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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7

만화의 길 (망가노미치) 1~4 - 후지코 후지오 A : 별점 3점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 컴비(그 중에서도 A인 마가 미치오)를 모델로 한 장편 만화입니다. 전 4권짜리 애장판으로, 전체 연재분에서 "입지편", "청운편", "야스나로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권당 9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마가 미치오와 사이노 시게루가 만화가를 꿈꾸다가 데뷰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지만 스스로의 과욕과 실수로 쓰디 쓴 좌절을 맛본 후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까지가 치밀하게 그려집니다. 구하기는 오래 전에 구해 놓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올해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방대한 양이라 독파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네요.

저는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재미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대표격인 "바쿠만", "아오이 호노오" 외에도 개그 만화인 "호에로 펜", "만화가의 사랑", "만화가와 어시스턴트", "월간 순정 노자키군" 등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뭐 하나 빼 놓기 어려울 만큼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라 히데노리의 "언제나 꿈을"은 조금 취향과 다르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고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다른 작품들 못지 않게 재미있습니다! 어린 컴비가 만화가로 데뷰하고 연재작을 이어간다는 부분은 "바쿠만"에 가까운데, 거장의 실제 경험이 뒷받침된 덕에 큰 설득력을 갖추었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장점입니다. 물론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다케시 컴비도 경험이야 있었겠지요. 허나 후지코 후지오 A는 본인 스스로 만화의 거장일 뿐더러 초창기 시절을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토키와 장을 무대로 과거에 현대 일본 만화 거장들과 함께 활약을 펼쳤던, 만화 역사에서도 특별하면서도 역사적인 인물이니 비교가 어렵습니다.

함께 소개되는 후지코 후지오 컴비 및 토키와장 멤버들의 당시 작품들도 아주 볼만합니다. 특히 후지코 후지오 컴비의 초기작은 집대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학생 때 습작인 "작은 권총왕", 후지코 후지오 컴비의 단행본 데뷰작 "유토피아 최후의 세계 대전", 최초의 잡지 개제 "서부의 어딘가에", 최초의 의뢰이자 별책인 "3인 형제와 인간 포탄", 최초의 연재 "4만년 표류", 초기 창작 방법을 엿볼 수 있는 "백마가 온다", 상경 전 마지막으로 그린 의뢰작 "선풍도시", 세미 다큐멘터리 터치로 그린 "해발 6천미터의 공포(히말라야의 설인)"와 "남부전선 이상 없다", 상경 이후 최초로 각자 동시 진행한 소년클럽 의뢰작 "콘크리트 정글"(후지코 후지오 A)와 만화 동화 "사자와 꼬마 사슴", 상경 후 첫 정식 연재작 "해저인간 메바루", 처음으로 가혹한 프로의 일정에 도전하게 된 "치비와카마루", "장미와 반지", 이후 연재작 "밤의 왕자님", "세계와 싸운 소년", 땜빵으로 그린 첫 스포츠 만화 "철권의 분노" 등 수많은 작품이 빠짐없이 소개됩니다. 장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편 감상이 가능한 수준이고요.
컴비의 작품 외에도.신만화당 합작물인 "4개의 시계", "도감 시리즈" 등도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작품 자체가 후지코 후지오 컴비의 활동을 다루기에 단순히 소개로 끝나지 않고 작품들이 어떤 과정에서 탄생되고 완성되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는데 이 역시 재미있습니다. 마가 미치오의 개인 경험을 토대로 그려내었다는 "꼬마 권총왕", 급작스러운 폭설로 놀랐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살아있는 눈 괴물(?)을 그려낸 "백마가 온다", 영화 "아스팔트 정글"을 감명깊게 본 후 갱스터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여 작업한 "콘크리트 정글" 등 처럼요. 모든 작품 시작 전 관련 노트를 만들고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을 적어놓는 창작 과정도 꽤 그럴듯했습니다. 앞으로 저도 따라해 봐야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다른 등장 작가들의 작품도 풍성합니다. 유명 작가의 등장 시 짤막한 소개를 곁들이는 정도가 많지만,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작품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글 대제"입니다. 두 컴비가 처음 데즈카 오사무를 만날 때 신연재물로 그리기 시작하고, 후일 마가가 급한 도움 요청으로 마지막화의 어시스턴트로 참여한다는 식으로요. 아마도 실화겠지만, 굉장히 드라마틱한 내용이었다 생각됩니다.

