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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완전 범죄 연구 - 사노 요 / 김한경 : 별점 2.5점

일본 추리 작가 사노 요가 쓴 단편 6편이 수록된 단편집.

이전 <<금색의 상장>> 리뷰에서 언급해 드렸듯, <<금색의 상장>>과 함께 국내에 유이한, 사노 요 단행본입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하였습니다. 가격은 배송료 제외하고 2만원. 1991년 발간 당시 정가는 210여 페이지에 3,500원이었지만 뭐, 이 정도면 적절한 가격이라 생각합니다. 절판본 중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형성된 책도 많으니까요. 잠깐 찾아보니 <<환영박람회>> 1~4 권 셋트는 최소 160,000원에서 시작하네요.

하여튼, 읽어보니 그동안 구전되어 왔던 명성의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어' 만큼은 확실히 좋았거든요.

그러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다소 아쉽습니다. 좀 더 길게, 설득력있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작품이 꽤 되거든요. 단편에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빼어나기 때문에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오랜 숙제를 끝낸듯한 후련한 기분은 보너스고요.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체이동>>
<<중앙일보>> S 지국 지방판에 기묘한 기사가 실린다. 누군가 자동차 3대에 벌거벗은 마네킹을 가득 담고 이동했던 사건이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오이카와는 기사에 흥미를 보이고, 기사를 쓴 젊은 기자 사쿠라이에게 사건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사쿠라이와 중앙일보 지국 조사를 통해, 자동차 3대에 실렸던 마네킹 18개 중 17개가 별장지인 '학자촌'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오이카와는 마네킹 사건은 친구인 심리학 교수 이나무라 가즈히코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눈치채고 그를 추궁하는데...

이야기는 이나무라가 참석했던 대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담에서 문학 평론가 시노다는 차로 시체를 산 속에 버리는건 완전 범죄에 가깝지만, 불시 검문이나 불의의 사고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나무라는 이에 동의하지요. 

문제는, 여기에서 마네킹은 벌거벗은 여성 사체를 위장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되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사체를 버리러 가면서 구태여 이상한 티를 낼 이유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마네킹 운반자들은 무려 2번이나 검문을 받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목격되어 이동 경로도 곧바로 밝혀지고요. 이럴 바에야 불시 검문, 불의의 사고와 같은 예상치 못한 불운은 무시하고, 혼자서 차 트렁크에 시체를 넣고 이동하는게 훨씬 상식적이고 납득이 가는 행동일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결말까지 허술하지는 않습니다. 마네킹 관련 사건은 오이카와가 날조했다는게 진상이거든요. 동기는 이나무라가 오이카와의 횡령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오이카와는 이나무라를 독살한 뒤, 이나무라가 범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자살했다며 완전 범죄를 완성시키지요. 말 그대로 '완전 범죄 연구'라는 표제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또 오이카와는 이나무라를 살인범처럼 보이도록 매스컴을 이용했는데 그 발상과 과정에 대한 묘사도 꽤 그럴듯했습니다. 기자가 기사로 자살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지만 기자가 기사를 만들어서 있지도 않은 범행을 엮은 뒤, 그걸 남에게 뒤집어씌워 자살을 위장한채 죽인다는 이야기는 처음 봤네요.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이나무라가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라는건, 오이카와의 주장 뿐입니다. 이나무라가 살해했다는 여대생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요. 앞서 이야기한대로 마네킹 작전은 어이가 없었을 뿐 아니라, 고용한 학생과 자동차 번호로 이나무라가 주도했음이 뻔하게 드러날 겁니다. 조금만 조사가 이루어져도 이나무라가 살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는건 금방 드러났을 거에요. 그런 점에서 치밀한 계획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전개에 문제가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위장 자살>>
K시에서 부정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요 증인이었던 시장 비서 자살 후 수사는 중단되었고, 시장은 구속되지 않았었다.
얼마 뒤, 도쿄에서 살던 K시 출신 아키코는 자살했다는 비서를 긴자에서 목격한다. 아키코는 비서 나카바야시가 국회의원인 삼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다. 아키코의 이모 사에코는 애인인 전직 기자 다자키 류이치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자키는 비서가 비슷한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하여 살해했다고 추리하는데...


