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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골든 슬럼버 - 이사카 고타로 / 김소영 : 별점 2.5점

 

골든 슬럼버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택배 기사로 일하다가 아이돌 린카를 구해줘 유명세를 탔던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오랫만에 대학 친구 모리타를 만났다. 그러나 모리타가 준 음료수를 먹고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잠에서 깬 뒤, 모리타는 도망치라며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총리 암살과 관련된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다는 말이었다. 반은 억지로 도주를 택한 아오야기는 경찰에 쫓기며, 총리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썼다는걸 알게 되는데....


이사카 고타로가 쓴 서스펜스 스릴러. 작가의 대표작입니다. 2009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1위 등 차지했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던 이력이 있지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되기도 했었고요. 그동안 두께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지만, <<남은 날은 전부 휴가>>가 재미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일반인이 거대 조직에 의해 누명을 쓰고 도주하는, 이른바 <<도망자>> 장르물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이쪽 장르 작품들과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스케일입니다. 무려 일본 총리를 암살했다는 누명이니 아내를 살해했다는건 비교할 수도 없지요. 누명을 씌우려는 조작도 증거를 조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매스컴을 활용하는 수준입니다.
작 중에서는 '이미지' 구축이라고 언급되는, 아오야기가 범죄 성향이 있었다는걸 조작해서 드러내는 이 매스컴 활용 과정이 특히 재미난데 우선 아오야기에게 치한 누명을 씌운 뒤 도주하게 만드는 걸로 시작합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 증언이 이어지고요. 그리고 아오야기가 저지르지도 않았던 패밀리 레스토랑 난동을 조작하고, 음험해 보이는 사진을 골라 매스컴에 공개하는 등으로 범죄자 이미지를 덧 씌웁니다. 이는 과거 영웅 이미지에 대한 반동으로 더 큰 충격을 불러 일으키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만듭니다.
총리 암살 누명을 씌우기 위한 공작도 여성에게 호감을 가진 척 연기를 시켜 RC 헬리콥터를 구입하게 만드는 등 디테일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과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 덕분에 설득력도 높고요.
그리고 두 번째 차이점은 진범을 잡거나, 흑막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흑막은 경찰보다도 위에 있는 거대 조직임이 암시될 뿐입니다. 결말도 아오야기가 겨우 도주하고, 성형 수술을 해서 모습을 감추는게 전부에요. 허무하고 시시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이기는 합니다. 경찰까지 좌지우지하는 세력 앞에서 누명을 쓰고 도주하는 평범한 일반인이 할 수 있는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차이점만 있는건 아닙니다.이 쪽 장르물의 재미 요소, 장점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습니다.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과정 묘사부터 빼어납니다. 단지 도망만 다니는게 아니라, 아오야기가 겪었던 경험들, 아오야기가 맺었던 여러가지 관계가 도주를 돕는걸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요하게 등장하는건 대학 시절 친구, 연인과의 경험과 추억입니다. 친구 모리타에게 배웠던 '밭다리 후리기'를 작중 내내 잘 활용하며, 대학 시절 알았던 버려진 차를 도주에 활용하고 있거든요. 과거 아르바이트 했던 도도로키 연화의 도움을 받아 불꽃놀이를 터트려 도주에 성공한다는 클라이막스도 마찬가지고요. 아오야기가 택배 기사로 일했던 시절 익혔던 정보를 이용한 도주극도 꽤나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인간관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택배 회사 선배 '록' 이와사키 에이치로, 예전에 도와주었던 아이돌 린카 및 옛 연인 하루코 등이 적절하게 등장해서, 적절한 도움을 주거든요.
여러가지 디테일들도 돋보입니다. 하루코가 아오야기는 범인이 아님을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아오야기는 밥풀을 남기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아오야기가 범행 전 먹었다는 돈가스 집 주인이 TV에 나와서 "밥풀 하나 안 남기고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니까!" 라고 말하는걸 보는 장면이지요. 그 외에도 비틀즈의 'Help'를 부르는 노숙자를 도와준 뒤, 그 노숙자가 나중에 아오야기에게 도움을 주는 등 디테일은 아주 좋았습니다.
이런 대학 시절 추억과 여러가지 경험들, 아오야기의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사건에 휘말려 도주하는 과정과 엮어 교차시키는 구성도 일품입니다. 등장인물과 시점을 달리하는 복잡한 교차 전개에 능한 작가 특징이 잘 살아있거든요. 제목처럼 '골든 슬럼버'라는 곡을 돌아갈 수 없는 청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는 묘사들도 인상적이었어요.