또 "만화 소년", "모험왕", 등등 당대 유수의 잡지들과 출판사, 편집자 들도 다수 등장하여 극의 흐름에 동참하는데, 이러한 점은 "바쿠만"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 속 편집자는 마감 독촉 및 원고 수령 밖에는 딱히 하는게 없다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그리고 짧은 기간 (약 2년?)이지만 마가의 신문사 근무 중 진행한 각종 일러스트와 광고 도안, 만화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림 실력 및 디자인 감각이 정말 빼어나더라고요. 이게 정말 갓 고등학교(작중 중학교)를 졸업한 신입의 솜씨라니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확실히 거장, 천재의 편린이 엿보이는 작업물들이었어요. 만화가 아니라 이쪽, 산업 미술 쪽으로 매진하였어도 충분히 디자인 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당대 (1950~60년대)를 잘 그려낸 여려가지 디테일들도 좋습니다. 영화가 유일한 취미로 보이는 컴비가 감상하는 여러가지 영화들("베라크루즈", "아스팔트 정글", "위대한 환영", "제 3의 사나이", "너의 이름은"....),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출퇴근과 도쿄 상경, 전화가 드문 시절의 전보와 공중전화를 이용한 연락, 산보 등을 통해 보여지는 당시의 거리 풍경들 모두 굉장히 흥미로왔습니다.
당시 두 컴비의 여러가지 일상 생활 묘사도 재미있습니다. 상경 전 학창 생활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시작하여 첫 하숙집 좁은 방에 대한 묘사, 매일매일 프랑스 빵과 우유 등으로 때우는 식사, 가끔 나가는 산책 등 모든 부분이 디테일하면서도 푸근하고 따뜻하게 그려지거든요. 악역은 없이 멘토인 데즈카 오사무와 도키와장의 큰 형님격인 테라오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컴비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난 사람으로 보이는 등 이야기도 모두 푸근하고 따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중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을 들 수 있습니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옹호해주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라는 조언을 해 주는 선생님이라니!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첫번째 하숙집의 주인인 마가의 백부도 역시 만화는 잘 모르지만 컴비의 꿈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토키와장의 보증금으로 거금 3만엔을 선뜻 빌려주겠다고 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조금은 시대 착오적인 작화야 어쩔 수 없다쳐도, 원고 마감에 맞추지 못하는 사고를 치는 장면이 자주 반복되어 지루합니다. 주로 꿈이긴 하지만요.
청춘물이기도 해서 마가의 상대역 여성을 등장시키는데 뭔가 관계가 이루어질 것 처럼 떡밥만 던져놓고 제대로 된 드라마를 그리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이렇게만 등장할거면 분량 낭비에 불과하지요.

그래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될 가능성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읽다보니 이 때가 축복받은 시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록 먹고 살기는 좀 힘들고 척박한 시기지만 젊은 혈기와 열정은 보답받는, 잡지사에 원고를 보내거나 들고 가면 원고가 실리고, 급하게 땜빵이든 뭐든 어떻게든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시대로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수요에 비하면 공급이 부족해 보였기에 열정만 있다면 어떻게든 데뷰 자체는 좀 쉽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무리 재미있는 만화라 하더라도 데즈카 오사무 혼자 6~7개 잡지 모두에 연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니까요. 두 컴비는 20대 초반, 테라오는 20대 중반, 데즈카 오사무도 20대 후반에 불과한 청년들인데 당대 만화계를 짊어진다는 설정을 볼 때 정말로 만화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시대적인 운으로 둘의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철야 등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꿈과 열정을 잃지 않는 노력, 그리고 결과물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런 정보도, 어시스턴트 한명 없이 한달에 10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스토리부터 전부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그려내는 말도 안되니까요. 초기작의 스토리가 영화나 서적에서 따온 것이 많은 이유도 아이디어 구상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는 환경 탓이었을 테고요. 

