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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7

사우스포 킬러 - 미즈하라 슈사쿠 / 이기웅 : 별점 2.5점

사우스포 킬러 - 6점
미즈하라 슈사쿠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구단 도쿄 오리올스에 2년 전 입단한 좌완투수 사와무라는 시즌이 진행되던 어느 날, 정체모를 인물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큰 일이 아니라 생각해 신고하지 않았지만, 팀 레전드 좌완 미우라 선수의 150승 기념 파티장에서 다시 폭행당한다. 그리고 사와무라가 승부 조작에 관여하여 폭행당했다는 투서가 매스컴 관계자들에게 전송되는데...

일본 프로 야구를 무대로 한 범죄 스릴러 작품. 제 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고노미스)' 대상 수상작입니다.

프로 야구를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은 많지 않지만, 국내 출간작은 대부분 읽은 편입니다. 추리 소설 만큼이나 야구도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이쪽 작품들에서는 '승부 조작'이 많이 등장합니다. <<최후의 도박>><<최후의 일구>>, 이 바닥 고전인 <<스트라이크 살인>> 등이 대표적입니다. 프로 야구를 범죄와 엮는데 승부 조작만한게 없기 때문이겠죠.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부 조작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궁지에 몰린 주인공이 스스로 범인을 잡는 이야기니까요.

이런 류의 이야기는 누명 탓에 구렁텅이로 빠지는 묘사가 중요한데,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와무라 주변 매스컴과 선수진, 지도자, 구단주의 모습과 그 변화가 상세한 덕분입니다.
상세한건 야구 관련 묘사 디테일도 뒤지지 않습니다. 사와무라가 펼치는 야구 이론이 대표적이에요. 웨이트 및 각종 트레이닝에 대한 지론, 투구법과 투구 배분 등 모두가요. 사와무라의 주장은 올드 스쿨인 감독 가쓰라기와 코치 시마타니와 대립하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작가가 야구에 대해 많이 조사했구나 싶었어요. '본격 야구 미스터리'라는 홍보글은 허언이 아닌 셈이에요. 팀 레전드지만 투수 혹사에 일가견이 있는 가쓰라기 감독은 우리나라 감독님들이 몇 명 떠오르기도 했고요.

사와무라의 소속팀인 도쿄 오리올스 묘사도 그럴싸합니다. 일본 최고 인기 구단이며 선수들 개개인의 인기와 연봉부터가 높지만, 그 덕에 트레이드가 쉽다는 설정을 사건과 엮어 활용한 솜씨도 제법이고요. 스캔들을 싫어하는 팀 성격상 트레이드가 잦게 일어나는데, 타팀은 단일 리그가 현실화 될 수 있어서 프로야구 맹주인 오리올스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기본 설정과 선수들 스캔들이 드러나느니 함구하고, 다른 팀으로 보내버리는 방식에서는 실제 모델이 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구단주 하타다와 모든 팬들이 사랑하는 감독간 알력 다툼 이야기도 굉장히 와 닿았어요.

그러나 이런 류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을 누명에 빠트린 범인의 정체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사우스포 킬러'는 팀 레전드이자 구 에이스 미우라였습니다. 그가 앞서 몇 년에 걸쳐 오리올스 좌완 투수들을 트레이드로 다른 팀에 보내버린건, 자기가 선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되고요. 협박범 다카키를 시켜 라이벌이 될 만한 젊은 좌완 투수들 약점을 잡은 뒤, 구단을 협박한겁니다.
그러나 젊은 좌완들이 없어진다 한 들, 선발 자리는 실력이 없으면 보장받기 힘듭니다. 선발에 꼭 좌완이 한 명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제 응원팀 두산의 장원준 선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간 계투로 떨어질 시간을 번다는 의미는 있지만, 그래봤자 2~3년에 불과했을거에요. 그리고 트레이드로 다른 유망한 투수를 받으면 어떻게 할 셈이었는지 모르겠네요.
아울러 2년간 일곱 명이나 되는 좌완 투수를 이렇게 트레이드로 보내버렸다면, 진작에 소문이 나도 났을겁니다. 제 응원팀 두산만 해도 한국 시리즈 우승팀인데 지난 2년간 1군에서 버텼던 좌완은 유희관, 이현승, 함덕주 선수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일곱 명을 다른 팀에 보낸다? 누가 봐도 수상합니다.