다나카가 내놓은 추리는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은 나름 반전이 있어서 신선했어요. 우선, 다자키 때문에 근무하던 은행에서 횡령을 저지른 사에코는 이 트릭을 그대로 이용하여 도주할 계획을 세웁니다. 마침 자기와 꼭 닮은 카페 주인 도무라에 대해 알게 돠었기 때문이에요. 도무라를 죽이고 자신이 자살한걸로 위장한 뒤, 다자키와 함께 도주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나카바야시 비서건은 아예 조작이었고, 다자키와 아키코가 공모하여 사에코를 죽이려는게 진상이자 반전이 드러납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나카바야시 비서 사건과 관련된 추리 모두가 아예 조작이었다는 발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키코의 말 외에는 증거가 없는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어서 깜빡 속아넘어갔네요.

문제는 다자키와 아키코가 손을 잡고 사에코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에 의외성이 없다는 겁니다. 사진 한 장, 그리고 아키코와 다자키의 말 외에는 사에코와 꼭 닮았다는 도무라라는 여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요 이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리도 없으니, 다자키와 아키코가 꾸민 계략이라는건 뻔합니다.
또 아키코와 사에코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사에코가 다자키에게 나카비야시 목격 증언을 이야기하게 해서 추리를 듣는 흐름도 좀 이상해요. 사에코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차라리 함께 사는 아키코와 사에코가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는게 더 설득력이 높지요.

모든게 거짓이라는 대담한 발상은 좋지만, 이렇게 전개에서 보이는 단점 때문에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증거 인멸>>
어느날 작가인 나에게 미카미 노리코가 찾아 왔다. <<반대급부>> 라는 단편 속 주인공이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골 현청 만년 과장 구로카와가 간부후보생인 엘리트 다가가 저지른 음주 교통 사고를 자신이 낸걸로 뒤집어 쓰는 내용인데, 실제로 미카미 노리코의 아버지 미카미 조키치도 시골 현청 만년 과장으로 교통사고를 저지른 이력이 있었다.
미카미 조키치는 퇴직 후 일자리를 찾아 도쿄에 상경한 후 육교에서 투신 자살했고, 노리코는 아버지를 죽인건 교통사고를 실제 저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순수하게 창작한 작품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상당히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 우연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재미있는건 미카미 조키치 자살 사건이 아니라 미카미 노리코가 살해당한게 진짜 핵심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경찰이 이를 밝혀낸 추리도 합당합니다. 처음에 노리코는 원래 책을 읽지 않는 조키치 유품 속에서 이 책을 남편 유사쿠가 발견하고, 장인 어른 이야기 아니나며 건네주었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조키치는 책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이 책 속 단편이 자기 이야기란걸 알았을까요?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조사한 결과, 책에는 조키치의 지문이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즉, 노리코의 남편 유사쿠가 꾸민 거짓말이었던거지요. 유사쿠는 장인어른이 자살한 사건을 이용하여 노리코를 움직이게 만든 뒤, 그녀를 살해하고 그 죄를 실제 작품 속 또다른 모델인 엘리트 공무원 이케다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겁니다.

'진짜처럼 보였던 이야기가 사실은 특정 인물의 말 외에는 증명할 도리가 없는 거짓말'이었다는건 이 단편집 수록작들 대부분에 해당되는 설정인데, 이 작품에서는 특히나 적절하게 잘 사용되었다 생각됩니다. 정말로 자기가 쓴 소설같은 과거가 있었으며, 조키치는 그 사실이 폭로되는걸 두려워한 이케다가 살해한게 아닐까 하는 화자인 작가 생각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인상적이고요.