비슷한 시기 활약했던 다른 신만화당 멤버들이 대체로 잊혀졌지만, 후지코 후지오,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이 거장으로 남은 이유는 결국, 꾸준히 히트작을 내 놓는 실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노력하는 천재가 시기를 잘 만났다'는 것이 정답인 셈입니다.

2017/07/30

바쿠만 (2015) - 오오네 히토시 : 별점 1.5점

히트만화 "바쿠만"이 영화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별 관심없던 차에, 이용하는 '옥수수' 앱에 무료 영화로 등록되어 있어 보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애청하는 "품위있는 그녀"라는 막장 드라마가 방영하는 동안 눈과 귀를 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기대를 한참 밑돕니다. 원작에서 가장 좋았던, 여러 편집자 및 라이벌들과의 대화와 경쟁을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는 부분은 거의 사라졌으며, 당연히 "소년 점프"의 독자 앙케이트를 통한 순위 경쟁이라는 핵심 요소 역시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원작을 상위 호환 각색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설픈 코스프레로 재미없는 원작 에피소드만 조금 따라할 뿐입니다. 

캐릭터들의 각색도 아주 심각합니다. 모리타카를 좋아하는 여자의 응원 한마디로 만화에 목숨을 거는 열혈 청춘으로 단순화 한 건 짧은 분량의 영화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덕분에 슈진의 분량이 대폭 삭제된건 실수입니다. 슈진은 원작을 쓴다고는 하지만, 초반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서태지가 만화 어시스턴트를 하네?'라고 생각될 정도의 역할 정도만 소화하는데 원작 팬으로서는 어이가 없네요.
하기사, 악역으로 돌변한 니즈마 에이지에 비하면 약과겠지요. 니즈마 에이지는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건방을 떠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애초에 이런 역할은 이야기에 불필요합니다. 편집부와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그렸어야 하는데, 괜히 원작의 인기 캐릭터를 끌고 들어오려고 무리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기묘한 CG와 함께 니즈마와 사이코, 슈진 컴비가 그림을 그려가며 싸우는 장면은 개중 최악이고요. 이럴거라면 두 작가 작품 속 캐릭터가 작가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식으로 화면을 꾸미는게 훨씬 보기도 좋고, 내용도 와 닿았을 겁니다.

또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사이코가 병으로 쓰러진 후 친구들과 함께 연재 분량을 완성하여 개제한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어시스턴트를 왜 안 쓰는지부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연재를 한 회 연장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서 '우정, 노력, 승리'라는 점프 3대 키워드를 써먹기 적합한 장면도 아니었어요. 대체 누구한테, 뭘 이겼단 말입니까?

물론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주인공과 라이벌들의 만화, 만화를 그리는 부분의 디테일은 상당히 괜찮았어요. 실제로 오바타 타케시가 직접 작화를 맡은 듯한 사이코의 만화는 특히나 그럴듯 했고요. 그러나 단점 투성이인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요새 일본 영화계가 위기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와 닿습니다.

2019/09/29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점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뒤늦게 찾아 읽어본 요네자와 호노부일상계고전부 시리즈 근간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추리적으로 시리즈 타 작품에 비해 많이 처지는 탓입니다. 대표적인게 이바라가 주인공인 "우리 전설의 책" 입니다. 학교 동아리 만연에서 일어난 분란에 휘말린 이바라의 이야기가 전부에요. 3학년 고치 선배의 충고로 이바라가 프로를 목표로 매진할걸 다짐하며 만연을 그만둔다는 내용은 "바쿠만"을 떠오르게 만들 뿐, 별다른 추리도 없으며 오레키 역시 거의 출연하지 않아서 별로였어요. 

그나마 이야기 서두에 소개되는, "달려라 메로스"에 대한 오레키의 색다른 시각이 엿보이는 독후감은 괜찮지만 전개면에서 무리였습니다. 독후감은 독후감으로 두는게 좋았을텐데 이바라의 상황을 독후감에 빗대는 전개가 억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메로스를 죽이는건 왕에게는 손해이다, 그러므로 메로스를 죽이려는건 왕의 적일테니 이바라의 만화 노트를 훔친건 만연의 '만화 읽는 파'가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추론은 그런대로 볼 만하지만 설득력은 낮습니다. 고치 선배가 이바라에게 연락하면 안될 이유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추리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그냥 인간 관계와 갈등을 그린 드라마에 지나지 않기도 하고요.

