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산장 살인 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카유키는 사고로 죽은 약혼녀 도모미의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그녀 가족의 산장으로 향한다. 도모미의 부모, 오빠와 친지 등 모두 여덟명이 산장에 모인 당일, 두 명의 은행 강도가 침입하여 그들 모두를 감금한다. 은행 강도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던 중, 도모미의 사촌동생인 유키에가 칼에 찔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탠드얼론 장편. 꽤 인기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줄거리 그대로 부유한 일족, 그리고 그들과 엮인 인물들이 모인 산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스타일의 미스터리로 흥미진진한 본격 추리물입니다.
두개의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데 첫번째 사건, 즉 도모미의 죽음은 마지막에서야 진상이 설명될 뿐더러 범인은 관계자 증언 밖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동기 부여 목적에 가깝습니다. 허나 유키에 살인 사건은 고전 본격물의 원칙에 충실해요. 일종의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진 기묘한 범죄, 용의자는 공간 내 모두라는 상황이 그러하죠. 단지 상황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추리 역시 제법입니다. 이렇게 그녀를 살해하는 것은 인질인 아쓰코만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상황이라 그 전의 상황, 즉 레이코가 몰래 적은 SOS를 지우고 타이머를 망가뜨린 사람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 뒤 그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연결되는 추리 흐름이 꽤나 합리적이거든요. 타이머 관련 트릭 - 범인이 망가트린 것이 아니라 시간만 바꿔 놓은 뒤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망가졌다고 하는 순간에 부순 것 - 은 굉장히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허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너무나도 작위적이고 만들어진 이야기같다는 이유가 커요. 몇가지 예를 들자면 노부히코의 마지막 증언 - 레이코가 일기 페이지를 입에 넣었으며 그 페이지에 진상이 적혀있을 것이다 - 부터가 그러합니다. 칼에 찔렸는데 죽어가면서도 일기장의 특정 페이지를 찢어서 입에 넣는다... 인간의 정신력이 아무리 놀랍다 하더라도 이건 무리죠. 그리고 일기에 뭐라고 적혀있었을지는 모르지만 필케이스 약통의 약이 정상적인 것으로 밝혀진 이상, 그깟 일기가 뭐 그리 큰 증거가 되겠습니까. 심지어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노부히코가 감금된 상태에서 유키에를 죽여야 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 역시 찾아보기 어려워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누군가를 살해한다? 탈출 후 유키에를 따로 손 보는게 상식적일 것입니다. 아니면 풀려난 뒤 죽이고 범인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도 훨씬 나았겠죠.
진범을 밝히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는 후지의 협박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건 마찬가지로 범인을 밝혀낸다고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목격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노부히코가 자살한 시점에서 이미 협박거리가 사라졌으니 다 죽이는게 당연할테고요.
하긴, 이 모든게 거대한 연극이니 작위적이라고 지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보다는 다카유키를 옭아매기 위해 이런 추리쇼를 펼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타당치않죠. 도모미의 행동을 유키에가 보고 들었다는데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복수를 하고도 남을 증거인데 기껏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거대한 연극을 꾸민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애초부터 목적이 범행의 증명이라면 이런 성공 가능성도 떨어지는 연극을 벌이느니 산장에서 다카유키를 제압한 뒤 고문으로 자백을 얻는게 훨씬 나았을 것이고요. 비용과 시간, 그리고 기분 모두.
또 마지막에 노부히코를 다카유키가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즉 연극이 실패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카유키 역시나 그 순간에 노부히코를 죽인다 해도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텐데 마지막에 이르러 이런 발악을 하는 것도 쉽사리 납득이 되지는 않았어요. 하긴 약혼녀를 죽이는데 남이 슬쩍 보고 다른 약임을 눈치챌 수 있는 약으로 바꿔칠 정도로 무신경한 놈이니 대책없는 행동도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울러 상황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어서 긴장감을 떨어트린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일 뿐더러 설정이 완전 말도 안되거든요. 은행강도같은 케케묵은 설정이 통할리 없죠... 핸드폰 세대에게는 도저히 먹힐 수 없는 설정이기도 하고요. 읽으면서 제가 생각했던 대로 후지가 죽은 줄 알았던 레이코고 그녀가 사람들을 동원해 도모미 사건의 진범을 밝히려고 한다는 정도로 각색하는게 어땠을까 싶더군요.
최근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데, 화자라 할 수 있는 다쓰유키가 도모미 살해를 꾸몄다는 것은 반칙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설정과 스토리를 보면 영상물, 혹은 만화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에요. 허나 범인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도주 중인 흉악범을 가장하고 범행을 저지른다는 유사 설정의 작품인 소년탐정 김전일의 <비련호 살인사건>과 비교해 본다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다 죽이겠다! (비련호) 와 누군지는 알지만 확실치 않으니 확인해보자! (가면산장)의 차이인데 저는 <비련호>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네요.
유일한 가치라면 모든 잠재적 범죄자들은 최후의 그 순간, 즉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될때까지는 무조건 무죄를 주장하며 헛짓거리하지말고 버티라는 교훈 하나만큼은 제대로 전달해준다는 것? 그 외의 무언가는 딱히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그나저나, 최근 읽은 작품 중에서는 가장 리뷰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리뷰는 별거 없지만 거의 2주에 걸쳐 썼습니다. 리뷰 완성도도 낮고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이게 한계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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