결국 성형 수술로 도주에 성공한 아오야기에게 하루코가 딸을 통해 "참 잘했어요" 라는 최고급 칭찬을 남기는 장면, 부모님에게 비난같은 안부 편지를 보내는 장면도 마음에 드네요. 승리는 하지 못했어도 최소한 살아남기는 했으니까요. 맞아요. 죽어 천국보다는 살아 지옥이 낫습니다. 일단 살고 봐야죠. 나중에는 신분 세탁에 성공해 르포라이터가 되는 듯 하니 다행입니다. 두 장면 모두 앞서 설명된 복선이 적절하게 사용되는 등 디테일도 여전했고요.

그러나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해진다는 단점은 어쩔 수가 없군요. 앞서 말씀드렸듯 스케일이 큰 탓에 아오야기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오야기가 이 모든게 누명이며 조작되었다는걸 증명할 증거도 없고요. 그냥 도주만 이어나갈 뿐입니다.
도주 역시 초, 중반부까지 아오야기 혼자 이어나갈 때와 비교하면, 연쇄 살인마 미우라가 도와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영 이상해집니다. 우선 연쇄 살인마가 아오야기를 도와줄 이유가 도무지 설명되지 않아요. 단지 경찰, 공권력이 싫었다 치더라도, 도쿄로 이송되던 아오야기를 차로 들이받아 탈출시킬 정도로 도와줄 이유는 없잖아요? 본인도 생명과 체포당할 각오를 해야 벌일 수 있는 행동인데 말이지요. 미우라를 통해 자기 모습으로 성형 수술한 가짜가 있다는걸 알게 되고, 그 의사에게 성형 수술을 받게 된다는 결말도 편의적이고 작위적이었어요. 한 마디로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미우라' 카드를 내미는 식인데, 정도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다른 도주 과정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부지 어딘가에 있는 버려진 차의 존재가 대표적이지요. 거의 10여년 버려졌던 차가 배터리 교체만으로 움직일 거라는건 솔직히 말이 안됩니다. 이럴 거라면 택배 기사 시절 자동차 정비를 어느정도 배워서, 그 기술로 차를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하는게 더 나았을거에요.
경찰도 딱히 하는게 없어서 도주 과정의 긴박감이 잘 살아나지 못합니다. 시민의 편이 아니라 흑막의 편임을 강조하는 무자비한 체포 과정 묘사만 두드러질 뿐이에요. 아오야기가 미우라 도움으로 대포폰을 확보하고, 폐차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경찰이 추적하지 못한다는 것도 좀 어이가 없었고요. 앞서 뭔가 두뇌파인 듯 등장했던 경찰 과장 사사키가 실상 하는게 없는 탓도 큽니다. 시큐리티 포드를 이용한 정보 수집도 거창한 소개에 비하면 정작 하는건 별로 없고요.

그리고 아오야기가 보이는 행동들도 많이 답답했습니다. 미우라가 말한대로 자기 모습으로 성형 수술한 가짜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건 말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해결책으로 생각한게 방송을 통해 직접 이야기를 하는 정도라는건 순진함이 도가 지나쳐요.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흑막이 너무 거대해서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건 별로 없긴 합니다만, 그의 말을 누가 믿어줄걸로 생각한다는게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더라고요. 무슨 말을 해 봤자 '이미지'를 덧씌워 가공하는건 일도 아닐 뿐더러, 무엇보다도 아오야기에게는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경찰이 말한대로, 범인이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뻔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내지라면 별점은 2.5점. 도주극, 스릴러로서 기본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아서 감점합니다, 제가 읽은 작품들 중에서도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네요. 그래도 엔터테인먼트로는 아주 우수한 만큼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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