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 - 샤를로테 링크 지음, 서유리 옮김/뿔(웅진) |
삼손 시걸은 직업도 없이 형, 형수와 함께 낡은 집에서 머물며 동네 여자들을 살펴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청년. 그런데 그의 흠모의 대상인 질리언 워드의 남편 토머스 워드가 살해되고, 삼손은 형수 밀리가 경찰에 그의 일기를 신고한 탓에 유력 용의자로 몰려 도주하게 된다. 질리언 워드 남편 살해범은 카를라 로버츠와 앤 웨스틀리 독거 노부인 두명 연쇄 살인사건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어 경찰의 수사가 집중되는 상태.
삼손은 질리언의 불륜 상대자인 존 버턴의 도움을 얻어 몸을 숨기고, 존 버턴은 토머스 살인 사건은 원래 질리언을 노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일 여류작가 샤를로트 링크의 작품. 충격적인 프롤로그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왠만한 내용으로는 충격을 받기 힘든 요즈음이지만 아동 성애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죠. 솔직히 기분은 아주 불편했습니다만... 여튼, 이 프롤로그가 3건의 연쇄 살인이 펼쳐지는 본문 내용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10월, 11월, 12월 등 순차적으로 기입된 날짜들로 친절하게 구분된 목차가 단지 시간 흐름 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정교한 복선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띱니다. 첫 도입부인 10월 생일 파티 현장에서의 에피소드가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다던가, 타라가 이미 12월에 눈치챘던 존의 과거 성범죄 기소 이력을 1월까지 모른 척 한 것, 질리언이 타라에게 부동산 업자 루크 팜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 등이 모두 마지막 반전, 진상으로 연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이책으로 69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걸맞게 잘 짜여진 소설은 아닙니다. 쓸데없는 묘사와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코틀랜드 야드의 수사 관련 내용입니다. 놀랍게도 완전히 불필요하거든요. 결국 사건은 혼자 수사하는 전직 경찰 존 버턴의 활약에 의해 해결되며, 그것도 존 버턴이 혼자 잠복하여 리자 스탠퍼드를 만난 것이 결정적 단서라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물론 존 버턴도 경찰 내부에서 결정적 정보를 얻기는 합니다. 허나 이는 경찰 수사 방향과는 무관하기에 경찰은 전혀 하는게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첫 등장, 수사 과정에서 비교적 유능한 것으로 생각된 피터 필더 경감은 경찰을 그만둔 뒤 잘나가는 존 버턴에게 질투나 느끼는 한심한 중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기는 등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초반부 뭔가 있어 보임직했던 사회부적응자 삼손 시걸의 묘사도 분량에 비하면 별 볼일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경찰 관련 묘사와 삼손 시걸 묘사만 들어내도 1/3 이상 깔끔하게 압축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장황한 심리 묘사까지 덜어낸다면 금상첨화일 테고요.
추리적으로 놓고 보아도 별 볼일 없습니다. 탐정역인 존 버턴의 수사는 우직한 탐문,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것 불과해서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리자 스탠퍼드의 거처를 알아낸 순간 이야기는 끝난거나 다름없죠. 두 피해자와 질리얼 모두와 관계가 있는 것은 타라밖에 없으니까요.
범죄 측면에서도 무언가 의미가 있어보였던 엘리베이터 장난과 심야의 드라이브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단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동기 자체는 설득력 있다 하더라도 정체가 드러나기 쉬운 무모한 행동임에는 분명하잖아요. 꽤 오랫동안 이런 행위를 반복했는데도 타라가 들키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그녀 어머니 사체를 진작에 치워버리지 않은 것과도 일맥상통하겠죠.
아울러 범행의 핵심 동기인 '구조 불이행죄'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실제로 범행을 저지른 인물보다 그것을 방조한 인물의 죄가 더 크다는 논리는 다른 몇몇 작품에서도 접한적이 있지만 단 한번도 그것이 합리적이라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미쳤다는 것으로 설명된다면 아예 이런 동기도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마지막 숨겨진 별장에서의 범행 고백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작위적이라 허무하기까지 했습니다. 질리언을 다른 피해자들처럼 질식사 시키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물론 좋은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다른 유사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 타라의 분노는 어린 시절 지옥을 맛보게 한 의붓 아버지의 성폭행을 방조한 어머니로 향하며, 다른 방관자들에 대해서도 어머니와 같은 분노를 느꼈다는 식으로 설명되는건 그럴듯 했어요. 삼손 시걸의 캐릭터도 독특해서 이런 류의 작품에 등장하는 싸이코치고는 착한 인물이라는 의외성에 더해 마지막 장면에서의 활약은 나쁘지 않은 등 독특함은 분명히 전해줍니다.
불륜을 저지른 질리언이 잠깐의 실수로 앞으로 살아가며 정말 힘든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는 전개도 마음에 듭니다. 불륜을 쉽게만 보는 다른 작품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스무레한 타 범죄 스릴러 대비해서 딱히 차별화되는 점도 없고요. 그냥저냥한 평작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교보문고 전자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었는데 종이책은 이미 절판되었더군요. 딱히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독일 작가 작품인데 영국을 무대로 한 것은 좀 희한합니다. 미치광이 엘리트 살인자가 나돌아다니는 작품을 모국 무대로 쓰기는 싫다는 기묘한 애국심이 작용한 것은 아닐테고, 이유가 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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