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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0

내가 그를 죽였다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내가 그를 죽였다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예 시인 간바야시 미와코와 유명 작가 호타카 마코토의 결혼식에서 호타카가 독살당했다. 호타카에게 버림받은 동물병원 조수 나미오카 준코도 음독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동반 자살을 위해 호타카가 먹는 비염약에 독을 섞은 것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결과, 그녀가 호타카의 비염약을 바꿔치기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와코는 약을 바꿔치기할 수 있었던 용의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 하는데...

가가 형사 시리즈로,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에 이어 범인을 명시하지 않는다는 실험적인 시도를 한 두 번째 작품입니다.

일단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보다는 추리적으로 훨씬 낫습니다. 특히 ‘필케이스에 전혀 다른 인물의 지문이 찍혀 있었다’는게 스루가 나오유키의 범행을 증명한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탁월합니다. 필케이스에 독약을 넣고 그것 자체를 바꿔치기한 것이라면, 당연히 호타카와 접점이 없는 다카히로는 용의자에서 제외됩니다. 남은 두 명인 스루가와 유키자사 중에서 스루가가 '호타카 전처의 짐을 맡았다'고 말했으니 범인은 스루가라는 결론이 도출되고요. 이 정도면 독자에게 충분히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본격 추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물론 미와코가 다카히로에게 케이스를 넘겨주었을 가능성도 있고, 유키자사 가오리가 호타카와 관계가 있었을 때 케이스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경찰에서 수사를 보강할 필요는 있겠지만, 독자는 넘어가도 무방할 듯 합니다.).

그 외에도 나미오카 준코가 사망한 장소를 밝혀나가는 디테일—상품 전단지에 쓴 유서, 머리에 묻은 잔디, 샌들에 묻은 흙, 짝이 맞지 않는 휴대폰 충전기 등—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실험적인 시도 때문인지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제법 많습니다. 우선 캡슐의 개수에 대한 지루한 공방이 그렇습니다. 자살 시체가 놓인 상황에서 과연 캡슐이 몇 개였는지를 세고 있을 정신이 있을까요? 스루가는 시간이 좀 있었으니까 혹시 몰라도, 방에 잠깐 숨어 있던 유키자사 가오리의 눈에 캡슐 개수가 들어왔다는건 영 설득력이 없습니다. 저만 해도 매일 먹는 알약이 지금 몇 개 남았는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그녀가 ‘여섯 개 있었다’라고 증언해봤자, 그 증언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건 핵심 증거(필케이스)에서 독자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억지 설정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요.

또한 준코가 캡슐을 구한 시점이 금요일 오후였기 때문에 약통에 독을 집어넣을 틈이 없었다는 주장은, 뒷 부분에서 다카히로 혼자 1층에 있을 때 그녀가 필케이스에 독약을 넣었다는게 밝혀지면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누군가 집에 있을 때도 독약을 넣는 게 가능했다면, 밤에도 넣는 것이 가능했을 테니까요. 왜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에 더해 마지막 추리 쇼는 작위적이라는 단점의 절정입니다. 가가가 수집한 증거라면, 이런 비공식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 대신 스루가를 바로 연행해 취조하는 게 더 합리적이니까요. 캡슐에 집착하면서 용의자들을 몰아붙이는 장면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런 연출이 있어야 소설로서 성립되니 트집 잡긴 애매하지만, 가가의 말처럼 애거서 크리스티의 세계에 가까운 소설같은 이야기라는건 분명합니다.

용의자인 스루가 나오유키, 유키자사 가오리, 간바야시 다카히로의 시점이 번갈아 전개되는 구성도 흥미로우나 이들 중 한 명이 범인이기에 전개 역시 객관적이지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근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대부분이 이런 방식인데, 개인적으로는 썩 마음에 들지 않네요. 범인 시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가공한다는 점에서는 "악의"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악의"는 애초에 수기 형식을 빌린 서술 트릭물에 가까운 작품이니 비교 자체가 어렵지요.

또 호타카를 누구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인간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묘사하여 용의자들의 동기를 그리고 있는데, 지나치게 주관적인 심리 묘사 탓에 오히려 감정선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에요. 특히 스루가의 속내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용의자들이 모두 자기 변호에만 급급하다 보니 오히려 간바야시 다카히로가 가장 수상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스루가는 흠모하던 여인이 죽었고, 유키자사는 낙태를 한 바 있어 ‘죽음’과 연결되지만, 간바야시는 여동생에 대한 그릇된 애정을 제외하면 호타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동기 면에서는 가장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설령 동기가 있다 해도 여동생의 결혼식을 망칠 인물 같지는 않습니다. 동기를 드러내려면 본인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표현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키자사가 아이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설정을 다른 인물의 시선을 통해 묘사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와 재미 모두 전작보다는 낫지만, 다양한 단점이 뚜렷한 범작이라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마찬가지로 정답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추리소설로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작품을 마무리한 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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