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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1

W의 비극 - 나쓰키 시즈코 / 추지나 : 별점 2.5점

W의 비극 - 6점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학 재벌 와츠지 가문의 딸 마코의 가정교사인 이치조 하루미는 마코의 박사학위 논문을 도와주기 위해 일족이 휴가를 보내는 후지 5대호, 야마나카 호반의 별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날 밤, 비명 소리와 함께 와츠지 요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마코는 할아버지에게 강간당하기 전, 저항하다가 할아버지를 살해하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일족은 추문을 덮고 마코를 지키기 위해 외부에서 강도가 잠입했다고 진상을 조작하려 하는데...

나쓰키 시즈코의 대표작입니다. 오래전 절판본을 어렵게 구해서 읽었었는데, 고맙게도 재간되었더군요. 몇 년 전 일이긴 하지만 다시 읽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의외였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일까요? 예전에는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더군요.

물론 아래의 "민법 제 891조 2항"에 기초한 설정과 진상은 여전히 괜찮습니다.

* 민법 제 891조 아래에 해당하는 자는 상속인이 될 수 없다.
2. 피상속인이 살해당했음을 알고 이를 고발하지 않거나 고소하지 않은 자. 단, 그자에게 시비를 변별할 능력이 없을 때나 살인범이 배우자 또는 직계 혈족이었을 때에는 예외로 한다.

유산 상속이 진짜 동기라는 사실을 숨기고 별장에 모인 일족과 관계자들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이 진상을 독자에게 교묘하게 숨기고 경찰과의 두뇌 싸움을 그린 도서 추리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전개도 훌륭합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후지 5대호 지방 중 아사히가오카 야마나카코촌을 무대로 여정 미스터리 분위기를 선보인 것도 좋고요.

하지만 민법 제 891조 2항의 존재가 300여 페이지의 분량 중 약 200페이지, 즉 2/3 지점에서 드러나는게 문제입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흘러가며, 급격히 힘을 잃거든요. 이어지는 다쿠오의 조사로 '배우자 또는 직계 혈족은 예외'라는 점까지 밝혀지면서, 이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 인물이 단 두 명만 남게 되어버리게 되어 더 뻔한 전개로 흐르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범인인 와츠지 미치히코와 이치조 하루미가 1:1로 담판을 짓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오래된 서스펜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같은 작위적인 전개의 끝판왕이었어요. 악당이 아무런 실익도 없이 진상을 고백하며 여주인공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녀를 흠모하는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 구해준다는건 지금은 멸종해버린 설정이라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이전까지 별다른 암시가 없던 하루미와 쇼헤이에게 갑작스레 연애 감정을 부여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쇼헤이는 어떻게 하루미가 어디 있는지 알았을까요? 그것도 경찰보다 먼저요?

상황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와츠지 미치히코는 요시에만 잘 회유해서 입을 다물게 한 뒤, 마코의 단독 범행으로 계속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물증은 전혀 없고, 진상을 아는 사람도 요시에와 마코뿐이니까요. 버티기만 했다면 그의 승리는 거의 확실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미를 납치해 살해하려 하다니, 어처구니없습니다.

요시에가 쇼헤이를 유혹하려는 시도 역시 전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하루미)가 엿듣고 있다는 전제에서나 성립하는 작전이기 때문입니다. 마코의 뒤에 있는 인물이 미치히코나 요시에밖에 없다는 점에서 독자의 시선을 요시에 쪽으로 강제로 돌리려는 장치라는 건 알겠지만, 좀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핵심 설정만큼은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멋진 아이디어지만, 전개가 뻔하고 마무리도 작위적이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예전의 호평에는 절판본을 어렵게 구해서 읽었다는 개인적 감상이 많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예전에 읽었던 모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일족이 모인 파티에서 유이한 두 외부인 중 한 명이 살해당하자, 일족은 다른 한 명을 범인으로 만들려 한다는 서늘한 작품이었지요. 이 작품처럼 제가 와츠지 일족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다면, 이치조 하루미를 범인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와츠지 요헤가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을 듣고 유혹하려 했다가, 요헤의 모욕적인 거절에 격분해 살해했다. 하지만 요헤의 반격에 함께 죽게 됐다는 시나리오, 제법 그럴듯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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