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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마술은 속삭인다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1.5점

마술은 속삭인다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공무원이었지만 거금을 횡령하고 사라진 아버지때문에 고향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고 살던 마모루는 어머니 사후 이모댁에 얹혀살게 된다.
평화로운 시기는 잠시, 택시운전을 하던 이모부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모 가족을 돕기 위해 특기인 열쇠따기 기술로 피해자 요코의 방에 잠입한 마모루는 그녀의 죽음에 수상한 흑막이 있음을 눈치채게 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1989년작 장편소설. 도입부부터 중반 전개까지는 상당히 흥미로왔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연쇄적인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그녀들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재미나거든요. 특히나 책 뒤 해설에서도 잠깐 언급되듯, 마모루가 이 사건에 얽히게 되는 계기가 마모루가 얹혀사는 이모부의 택시에 요코가 추돌한 사고사라는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자연스럽게 두 사건이 만나 마모루가 사건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될 뿐더러, 이 추돌사고로 마모루의 뒤를 봐 주는 요시타케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니까요.

그러나 중반부까지의 흡입력있던 전개는 뒤로 가면 갈 수록 힘을 잃고 맙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핵심 트릭이 하라사와 노인이 구사하는 최면술인 탓이에요. 간단한 암시만으로 사람을 죽게 만드는 식으로 마음대로 조종할 뿐더러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 몇마디 걸어서 최면을 걸게 만들다니! 누가봐도 수상할 뿐더러, 더군다나 쫓기는 입장이거나 뒤가 켕긴다면 더더욱 말려들지 않으려 할텐데 당치도 않죠. 어떻게 죽은 여자들에게 최면을 걸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아울러 작중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는 암시에 의한 서브리미널 효과도 최근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다고 합니다. 아니, 뭐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작품 속 내용처럼 뒤가 켕기는 사람들이 삽입된 영상을 보고 폭주할 정도는 아닐겁니다.
한마디로 - 본 작품의 영상물을 감상하셨다는 각시수련님 말을 빌어 - 요약하자면 "트릭을 양념으로 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작품" 입니다. 이 정도 최면술이면 이미 추리가 아니라 SF가 아닐까 싶네요.

전개 역시도 마모루 시점이라 자세하게 들어가면 약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코의 죽음 이후, 왜 그녀의 가족은 응답 메시지 테이프를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한번 듣고 평범한 중학생이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았으니, 가족들 역시 간단하게 그녀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었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하긴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간단하게 원격 조종 살인을 범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구태여 남긴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긴 합니다. 그 외에도 최면술사일 뿐인 하라사와가 다카기 가즈코가 숨은 곳까지 알아낸 방법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대충 쓴 느낌이에요.
또 진짜 사건의 원흉인 다카기 가즈코가 살아남은 뒤 구원을 얻는다는 결말도 석연치 않으며, 마모루의 열쇠따기 능력이 몇몇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는 합니다만.... 필살기가 아닌 잔재주 정도에 그치는 것도 조금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마술사와의 한판 승부에서 큰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개인기 정도에 불과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마모루의 아버지가 공금을 횡령하고 바람을 피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자수를 했느냐, 도망을 쳤느냐가 가정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다 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램과 기다림이 헛되었다는 것 때문에 마모루가 분노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그냥 봐도 매장당해야 하는 인물이잖아요. 딱히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게다가 어떻게든 마모루를 돌봐주려는 요시타케와 비교하면 요시타케를 매도하는 하라사와 노인이야말로 사악한 연쇄살인마일 뿐이라 뭐 잘났다고 훈계를 늘어놓는지 당쵀 알 수가 없더군요. 복수해야 할 대상인 다카기 가즈코가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 취재를 한 것에 불과한 하시모토까지 죽인, 용서의 여지가 없는 악당이잖아요? 그가 말하는 정의나 마모루에 대한 충고 모두가 와닿을리가 없죠.
마모루와 미야시타 요이치의 왕따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전형적이라 할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성장기 스타일의 일본 소설들은 왕따 이야기에 왜 이렇게나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 정도 시련을 겪지 못하면 어른이 못 된다는 뜻인가? 여튼,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초중반부 전개는 나쁘지 않고 흡입력도 제법이지만 엉성한 설정 탓에 잘 짜여진 작품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낡은 최면 이론을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작품을 쓴 결과물이랄까요. 에테르 세계관 시절에 쓰여진 SF가 떠오르는군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피하시길 바랍니다.
1989년 일본 추리 서스펜스 대상 수상작인데, 최면술에 대해서 무지했던 시대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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