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
모두 6편의 단편이 수록된 요네자와 호노부의 스탠드얼론 단편집.
요네자와 호노부는 널리 알려진 <빙과>와 같은 일상계 단편의 강자인데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일상계라고 보기에는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일상계스러운 분위기가 살짝 묻어나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추리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석류> 라는 용서하기 어려운 쓰레기 망작이 하나 섞여있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무난하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이네요. <만원>이 워낙 잘 빠진 작품이라 멱살잡고 평점을 올려놓은 감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요네자와 호노부 팬 분들께 추천드릴만 합니다. 이런 저런 상을 탄 이유는 확실히 있는 듯 싶군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인 점 참고하시길.
<야경>
신입 경찰 가와토 히로시의 순직 사고의 진상은? 모든 것은 가와토의 의도로 목적은 그가 실수로 발포한 총알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가와토는 불륜을 가장하여 다바라를 자극한 뒤 발포하여 죽이고, 자기가 이전에 쐈던 총알을 현장에 버리는데 성공하나 다바라의 믿을 수 없는 생명력 탓에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다...
가와토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파출소장 야나오카 경사의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작품.
무려 두 명이나 사망하는 무거운 내용이지만 분위기는 외려 묘하게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캐릭터가 선명하고 왠지 모르게 '실제 있을 법 하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전해주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문제아 가와토보다는 경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따를 자행한 야나오카 경사가 더욱 인상적이긴 했습니다. 이놈, 정말 나쁜놈이더라고요....
딱 한가지, 가와토는 정말로 경찰에 맞지 않는 소심한 민폐덩어리였다는 결말이 약간 찜찜하나 그 외 전개는 깔끔한 수작입니다. 역시나 일상계 전문가 요네자와 호노부다운 작품이었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가와토가 실수로 발포했다는 것에 지나친 우연이 겹쳐있다는 점에서 좀 감점합니다만 읽을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인숙>
사라진 연인 사와코를 찾아 머나먼 시골 온천여관으로 향한 "나". 그곳은 자살의 명소로 알려진 곳으로 누군가 흘린 유서를 발견한 사와코가 어떤 손님이 죽으려하는지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유서에 쓰인 글귀 중 "오늘로 이 년", "오늘 죽었다고 증언해 주시면 여한이 없겠습니다"를 통해 자살의 목적이 "보험"에 얽혀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보험"을 위해서는 이름과 날짜라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낸 뒤 나머지 부분은 물에 흘려보낸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괜찮았던 작품. 사와코의 힘겨움읗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 때문에 사건에 몰두하는 "나"의 심리 묘사 역시 설득력이 넘쳤습니다. 마지막에 자살을 목적으로 한 사람이 사실은 2명이었다는 반전도 의외성은 충분했고요.
하지만 유카타 색깔이라는 단서는 많이 부족했으며 사와코가 그렇게까지 자실을 막고 싶었다면 입구쪽에 CCTV를 설치하면 되는 문제인데 이게 왜 사건이 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더군요. 이런걸 보면 사와코도 결국 죽음을 홍보에 이용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러한 사와코의 가증스러운 기만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석류>
딸 유코가 아버지 나루미를 남자로 느낀다는 야설 수준의 이야기. 둘이서 석류를 먹었느니 어쨌느니...하는, 두번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찝찝하고 기분 더러운 내용입니다. 유코가 쓰끼꼬를 매질한 반전 정도는 기억에 남으나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는 쓰레기. 별점은 없습니다.
<만등>
개발도상국 방글라데시의 가스전 개발을 위해 그것을 거부하는 마을 장로 알람을 살해한 이케다 상사의 이타미와 OGO의 모리시타. 하지만 모리시타는 죄책감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향하며 불안해진 이타미는 그를 쫓아 입을 막으려한다.
모리시타가 콜레라에 걸렸으며 전 일본이 그를 쫓는다는 아이디어가 아주 좋았던 작품. 이타미와 모리시타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공항검역에서 이미 이상없는 것으로 밝혀진 이타미가 콜레라에 걸렸다면 원인은 모리시타와의 만남이라는 인과관계가 형성되며, 모리시타의 과거 행적을 쫓으면 잡점이 드러날테니 이타미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테니까요. 그 외에도 무자비한 자원 개발을 반대하는 알람의 사고방식 등의 디테일도 볼만했고요.
딱 한가지, 급작스러운 모리시타의 심경변화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지만 단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큰 흠은 아닙니다. 독특한 아이디어의 현대판 개미지옥 이야기로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문지기>
오다와라에서 세시간, 이즈 반도의 아마기 산맥을 넘어가는, 즈난정을 향하는 가쓰라다니 고갯길에서 벌어진 네건의 연쇄교통사고 - 파칭코프로 다카다, 사학과 학생 오쓰카, 기둥서방 다자와와 동거녀, 공무원 마에노가 죽은 사고 - 의 진상은 무엇인지?
이야기 자체는 제법 흥미로왔던 작품. 할머니의 수다가 결국 진상에 이르게 만드는 여러가지 복선들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고의적인 범행, 즉 살인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되고, 흑막은 모든 것을 보았다는 휴게소 할머니일 것이라는 것 역시 너무 뻔해서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긴 합니다. 또 진상 -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다카다의 죽음은 할머니 딸이 죽인 것이며, 흉기는 길가의 석불 행신으로 목이 당시 떨어져나갔는데 그것에 주목한 사람들을 차례로 죽였다는 것 - 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도 단점이에요. 석불 사에노카미 (행신) 목이 떨어진 정도가 무슨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몇년 전 사건인데 말이죠. 물론 할머니의 노파심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말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납득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만원>
학창시절 흠모했던 하숙집 여주인 다에코가 살인사건 피의자가 되자 변호사인 주인공 후지이가 그녀를 위해 재판에 나서게 되는데...
가보인 족자에 피가 튄 것을 사건에 고의성이 없다는 유력한 정황증거로 사용하지만 (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피해자를 만나는 자리에 내 놓을리가 없다) 사실 족자에 피가 튀도록 한 것 자체가 의도였다는 진상이 놀라왔던 작품. 해당 물건이 중요 증거로 검찰에 압수되도록 하여 다른 재산은 모두 차압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남편 우카와 시게하루가 병사한 뒤 상고를 포기한 것은 보험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어서 족자를 빼앗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법 자체를 변호사도 모르게 범인이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점이 정말 돋보였습니다. 다에코가 주인공과 법률관련 이야기를 들으며 법에 대해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였다 정도의 묘사만 있었어도 아주 완벽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딱 한가지, 상고를 포기한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죽어서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보다 빨리 출소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됩니다. 뭔가 타이밍 문제가 있었나....
그래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법의 맹점을 다룬 단편 중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다카키 아키미쓰의 <살의> 급이었달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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