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포레 |
Q_는 얼마전 저지른 흑인 소년 성추행 건으로 정기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청년. 그는 유명 교수의 아들이지만 변태적인 싸이코로 진화하여 '전두엽 절제 수술'로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일종의 성노예 좀비를 만들 꿈을 꾸는데....
명성이 자자했던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 스티븐 킹이었나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현대를 대표하는 공포, 호러 소설 중 한편으로 극찬했던 작품이라 평소 관심이 가던 차에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제 생각과는 굉장히 달라서 의외네요. 실제로 좀비가 등장하는 크리처 호러를 생각했는데 작품은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같은, 변태 싸이코 살인마의 범죄극이더군요.
하지만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재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에서 봄직한, 무의미한 범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고요. 예컨데 앞서 말씀드린 <<내 안의 살인마>>의 주인공 루 포드의 범죄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즉 그냥 '죽이고 싶으면' 벌이는 무계획적이고 돌직구같은 범죄입니다. 그러나 Q_의 범죄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이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수행하는 과정이 그려진다는 점에서는 조금 독특했어요.
또한 소문대로 묘사력만큼은 대단합니다. 그 중에서도 범죄 행위에 대한 묘사들은 그야말로 발군이에요.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는 '다람쥐'를 잡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죠. 디테일이 지나쳐서 쉽게 모방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세세한 디테일 - Q_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먹는 음식이나 입고 있는 옷, 기타 여러가지 설정들 - 을 적재적소에 그려내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드러나고 부각되게 만드는 솜씨도 훌륭합니다.
아울러 전두엽 절제 수술로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좀비'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아요. 쉽사리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본인에게 별다른 매력도 없는 싸이코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설득력이 높습니다. 좀 이해가 안되는 것은 대학을 수차례 다닐 정도로 기본적인 지성은 갖춘 (것으로 보이는) Q_가 전두엽 절제 수술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 부분입니다만, 뭐 미친 놈이니까요. 최소한 '최면술' 따위나 실제 좀비 전설의 원전인 '부두교 주술'보다는 과학적이긴 하고요.
260여 페이지에 여백도 많아서 읽기 쉬웠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별다를 것이 없는 범죄극에 딱 맞는 적절한 분량이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살인마>>도 별로 제 취향이 아니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주인공 Q_ (쿠엔틴인데 1인칭 시점에서는 항상 Q_로 묘사됩니다)가 상상 이상의 변태고, 범죄도 혐오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입니다. 하드고어적인 내용만 보면 <<살육에 이르는 병>>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생각될 정도니 말 다했죠. 그에 더해 Q_의 동성애 취향, 그리고 기껏 전두엽 절제술로 만든 좀비를 만들어 성노예로 부릴 것이라는 목표는 너무 싸구려 성인물 취향이라 역겨웠습니다.
또 엽기적인 변태 싸이코가 등장하더라도 <<내 눈에 비친 악마>>에서처럼 별다르게 범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파멸하는 전개라면 모를까, 이렇게 살아있을 가치가 전무한 주인공이 벌이는 엽기 행각이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또 앞으로도 성공할 것 같다는 마무리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Q_가 자신이 관리하는 하숙집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다면 충분히 오랫동안 들통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치더군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거장의 매력은 충분히 살아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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