그런데 유사쿠가 별다른 조작없이 살인을 저질러 체포된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앞서 이 정도로 꼼꼼히 조작한 증거를 내세울 정도였다면, 실제 범행도 본인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교묘하게 저질렀어야 했어요. 알리바이 하나 없이 체포되자마자 자백한다는건 많이 시시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유사쿠가 저지르는 범행만 더 꼼꼼하게 그려낸, 중편 정도 분량이었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살인계약>>
재계의 거물인 후나사와 료스케가 살해된다. 공개된 유언장에는 여류 추리 소설가 에모토 유리노에게 7천만엔을 상속한다고 적혀있었다. 경찰은 7천만엔을 받기 위해 에모토 유리노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재판에 회부한다. 밀회를 위해 가명으로 호텔에 드나든 탓에 그녀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데...

무고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완전 범죄를 완성시키는 범죄극입니다. 후나사와 료스케가 살해당한건, 에모토 유리노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무효화 시키기 위해 저지른 자작극이라는게 진상이거든요. 회사를 손에 넣기 위해 비열한 수단을 동원했던 증거를 그녀가 몰래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노인성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료스케는 그녀를 살인범으로 몰고 죽습니다. 세상은 살인범이 가진 증거 따위는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고, 보기 좋게 성공합니다. 에모토 유리노가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 지옥에 빠졌다는 결말은 인상적이네요.

그러나 료스케가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건 좀 설득력이 없고, 살인범이 가진 증거라도 회사에 치명적일 수는 있다는 점에서는 헛점이 보입니다. 이 쪽 바닥 걸작인 카트린느 아를레가 쓴 <<지푸라기 여자>>와 비교한다면, 에모토 유리노는 정말 무고하다고 보기는 힘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완전 상속>>
유산한 충격으로 아내가 자살한 미즈키에게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아내가 다카라이라는 남자때문에 매춘을 하다가 자살했다고 전해 준다. 미즈키는 경찰 시로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상담하고, 어떤 여성이 다카라이를 중상모략하는 전화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카라이가 정말로 살해당하는데...

중상모략하는 전화를 건 범인은 아내 아키요였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서른 살 이상 차이나는 다카라이와 결혼했었습니다. 유산이 목적이었지요.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린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다카라이보다 먼저 죽으면 아들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게 되기 때문에, 다카라이가 먼저 죽은 뒤 자신이 죽게끔 수를 쓴 겁니다. 억울한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다카라이가 범인이라고 전화를 걸다 보면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다카라이를 살해할걸로 생각한거지요. 다카라이가 살해되면, 그 유산은 아내인 본인이 상속받고, 본인이 죽으면 아들에게 모든 유산이 상속되게 되니까요.
이는 제목 그대로 '완전 상속' 범죄인 셈입니다. 당시 수사 기술로는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으니, 아키요가 전화를 걸었다는걸 밝혀내는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전화를 걸었다는게 드러나더라도, 직접 범행을 저지른건 아니기도 하고요.

순전히 운에 의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아쉽지만, 계획만큼은 정말 비상했습니다. 약간의 설득력만 더하면 걸작이 될 수 있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심리 살인>>
경찰인 나에게 조카딸 미나코가 찾아와 괴상한 편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나는 미나코의 남편인 신용금고 이사 하야마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의심했고, 하야마가 어떤 여성과 아이를 몰래 만난다는걸 알게 되었다. 장난은 더욱 심해져 미나코가 자살 미수까지 저질러서 나는 하야마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미나코가 하야마를 살해하는 사건을 저지르는데..


자신이 미친 걸로 위장해서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심신 미약 등으로 무죄 방면된 뒤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야마가 아니라 미나코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며, 불륜남이 전화를 거는 등으로 조작에 협력한거지요.

증거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범죄이기는 한데, 좀 뻔했습니다. 미나코에게 장난을 걸 사람이 없다면, 장난 자체가 조작이라는건 당연하니까요. 미나코에게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이미 나온 상황이고요. 경찰이 불륜남을 조사하지 않은건 직무유기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네요. 불륜이라는 동기도 식상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수록작 중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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