미우라가 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혹시 모를 트레이드 방지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이유 역시, 선발로 경쟁력이 없다면 트레이드가 아니라 방출을 걱정해야 할 테니 그리 설득력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최고 구단 오리올스가 아니면 연봉, 방송 활동 등 수익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게 뻔했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력이 부족하면 연봉이 깎이는건 당연할 뿐더러, 지방 구단도 팀에 따라서는 연봉과 처우, 인기에 문제는 없습니다. 일본 프로 야구 구단으로 치자면 소프트방크가 좋은 예이지요.

그래도 미우라가 금전적으로 절박한 상황이라는 설명은 살짝이지만 등장합니다. 덕분에 연봉과 처우에 집착한다는건 아예 말이 안 되는건 아니에요. 더 큰 문제는 사와무라를 영원히 매장하려 한 이유가 아예 설명조차 되지 않는 거지요. 다른 경쟁자들처럼 트레이드로 보내버리지 않고요.
빼어난 재능을 가진 사와무라에 대한 질투였다? 이렇게 복잡하고 거창한 조작을 할 이유는 없어요. 청부업자를 시켜 불구를 만드는게 더 낫죠. 이미 미우라는 과거에 경쟁자 치노 류스케를 직접 폭행하여 불구로 만든 전력이 있습니다. 한 번 저질렸다면, 두 번 못할 이유는 없을겁니다. 승부 조작은 누명임이 드러나서 사와무라는 이전보다 더 큰 인기와 주목을 얻게 되기까지 하니, 긁어 부스럼만 만든 셈이에요. 애초에 무기명 투서를 통해 유망한 투수에게 승부 조작 누명을 씌우는게 성공할리도 없습니다.
또 정체가 드러나기 직전까지 미우라는 사와무라를 도와주는데 이 역시 이해 불가입니다. 예를 들어 미우라는 사와무라가 트레이드 당한 좌완투수들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줍니다. 자기가 사주한 범죄를 파헤치려는 사람과 범죄 피해자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범인이 도와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돼요.

이를 헐리우드 스타일로 뻔하게 풀어낸 이야기 구조도 그닥입니다. 마지막에 미우라가 직접 나타나 사와무라를 폭행하다가 덜미를 잡하는 결말이 대표적입니다. 악당이 주인공 앞에서 진상을 줄줄이 읆으며 자기 죄를 자백한 뒤, 바로 응징당한다는 멍청한 헐리우드 범죄물과 똑같아요. 오히려 헐리우드 범죄물보다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다카키를 시켜 납치까지 했다면, 구태여 직접 폭행하려고 나설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와무라가 납치 후 폭행당하고 수면제까지 강제로 먹지만, 선수 생명을 걸고 등판하여 8회말까지 150개가 넘는 공을 넘게 던지며 투혼을 발휘해 승리한다는 결말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극적이며 드라마틱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아요. 미우라가 사주한 범행으로 모든게 누명이었다는게 드러난 이상, 구태여 등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몸이 재산이며,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평소 사와무라의 지론과 어울리지도 않았고요.

그 외에도 뻔하고 작위적인 부분은 많습니다. 여배우 미레이가 관련된 부분들은 대체로 그러합니다. 사와무라를 습격한 패거리 중 한 명이 누구인지를 그 자리에 '우연히' 있던 미레이가 알아채고 사와무라에게 알려준다던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미레이가 사와무라를 '우연히' 내려준 곳에서 협박범 다카다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식이거든요. 사와무라는 미레이가 범인 다카키에게 조종당한거라고 오해했는데, 우연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보다는 오해가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역시나 '우연히' 비번이었던 경찰 친구 쓰쓰미가 사와무라를 미행하다가 납치당한걸 알게 된다는 등 극적인 분기에 우연이 많이 작용한다는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많이 찾아보기 힘든 프로 야구 소재 스릴러이며, 프로 야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식견이 발휘되었다. 재미 측면에서도 나무랄데 없다는 장점은 확실합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 전개는 다소 불만이지만,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야구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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