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진기한 가면을 모아놓았다는 '기면관'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 추리 소설가 시시야 가도미는 자신을 닮은 환상, 괴기 소설가 휴가 교스케의 부탁으로 기면관에서 열리는 기묘한 의식에 참석하게 된다. 그것은 기면관의 주인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자신과 생일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또 하나의 자신'을 찾는 의식으로 참석자에게 200만엔이라는 거액의 보상이 주어지기에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휴가로서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것. 시시야 가도미도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물이라 호기심으로 참석하게 된다.
의식에는 모두 6명의 닮은 꼴들이 모이고 그들 모두 가게야마 이쓰시와의 개인 면담을 진행하나 다음날 가게야마 이쓰시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 '기면관'은 폭설로 고립되는데...
아야츠지 유키토의 대표 시리즈인 관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 작품.
관 시리즈의 장, 단점이 모두 극한으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장점이라면 신본격의 대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이름에 걸맞는 본격물이라는 점이 가장 크겠죠. 모든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설정도 괜찮습니다. 바로 범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기면관의 2대 주인이고, 살해당한 가게야마 이쓰시는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찾던 3대 주인이라는 것인데 이 것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교묘한 전개는 충분히 인상적이에요. '수면제를 먹이고 가면을 씌운 이유'라는 기묘한 상황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과연 '관 시리즈' 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요.
또 탐정역인 시시야 가도미의 추리를 진행에 따라 전개에 녹여내어 독자가 이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 전개에 있어 허투루 배치되지 않은 설정들이 많다는 것도 추리소설 지망생으로서 배울만 했습니다. 추리를 드러내는 것은 사건의 핵심 3요소를 꼭 집어 알려주는 부분이 대표적이며, 추리에 활용되는 설정은 아르바이트생 도코가 사실 신게츠류 유술의 달인이라던가, 환희의 가면이 콘택트렌즈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 미네르바라는 잡지 로고에 대한 이야기 등입니다. 이러한 디테일의 활용에 있어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한 정보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했어요.
마지막으로 기존 '관 시리즈'에서 느껴지던 변격물적인 느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덜하다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이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데 저는 '호' 쪽이었습니다. 읽기가 훨씬 깔끔했고 내용도 보다 합리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범행도 나름대로 상식적(?) 으로 그려지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라는거죠. 본질을 찾는다 어쩌구 하면서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불러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하룻밤 보낸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실적이지가 않잖아요?
거기에 관 시리즈에 등장하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비밀 장치도 작위적이라는 점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최악은 별관으로 탈출하기 위해 이용한 비밀통로입니다. 이를 열기 위해서는 '기면의 가면'을 대고 균등하게 눌러야 하기 때문에 기면의 가면을 쓰고 있던 가게야마 이쓰시의 시체 목을 잘랐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눈이 이렇게나 많이 왔으면 눈을 뭉쳐서 가져다대고 눌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애초에 가면을 대고 누른다고 힘이 균등하게 들어간다는 것도 넌센스고 말이죠.
참석자가 모두 동명이인이라는 것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범행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가면'과 열쇠를 훔치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뭐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기껏 훔쳐봤자 폭설로 고립된 상황에서 뭘 어쩌겠단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가게야마 이쓰시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도 다음날이면 범행이 밝혀졌을테니까요. 이럴거라면 차라리 참석자와 하인들까지 모두 죽이고 도망가는게 도주에는 훨씬 유리했을 겁니다.
오니마루와 도코 등 참석자 외 관계자에게 수면제를 먹이지 않은 것도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라도 모두 재우는게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관계자들은 모두 범행 시각에 잠을 자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범행도 많이 틀어져버렸으니까요.
도쿄 근처에서 폭설로 고립되고, 구조를 요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너무나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장, 단점 모두 신본격이라는 장르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신본격물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교과서이니만큼, 이쪽 장르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여러모로 '소설' 보다는 '만화'나 '영화'같은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 매체에 더 적합한 이야기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