추리물인 첫 에피소드 "상자 속의 결락"도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한데 굉장히 시시합니다. 학교 투표함 갯수를 속여 회장 선거를 망치려고 했다는 음모부터가 별 볼일 없지요. 차라리 정말 일상에 맞닿은 이야기라면 괜찮았을텐데, 학생회장 선거와 학교 선거관리 위원회 등이 등장하는 탓에 일상 속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고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에 대해 회상하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도 지극히 간단한 조사로 진상이 드러나는 소품이라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은 거의 없으며, 이 단편집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울에는 비치지 않아"는 이미 오래전 "미스테리아"를 통해 접했던 작품이라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에요.

그래도 오랜 팬으로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도 많습니다. 특히 오레키 호타로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작품이 많다는게 눈에 뜨이네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에서부터 의외의 행동력이 드러나거든요. 사토시가 '너 오레키 호타로지? 외계인한테 조종당하고 있는 거 아니지?'라고 물어볼 정도로 당황스러운 변화입니다. 아마 불필요한 행동에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는, '안 해도 될 일은 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는 오레키도 지탄다 등을 만나며 조금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겁니다. 아마 본인은 모르는 지탄다에 대한 마음이 기폭제가 되었겠지만요.
오레키 호타로가 왜 이런 삶의 모토를 세웠는지 알려주는 "긴 휴일" 속 에피소드도 꽤 그럴듯합니다. 초등학생이던 오레키가 자신이 불평을 하지 않아 주위로부터 이용당했다는걸 깨닫고, 아무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 '긴 휴일'을 맞이한다는 내용인데 차분히 쌓아올린 단서들이 치밀해서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후 사라진 지탄다를 찾아 여름방학에 직접 집을 나서기까지 하니 대단한 발전입니다. 과연 이바라가 사라졌다고 해도 찾아 나섰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참고로 이 "이제와서 날개라 해도" 이야기에서 지탄다도 굴레를 벗어 던지기에 둘 사이도 진전이 있으리라 짐작되네요. 

또 조금 의외였던건 오레키 호타로의 요리 솜씨입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이런저런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왠만한 가정주부 못지 않은 솜씨를 선보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중화면이 있다고 집에서 중국식 냉면을 만든다는게 말이 될까요? 그 외에도 야키소바라던가 베이컨 채소 볶음, 계란말이 등 이런저런 요리들이 소개됩니다. 이 정도 솜씨라면 "쿠드랴프카의 차례" 속 축제의 요리 승부에 대표로 참석했어도 좋았을 뻔 했어요.

하지만 팬심 외에 추리적 요소는 여러모로 부족한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팬을 위한 선물에 그치미 말고, 추리적인 부분도 다음 권에서 좀 만회해 주면 좋겠습니다.

2021/08/21

그리고, 또 그리고 1~5 - 히가시무라 아키코 / 정은서 : 별점 4점

그리고, 또 그리고 1 - 10점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애니북스

일본의 순정만화가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자전 만화입니다.

저는 만화가가 그린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의 길"이라던가 거장의 단편 "종이 요새"과 같은 고전은 물론, "아오이 호노오", "만화가 상경기",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 교실" 등 대부분의 작품은 제게 실망을 준 적이 없으니까요. 전기 만화인 "블랙잭 창작 비화", 아니면 만화가가 주인공인 "호에로 펜", "바쿠만"이나 "만화가의 사랑"같은 픽션들도 본전치기 이상은 충분했고요. 

이 작품도 제 지론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입니다.

고등학교에서 미대를 진학하여 졸업하고, 순정만화가로 데뷰하기까지의 삶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화실 선생님인 은사 히다카 켄조 선생과의 이야기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그리는데, 크게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대를 목표로 했던 미야자키 소녀 아키코의 입시 분투기, 대학에서 방탕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만화가를 꿈꾸던 시기의 이야기, 만화가로 데뷰한 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죽을 때 까지의 이야기로요. 히가시무라 아키코라는 작가가 미대에 진학하여, 만화가를 꿈꾸다가 데뷰하여 만화가가 되는 과정에 중요했던 인생의 변곡점만을 콕 찍어 그려낸 거지요.

