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년 가장 아키오는 어느날 아내 야에코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고 귀가를 서두른다. 그리고 정원에서 어린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범인은 중학생인 아들 나오미. 다급히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아키오는 시체를 버리지만 시체가 발견되고, 거듭되는 수사에 큰 압박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범인으로 내세우는 폐륜을 저지르게 되는데...

가가 형사 시리즈. 최근 가가 형사 시리즈를 주로 읽는데 이유는 자주 가는 도서관 사서 탓입니다. 회사 근처에 생겨 자주 이용하게 된 도서관이 소설류는 책장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자료는 빈약한데 가가 형사 시리즈만 이상하게도 전권이 있더라고요. 사서분 취향이겠죠. 덕분에 몰아서 읽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 비교적 최신작으로 2007년도 고노미스 9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던 작품입니다. 300페이지가 안되는 분량으로 장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데 원래 단편으로 발표된 작품을 개작했다고 하는군요.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일본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대변하는 마츠우라 집안에 대한 묘사입니다. 고부간의 갈등과 가사, 가정교육 모두를 아내에게 맡기고 바람까지 피우는 무신경한 아버지, 시가에 애정을 전혀 보이지 않는 어머니, 왕따를 당한 뒤 극도의 이기적 성향을 보이는 아들, 거기에 치매에 걸린 할머니까지! 겉보기에만 정상일 뿐 썩을대로 썩은, 더 이상 가정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런 가정의 묘사가 정말이지 아주 빼어나요.
또 이 가정이 현대 일본 사회의 병폐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역시 큰 특징입니다. 콩가루 집안 묘사는 극도의 개인화,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문제는 노령화, 어머니의 치매를 이용하여 아들의 범행을 덮으려하나 정작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은 세대간 단절을 극명하게 드러내죠. 특히나 이 반전은 정말 대단합니다. 몇년간 함께 산 가족이 어머니의 치매여부도 모르다니!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덕분에 막장 패륜 범죄드라마가 더 그럴싸한 얼개와 완성도를 갖추게 되기도 했고요.
이렇듯 현대 일본 사회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발하고 있는 병폐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선이라는 점에서 더 무섭더군요.

그리고 아들 나오미 캐릭터가 상상초월의 비호감이라 읽는 내내 짜증남과 동시에 소년범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확신이 또다시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놈이 커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될 것 같지도 않거든요. 끽해야 여든살 아버지를 살해한 쉰살 (실제로는 49) 히키코모리처럼 살게 될테니 차라리 감방 속에서 사회생활이라도 익히는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 놈이 마지막에 가가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나와 체포되는 장면은 아주 좋았습니다.  멱살 정도가 아니라 쌍욕을 하면서 작살을 내 버렸어야 하는건데...

여튼, 이렇게 장점이 많긴 한데 단점도 명확합니다. 그건 바로 추리적으로 별로라는 것이죠. 그간의 가가형사 시리즈는 트릭 측면에서, 아니면 와이더닛 계열로 추리적인 완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는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최초 범행을 근처 주택 거주자로 특정하고 용의자를 짚어낸 가가의 추리는 볼만하고, 범인이 먼저 밝혀진 뒤 여러가지 범인의 계획도 독자에게 먼저 알려주는 등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띈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던 반전도 대단하기는 하고요.
하지만 피해자가 확인한  e-mail을 추적했다면 진범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니 마츠우라의 계획은 그냥 약간의 시간벌기에 지나지 않아요. 이래서야 전혀 드라마가 될 수 없죠. 또 어머니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 "붉은 손가락" 역시 별 의미 없는것은 마찬가지. 본인 스스로 아들이 계속 자신을 범인으로 몰면 진상을 고백할 심산이었으니까요.
그 외에 어머니가 치매가 아니었다는 것을 가가가 알게된 것이 "눈을 바라보았기 때문" 이라는 등, 극적 반전과 관련해서는 독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것도 공정치는 못했다 생각되네요.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너무 무거워서 읽기 편한 작품도 아니고 추리적으로 별로라 감점합니다만 사회파 미스터리로 기본은 해 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긴 하니까요.  사회파 미스터리 애독자 분들께서는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참고로 저는 효도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거기에 더해 저도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가 얼마전 돌아가셨기에 더더욱 남 이야기 같지 않았어요. 요양원에 모시긴 했지만 그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 노령화가 계속되면 이러한 부분에서 뭔가 해결책이 나와야 할텐데... 그리고 우리 딸은 정말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가가 시리즈임을 드러내는 가가 형사에 대한 묘사도 꽤나 상세하게 등장합니다. 가가의 아버지를 지극히 생각하는 사촌동생 마츠미야가 등장해서 가가와 컴비를 이루어 수사를 한다던가, 가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꽤나 굵직한 개인사가 펼쳐지죠.
그런데 가가의 아버지가 가가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어머니는 찾아 올 사람이 찾지 못해 홀로 죽어갔지만 찾아올 사람이 있는데도 오지 말라고 하는건 그것 때문에 자식이 먹을 욕을 생각하지 않은 자기 욕심에 불과하니까요. 아버지의 유언 대신이라면 저도 듣기야 하겠지만 어런 억지 외로움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안되는데 마츠미야는 된다? 무슨 기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