 후손으로 여겨져 마을에 군림해 왔고, 소 가문의 대를 잇는 문제가 사건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죽림칠현에서 따온 주민들의 성씨 같은 세부 설정도 탄탄하고요. 또 이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장자의 사상을 소개하는데,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 마음에 듭니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치쿠모 마을의 폐쇄적인 분위기 묘사도 좋습니다. 대나무 꽃에 대해서도 몰랐던걸 많이 알게 되었고요.
그러나 핵심 반전은 화자인 네코타가 아키라를 남자로 착각한 데 크게 의존합니다. 미쓰루가 성인이 되는 날짜도 아닌데 성인 대접을 받는 이유는 결혼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상대는 아키라뿐이라는 설명에는 무릎을 치게 됩니다. 그 외에도 네코타가 착각한 이유는 나름대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화자의 착각에 지나치게 의존한 반전이라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아키라가 중요한 모임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작위적이에요.
사건의 진상에도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최면술로 아키라의 정신을 되찾게 한다는 설정부터 무리입니다. 메구미 돈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 목을 베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사람의 목을 단칼에 베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 리도 없습니다. 장자의 후손을 모신다는 이유로 마을 전체가 장자의 사상에 지배된다는 설정도 대담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집니다. 마지막에 아키라가 네코타 일행을 살해하려 한 이유도 불분명해요. 둘만 죽이면 소 가문의 후계자로 어떻게든 마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여겼던걸까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연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기묘한 수수께끼와 독특한 배경을 좋아하는 추리소설 독자라면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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