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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날개 달린 어둠 - 마야 유타카 / 박춘상 : 별점 1.5점

 

날개 달린 어둠 - 4점
마야 유타카 지음, 박춘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작가 고즈키는 친구인 명탐정 기사라즈와 함께 이마가카미 가문의 대저택 '창아관'으로 향한다. 가문의 맏형 이토로부터 받은 의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이토가 살해되고, 그 뒤 이마가카미 가문 일종이 한 명씩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기사라즈는 죽은걸로 알려진 당주 다지마가 범인이라는 추리를 펼쳐지는 빗나가고 만다. 실의에 빠진 기사라즈가 창아관을 떠난 사이, 새롭게 나타난 명탐정 메르카토르 아유가 기사라즈가 범인이라는 추리쇼를 펼친다. 고즈키가 흔들릴 정도로 명추리였지만 이는 돌아온 기사라즈에 의해 논파당한다. 그 뒤 메르카토르마저 범인에게 살해당하는데...


마야 유타카가 쓴 신본격 추리 소설.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작가, 작품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본 본격 추리 100선' 목록에 꽤 높은 순위로 랭크되어 있어서, 정통 본격물이 땡기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본격 추리물은 제 몸의 필수 영양소니까요.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이라는 불가능 범죄, 피해자 목을 베어버리는 기묘한 엽기 범죄에 무려 11명이나 죽어나가는 연쇄 살인극이며, 누가 범인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를 탐구해 나가는 후더닛하우더닛 물이라는 점에서 본격 추리물인건 맞습니다.무대가 되는 고성 창아관, 피해자들이 피에 물든 저주받은 재벌 가문이라는 소재도 전형적이지요.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고요. 당연하게도 개성 넘치는 명탐정도 등장합니다. 무려 2명이나요. 이 탐정들 - 메르카토르 아유, 기사라즈 - 이 차례대로 펼치는 추리쇼도 볼 만 했습니다. 
이런 부분들만 보면 딕슨 카가 쓴 초기 방코랑 시리즈 느낌도 살짝 들었습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딕슨 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후더닛, 하우더닛 측면은 현대 시점에 맞지 않고 설정은 유치하지만 나름 괜찮아요. 문제는 와이더닛, 즉 왜 범행을 저질렀나? 왜 이렇게 저질렀나?에 대한 설명이 엉망진창입니다. 명탐정이라는 기사라즈의 추리도 황당하고요.
우선 기사라즈가 추리한 범인 기리에의 동기부터 살펴 보지요. 그는 일그러진 일렉트라 컴플렉스가 동기로, 그녀가 아버지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추리합니다. 일단,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게 저 뿐만일까요? '죽음의 세례'니 뭐니 있어보이는 말을 장황하게 털어놓지만, 증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궤변일 뿐이에요. 이런 말에 넘어가는 주변 인물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차라리 어린 자신을 방치했던 아버지 스가히코와 이마카가미 가문을 향한 복수심 때문이었다면 그나마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범행이 엘러리 퀸이 발표했던 '국명 시리즈'에 맞게끔 연출되었다는 추리는 실소를 자아냅니다.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동기에 적합한 방법도 아닙니다. 십자가에 매다는 연출이 필요했다면 그냥 스가히코만 죽여서 매달면 되지, 다른 가문 사람들을 살해해서 엘러리 퀸 작품 제목처럼 전시할 이유는 없잖아요. 범인 기리에가 자살로 이 사건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면 더욱이 할 필요가 없었죠. 동기보다 방법이 앞서는 주객이 전도된 추리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토, 아리마가 죽은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추리는 최악이었습니다. 두 명의 목을 한 번에 벨 때, 머리가 밀려서 한 쪽 머리가 떨어진 목에 두 번째 머리가 붙어서 잠시 살아나 움직였답니다! 그 뒤 문을 잠그고, 열쇠를 쥔 상태에서 목이 떨어져 죽은다네요! 이게 명탐정이라는 작자가 할 소리입니까? 이런걸 추리라고 믿고 수긍하는 경찰은 대체 뭐하는 인간들일까요?
그나마 명탐정스러웠던건 기리에가 '일본어를 읽지 못한다'는걸 드러내는 추리 딱 하납니다. 하지만 가문 직계 후예 중 남은게 기리에 밖에 없으니, 범인이 그녀인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의미없는 추리에요. 무려 11명, 아니 12명이나 되는 가문 일족이 몰살당할 때 까지 방관하는 인간이 명탐정인지도 의심스럽네요.

그나마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진짜 진상 덕분에 본격물로서 체면 치례는 합니다. 범인은 가정부 히사로 변장한, 2년전 사망한 걸로 알려진 가문의 여주인 이마카가미 기누요라는 거지요. 이를 통해 <<일본 어치의 수수께끼>>는 일본에서만 발표된 제목이라,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기리에가 그 작품처럼 자살한건 이상하다는 맹점은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해요. 기누요는 버젓이 놓여 있는 여벌 열쇠를 써서 밀실을 만든 겁니다. 여벌 열쇠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본인이 강하게 주장해서 밀실처럼 보인 것일 뿐이죠.
우네비 살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도 그녀의 증언으로 성립될 뿐이며, 처음에 야마베가 보고 놀란 머리는 우네비 머리가 아니라 다지마 머리였다는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일꾼 야마베는 우네비를 몇 번 보지 못했고, 얼굴에 화장이 되어 있어 다지마의 머리를 우네비로 착각했다는건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리고 야마베가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뛰쳐나갔을 때 머리를 우네비로 바꿔치기 해서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아울러 '머리'를 자른 이유로도 타당한 트릭이라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그녀가 아나스타샤 공주라서 '퀸'이 쓴 작품을 토대로 사건을 저질렀다는건 기사라즈의 추리만큼이나 억지스럽습니다. 뜬금없는 아나스타샤 울궈먹기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수십년인 살아오며 일군 가족을 자기 손으로 이렇게 파멸시킨 이유가 단지 피가 황인종과 섞였다는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떨어져요.
범행 역시 마찬가입니다. 90이 넘은 그녀가 무려 11명이나 차례로 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범인임을 생각도 못한 피해자들이나 여성들이야 그렇다쳐도, 메르카토르라던가 스가히코는 이렇게 맥없이 당할 이유가 없지요. 둘은 가정부 히사가 이미 살해된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나타나면 당연히 경계하고 조심했었겁니다. 스가히코를 죽이고 십자가에 매다는 등 힘과 체력이 필요한 범행을 저지른 방법도 설명이 없고요
2년 전 자신이 죽었다고 위장하고 가정부 히사로 변장하여 가족 앞에 나타났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 역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90이 넘은 러시아 할머니가 변장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니, 억지도 정도껏이어야죠.
추리 작가이자 화자인 고즈키가 자신이 가문에서 쫓겨난 시이쓰키의 아들로 메르카토르의 이란성 쌍동이 형제라는걸 밝히는 반전도 솔직히 불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추리'라는 부분에서 볼 만한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교과서적인 본격 추리물이기는 하니까요. 문제는 '일본' 교과서라는 거지요. 일본 특유의 억지와 무리수 설정, 전개가 난무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추리만을 위해 쌓아올린 작위적이며 어설픈 이야기로 읽어보실 필요 없는 졸작입니다. 이런 작품이 이름을 올린 리스트는 더 이상 참고하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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