이 중 초반부를 담당하는 입시 분투기와 헐레벌레한 대학 생활 이야기는 굉장히 웃겼습니다. 수험 공부가 아니라 문제 푸는 비결을 터득하여 고득점을 기록했다던가, 단지 게가 먹고 싶어서 가나자와 미대에 지원했다던가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이 많은 덕분이에요. 입시 대응 전략은 "수험의 제왕"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미대를 다녔기에 더 와 닿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풀자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빠져있었던 고등학교 당시의 저는 갑자기 미대 진학을 결심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 겨울 방학에요. 그런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렸던 충동적인 결정이었지요. 그래서 1년도 안 되는 짧은 미대 입시 준비 기간을 가졌었지만, 정말 운 좋게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지요. 평생 운을 거진 다 끌어 쓴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대학 입학 후에는 그 꿈을 바로 접었습니다 너무 힘들다는 걸 금방 알아버렀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내내 놀았던 기억 밖에는 없네요. 충동적인 대학 선택과 유흥과 음주밖에 기억에 남지 않은 대학 생활 모두가 이 책에 나오는 히가시무라 아키코와 똑같습니다... 미대에 대해 작가가 말한 아래의 비판은 정확합니다! 미대생 학부형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대학 졸업 이후 나름의 좌절을 겪다가 만화가가 되는 과정은 담담하게, 진지한 톤으로 전개됩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당시 자기는 핑계만 대며 도망치기만 했다는 아키코의 후회섞인 고백이 특히 그러했어요. 저도 많이 반성하게 만드네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고 대했던 그림 바보 켄조 선생과, 현실과 타협한 속물인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갈등도 재미 요소였고요. 

사실 미대 진학에 성공한 뒤에도, 켄조 선생이 아키코에게 집착하여 그림을 강요한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키코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건 은사 켄조 선생님 덕분인건 분명해요. 수백장, 수천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림과 만화와 삶에 대한 고민을 어린 나이에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았던 그림 바보인데, 그 순수함과 열정은 정말 놀랍고, 이런 분을 어린 시절에 만나 좋은 쪽으로 영향을 받은 아키코가 너무나 부럽기만 합니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별세하면섣, 끝까지 '그려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도 큰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켄조 선생님 장례식까지 담담하게 그려나가다가 마지막에 눈물샘을 터트리는 전개도 효과적이었고요. 죽는다는걸 알고 읽기는 했지만, 정말 뭉클했어요.

켄조 선생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아키코를 휘둘렀고, 아키코도 지나치게 죄의식이나 후회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묘사는 다소 아쉽지만, 재미와 성장기 측면에서, 그리고 감동 측면에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2015년 만화 대상을 수상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특히 미술 대학 쪽과 관련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도베르만 형사를 그렸던 하라마츠 신지의 "극도 만화가 이야기"는 제 지론이 틀렸던 실패작이었습니다. 만화가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그려낸 자전 만화인건 분명한데, 뒤로 가면 갈 수록 억지스러운 마쵸 세계관 설정이 삽입된 기묘한 판타지가 되어버렸지요.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졸작으로, 연재도 조기 종료된 듯 한데 다행히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되지는 않았습니다.

2018/08/15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1,2 - 혼다 : 평균 별점 2.5점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1 - 6점
혼다 지음/미우(대원씨아이)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2 - 4점
혼다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다 재미있다!" 라는, 제가 만든 말이 있습니다. 허언은 아닙니다. 거장 후지코 후지오의 "만화의 길", 지금은 이름조차 잊혀진 쿠스노키 케이의 "만화가의 사랑", 데즈카 오사무의 건투를 그린 "블랙잭 창작비화", 처절한 생존기인 "만화가 상경기", 요절복통 "월간 순정 노자키군", 전설의 막장 만화가 신조 마유의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 교실", 이 바닥의 금자탑 중 하나인 시마모토 가즈히코의 "호에로 펜"과 "푸른 불꽃 (아오이 호노오)", 점프 방식 스타일 만화가 만화인 "바쿠만" 등등 제가 읽었던 대부분의 만화가 만화가 재미있었거든요.
이와 비슷하게 "서점이 무대인 만화는 다 재미있다!" 라는(역시나 제가 만든) 말도 있습니다. 국내 소개는 되지 않았지만 구제 반코의 "엉망진창 서점" 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서점 숲의 아카리" 등도 모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작품은 일본의 모 만화 전문 서점에서 일하는 혼다 씨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린 일종의 전문가 일상툰 (에세이 코믹)으로 저의 명제에 그런대로 부합하는 작품입니다. 최소한 1권만큼은 기대에 값하거든요.

