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작 |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중,단편집입니다. 이 시리즈의 탐정은 범죄 심리학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로 작가 아리스 시리즈라 불리우는 이유는 작품의 왓슨 역이 저자 이름과 같은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원서로 읽고 리뷰를 남긴 “러시아 홍차의 비밀” 도 같은 시리즈의 한권이죠. 뭐 제가 좋아라 하는 일본 본격 추리 단편집이니 당연한 마음으로 사서 읽었습니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대표작은 “국명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좀 엉뚱한 시리즈가 먼저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만.
감상평은 뭐랄까, 좀 애매하네요. “국명 시리즈” 이기도 한 “러시아 홍차의 비밀” 보다 재미와 수준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전체적인 책 자체의 평균은 비슷하지만 “러시아 홍차의 비밀” 은 수록작품의 편차가 커서 좋은 작품은 굉장히 좋은 반면,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수준은 엇비슷하지만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들이 모여 있어서 딱히 끌리는 작품은 없거든요. 또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특징이기도 한 정교한 트릭에 매몰되어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눈에 많이 거슬렸고요. 이런 단점까지 존경한다는 엘러리 퀸을 닮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어쨌건 별점은 3점입니다. 신본격 대표작가의 정통 추리 단편집을 국내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기에 가산점을 더했습니다.^^
총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데 작품별로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부재의 증명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 + 순간이동 트릭 등이 결합된 정통 퍼즐 미스터리물입니다.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이용한 결정적 단서 포착 부분은 좋았으며 동기와 범행 방식, 범인의 행동도 설득력이 넘쳐서 완성도가 높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의 베스트 작품이었습니다.
지하실의 처형
형사가 수배중인 테러리스트 들에게 사로잡힌채 그들의 처형 의식의 목격자가 된다는 기본 설정은 독특했지만 애당초 범인이 둘중 하나라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꽉 짜여진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의 추리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기에 그다지 대단하거나 놀라운 진상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요. 차라리 논리 퍼즐 형태의 미스터리로 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쨌건 정통 추리의 맛을 느끼기 어려웠고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기에 이 단편집에서의 워스트 작품으로 꼽겠습니다.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
2건의 다이잉 메시지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2건 중 첫번째 메시지는 너무나 특정한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며, 중간의 히무로의 착안이 명확하기에 해당 정보를 알고 있다면 크게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지 않아 그다지 정교한 트릭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어가는 사람이 그런 정교한 도안을 그릴 수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요. 두번째 메시지는 피해자의 행동이 그럴싸 하다는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하고 피해자의 의도와 다른, 하지만 정확한 결론이 도출된다는 점은 신선한 발상이 엿보였습니다. 첫번째 메시지의 작위성만 없었다면 괜찮았을텐데 아쉽네요.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이 책에서 가장 긴, 중편분량의 정통 추리물로 고전적인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긴 분량에 걸맞게 트릭 자체는 공들여 잘 만들어진 트릭으로 추리적으로는 만족할 만 한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야기 전개에 있습니다. 범인이 범행을 하는 동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동기가 되는 첫 사건의 동기는 전혀 설명되지 않으며, 애당초 첫번째 범행에서의 증거가 너무나 결정적이기에 두번째 사건이자 주 사건의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보여지거든요. 한 사건의 범인임이 명백하고 증거도 확실한데 왜 다른 사건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토끼”라는 상징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어서 나중에는 짜증마저 일었고요. 추리적 완성도가 높은, 잘 짜여진 작품이지만 이야기 전개에 실패한 작품으로 보이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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