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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3

400년의 유언―죽음의 정원의 죽음 - 츠카토 하지메: 별점 4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의 사찰 류온지에서 정원사 이즈미 시게타케가 목에 공구가 박힌 채 소년을 끌어안고 발견되었다. 역사사물보전재단 직원 가와베 다쓰헤이 역시 옷이 앞뒤로 바뀌어 입혀지고 양쪽 손목이 절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두 사건이 4년 전 류온지에서 벌어진 시게타케의 아들 신타로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나섰다.

신사와 사찰을 순회하는 보안원 가게야마는 시게타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인연으로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가 남긴 말의 의미를 추적하던 가게야마는 일련의 사건을 풀 열쇠가 류온지의 창건과 역사에 얽힌 수수께끼에 있음을 알아내는데…….

정말 오랫만의 독서입니다.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아서 원서를 번역해서 읽었습니다. 

교토의 사찰 류온지를 주 무대로 하는 작품인데, 류온지의 구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지만 중반부터는 굉장히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쿠레 키리시탄의 역사와 센노 리큐의 할복, 리큐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가설을 류온지라는 가공의 절에 결합한 상상력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류온지가 실은 박해받는 기독교 신자들의 성당이었다는 발상도 신선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탄탄합니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했던 류온지의 구조는 물론이고 정원석과 석등, 건물과 족자의 기묘한 특징들이 성당의 기능과 상징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는걸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덕분입니다.
족자 "네마겐게쓰"의 비밀이 대표적입니다. 이 그림은 도코노마 너머에도 공간이 이어지는 듯한 착시를 만드는데, 그 가상의 공간을 실제 건물에 더하면 오쿠쇼인 전체가 거대한 십자가가 된다는 것이지요.
단순한 학술적 토론에 그치지 않고, 석등에 불을 붙인 뒤 ‘용의 꼬리를 움직여라’라는 전승에 따라 잉어돌을 움직이자 석등이 회전하며 빛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장관으로 이를 극대화하는 연출도 좋습니다. 우물 속 성모상이 드러나는 장면도 인상적이에요.

리큐의 할복과 뒤이은 류온지 초대 주지 료도의 할복을 기독교 신앙과 연결하는 설명도 지적 재미를 더합니다. 리큐에 관한 가설의 진위와 별개로, 작품 안에서는 설득력 있게 활용됩니다. 나름대로 팩션같은 느낌도 주고요.

현대를 무대로 한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시케타케를 살해한 범인이 현장에서 도주할 수 없었다는 불가능 범죄, 범인 군지의 알리바이 트릭 등 수수께끼와 트릭이 풍성한 덕분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합니다. 예를 들어 시케타케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설치했던 장치로 일어났다는게 밝혀집니다. 피해자를 살해한 흉기였던 버어니어 캘리퍼스(밧줄 고정 용도), 가게야마가 발견한 나무에 걸려있던 밧줄, 쓰토무 소년이 목이 졸렸던 이유, 시케타케가 오래전 사냥 등으로 생활했다는 등이 단서로 제공됩니다.

이런 유형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물게 경찰의 활약도 인상적입니다. 군지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다카시나 형사거든요. 그는 '조작된' 녹음테이프에 담긴 팩스 작동음의 시각이 군지가 팩스를 보냈다고 증언한 때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또한 ‘온기쿠’의 배송 차량에 위치 추적기를 부착해 알리바이를 꾸몄다는 사실도 간파하지요. 피해자 가와베의 손목을 자른 이유도 추론을 통해 밝혀내고요. 간만에 보는 경찰의 활약이었어요.

하지만 대담한 상상력은 돋보이지만, 16세기에 창건된 류온지에 이처럼 정교한 장치들이 설치되었다는 것도 현실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류온지의 구조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장치들의 동작 원리는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도 문제고요. 그리고 설령 당시에는 작동했더라도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 움직인다는 점은 비현실적입니다.
탐정 역인 가게야마가 시게타케의 친아들이었다는 반전과 친구 다카시나의 아내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는 설정도 굳이 필요하지 않았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은 작품인만큼, 국내에도 정식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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