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스카나의 우아한 식탁 - 미야모토 미치코 지음, 고세현 옮김, 나가사와 마코토 그림/라임북 |
일본의 작가 미야모토 미치코가 남편 나가사와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보냈던 몇 개월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집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토스카나의 우아한 식탁"이 아니라 "부르조아의 우아한 식탁"으로 바꾸었어야 합니다.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난 직후에 이런 생활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데다가 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전원 생활을 위해 잠깐 머무는 곳이 백작가의 빌라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드러나는 저자의 부자 친구들 — 귀족 딸인 친구 줄리아나, 뉴욕 시절 친구로 화상으로 거부가 된 토마조와 네루 커플 등 — 에 대한 일화들 때문입니다. 친구 토마가 광대한 산과 땅을 산 뒤 그곳의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것 처럼요. 그냥 대자연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손을 댈 만큼 댔다는 스케일부터가 남달라 어리둥절할 정도예요.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설탕을 먹지 않는 등의 까탈스러운 식습관도 그렇고요.
하기사 저자의 여행 비결은 시간과 몸이 여유롭게,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는건데 이거야말로 큰돈이 드는 여행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물론 아주 건질 게 없는 건 아닙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건 함께 실려 있는 저자의 남편 나가사와 마코토의 그림들입니다. 스케치와 간단한 수채화인데 그야말로 최고더라고요. 저도 이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한 묘사 역시 기가 막힙니다. 소개된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먹는 자가제 피자 — 그중에서도 도우에 루꼴라만 얹고 올리브유만 더한 단순한 것
- 간단하지만 풍성한 샐러드 — 올리브유, 레몬, 발사믹 식초, 소금, 후추 등을 입맛대로 뿌려 먹음
- 그롤라 커피 — 원두를 갈아 만든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둥이가 여섯 개 나 있는 토기처럼 생긴 물건에 붓고, 커피에 설탕과 그라파를 넣어서 오래 휘저은 후 성냥불을 붙여 그라파의 알코올 성분을 태운 뒤 주둥이에 각자 입을 대고 먹는다
- 간단한 파스타들, 그중에서도 친구 네루가 저자를 위해 만든 페스토 소스 — 잘게 썬 바질과 마늘, 파르미자노 레자노 가루와 최고급 올리브유와 소금을 한데 섞는다. 생크림은 저자의 바람으로 넣지 않고 대신 버터를 넣어 만든다 — 로 만든 트로피에테(뇨키의 일종)
아, 정말이지 한 번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에요! 저자 말대로의 토스카나 요리의 3대 특징 — 복잡하게는 하지 않는다 / 너무 열중하지 않는다 / 별로 미묘하지 않게 한다 — 에 기반한, 신선한 재료에 기대어 대충 만든다는 요리법도 와 닿고요.
아울러 귀족이 사는 곳이라 그렇지 별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목 그대로 전원 생활이기는 해서 거부감이 좀 덜하긴 했습니다. 특히 백작가의 사위 필리포의 삶은 부르조아보다는 아라카와 히로무의 "백성 귀족"이 떠올랐습니다.
허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으며, 특히 부르조아 사상에 기반한 내용들은 영 거북하기만 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토스카나에서 우아한 생활을 즐기려면 부자여야 한다는 씁쓸한 결론만 남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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