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선장들 -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I. W. 테이버 그림, 박중서 옮김/찰리북 |
철도 재벌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15세 하비는 어머니와 함께 여객선으로 유람 여행을 하던 중, 실수로 바다에 빠진다. 그를 구해준건 대구잡이 스쿠너 어선 위아히어호였다. 선장인 디스코 트루프는 대구 조업 기간 중 하비를 월급 10달러 50센트를 받는 견습 선원으로 고용한다. 하비는 디스코 선장 아들인 댄과 친구가 되고, 선원인 롱 잭, 톰 플랫, 마누엘, 농부인 솔터스 삼촌과 삼촌이 보살피는 환자 펜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거의 5개월에 걸친 대구잡이 항해에 따라 나서는데....
러디어드 키플링의 고전 해양 모험 소설. 아주아주 오래전,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작품인데, 정식 완역본이 나와서 기쁜 마음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마크 쿨란스키가 쓴 <<대구>>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대구>>에서도 자세하게 설명되었던, 미국 동부 지역 대서양 대구 어업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스쿠너 선 항해에 대한 묘사는 물론 스쿠너 선에서 보트를 내려 줄낚시로 잡고, 모선에서 직접 줄을 내려 잡기도 하고, 때로는 주낙으로 대량으로 포획하는 등 잡는 방법도 다양하고, 미끼에 절인 조개와 손질한 대구 부산물, 오징어까지 활용하는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잡은 대구를 손질하는 방법도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해설을 보았더니,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를 번역하신 역자분이 번역하셨더군요. 역시나 <<대구>>에서 이 책이 인용된걸 읽은게 계기였다고 하시고요.
대구 어업 외에도 이런저런 디테일이 눈길을 끕니다. 톰 플랫이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프리메이슨이라서 프랑스 배와 수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이야기처럼요. 실제로 방대한 자료 조사, 인터뷰가 바탕이 되었음직한 묘사였습니다.
당연하지만 태풍에다가 사고에 의한 죽음도 많이 등장합니다. 술에 취한 채 항해하다가 그대로 침몰하여 승무원 전원이 죽기도 하고, 거대 증기선에 들이받힌 제니 쿠시먼호가 침몰하는 끔찍한 사고도 생생하게 그려지거든요. 그 외에도 폭풍이나 사고로 인한 작은 죽음도 여러 번 등장하고요. 마지막 추모일 행사는 그 정점입니다. 수많은 죽음, 과부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결국,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결말로 끝납니다. 하비의 아버지 셰인은 하비를 구해준 보답으로 댄을 자기 선단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합니다. 그러자 댄의 어머니는 아버지, 오빠, 조카 둘, 둘째 언니 남편까지 바다에서 잃었다면서 동의하지요.
<<대구>>에 따르면 1830~1900년 사이 바다에서 실종된 글로스터 어민 숫자는 3,800명인데, 당시 글로스터 인구는 1만 5000명밖이었다니 엄청난 죽음입니다. 1862년 2월 24일은 강풍으로 하룻밤 새 무려 120명이 빠져 죽었다고 하고요. 이만한 극한 직업은 찾아보기 힘들거에요.
하비의 월급도 위험한 항해의 또 다른 증거입니다. 조사해 보니, 1900년대 1달러를 지금의 5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디스코 선장은 하비에게 월급으로 10달러 50센트를 준다고 약속했죠. 지금 화폐가치로는 525만원 정도 되는 셈입니다. 바다, 어업에 대해서는 아는게 하나도 없는 하비에게 선뜻 이 만한 돈을 줄리가 없어요. 말 그대로 생명 수당인 것이죠.
그런데 소설 치고는 특별한 드라마는 없습니다. 모두 실제 어업 활동에서 있음직한 사건, 사고들 뿐이거든요. 이럴바에야 그냥 논픽션으로 써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어요. 드라마로 들어간 내용 - 건방지고 무례했던 재벌 2세 하비가 바다 사나이들과 거친 항해를 겪으며 진짜 남자로 성장해 나간다 - 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기도 하니까요. 디스코 선장에게 한 대 맞은 뒤 급작스럽게 개심하여, 성실한 선원이 되는 모습부터가 별로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또 디스코 선장이 하비를 선원으로 고용하여 활동에 나선건 명백한 잘못입니다. 초짜 중의 초짜인 무고한 생존자를 사지에 내몬거나 다름이 없잖아요? 실제로 하비도 두어번 죽을뻔 했고요. 하비 아버지인 셰인이 보답이 아니라 고소를 하지 않은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디스코 선장이 하비를 사고로 위장해 죽이는 이야기로 풀어내었다면 어떨까 싶어요. 항해가 끝나면 견습 선원은 필요없고, 월급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디스코 선장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죽었을테니 사건이 드러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들 댄이 친구가 된 하비를 구하러 몰래 자기 보트에 하비를 태워 보내는거지요. 하비는 모진 고생 끝에 항구에 도착하고요. 아,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었나 봅니다.
아울러 솔터스 삼촌과 펜 이야기는 독특했지만, 이야기 본질을 흐리지 않나 싶더군요. 펜이 원래 목회자 제이컵 볼러로 존스타운 홍수로 아내와 자녀 4명을 눈 앞에서 잃었다는 과거는 끔찍했습니다만, 대구 잡이 선원의 삶이 그거보다 나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지옥인 셈이지요. 또 솔터스 삼촌이 도가 넘치게, 본인도 생명을 걸어가며 펜을 챙겨 대구 잡이에 나서는걸 보면, 둘이 연인(?) 관계가 아닌가 싶은데 후대 평론가들의 평이 궁금해집니다.
그래도 바다와 맞서 대구를 낚는 어부들의 활동은 분명 영웅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도 그 활동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대단한 재미를 선사하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