다른 서점 무대 작품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주인공 혼다씨가 일하는 곳이 "만화 전문" 서점이라는 점입니다. 상당히 크고 유명한 서점인지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오고요. 그래서인지 특별한 작품을 원하는 특별한 손님과의 에피소드가 주요 재미 요소입니다. 초절정 핵미남 외국인이 말도 안되는 성인 동인지를 찾는 에피소드, BL만화를 원하는 외국인 손님들과의 에피소드 등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일본 BL의 파괴력은 정말로 상상 초월이더군요! 외국인들을 묘사한 방식도 독특하면서도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요. 추천을 원하는 쾌활한 외국인에게 "팬티 가면" 을 권해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소개와 추천, 탐색의 와중에 여러가지 만화에 대한 정보도 넘쳐나는데 동인녀들이 찾으면 소리를 지를 정도의 인기작가라는 오게레츠 타나카 선생님은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그럼 여기서 질문, "감동적인 순정만화", "길어야 3권까지", "40대 남성도 즐길 수 있는" 만화를 찾는 손님이 구입한 작품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베르제르크"입니다! 꺄오! 정말이지 1권은 별점 3점이 아깝지 않아요!

하지만 2권부터는 재미가 덜합니다. 손님과의 에피소드는 야쿠자가 책을 사서 교도소로 배송하는 정도만 재미있었을 뿐 나머지는 서점 안에서 벌어지는 업계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인데, 대체로 좋은 쪽으로만 소개되는 탓입니다. 서점 직원들끼리의 회식을 그린 에피소드에서 재미가 좀 터지나 싶었는데, 역시 ''재미있개 디스하는 능력이 없다'고 빠져나가 버릴 뿐이고요. 책 뒤의 특별 보너스 만화를 읽어보니 1권에서의 "접객 연수" 에피소드 때문에 문제가 생겨 콘티를 점장에게도 사전에 확인받게 되었다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인 듯 싶습니다. 어디나 검열이 문제지요. 

그래서 2권의 별점은 2점도 과하기에 두 권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점장의 사전 검열 절차가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더 구입해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1권만 읽어보셔도 충분하실겁니다.

2015/12/26

월간순정 노자키 군 1~6 - 츠바키 이즈미 : 별점 3점

월간순정 노자키 군 6 - 6점
츠바키 이즈미 글.그림/학산문화사(만화)

추석 때 본가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형이 강추해서 덥석 빌려온 만화입니다. 읽은지 한 분기가 지났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올리네요. 

4컷에 가까운 짤막한 개그가 이어지는 개그 만화입니다. 캐릭터 의존 개그와 오해·착각에 기인한 개그로 나뉘는데, 캐릭터 개그는 이런 류의 만화에서는 정석이라 할 수 있어서 특별히 이야기할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190cm의 장신에 과묵하지만 실상은 월간 연재 순정만화가인 노자키군,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미남이지만 실상은 애니메이션 오타쿠에 수줍음 많은 미코시바 등, 비현실적이며 개그 만화답게 과장되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억지스러운 설정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노자키와 주변 친구들은 뻔하지만, 상식적인 편집자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조합 자체는 "아즈망가 대왕" 시절 이래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대책 없는 어른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어른 컴비이기는 한데 선생님이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에요.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만화에서 어른 역할로 선생님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은 거의 처음 본 것 같기도 합니다.

평작 수준인 캐릭터 개그에 비해,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 개그는 정말 대박입니다. 사쿠라와 노자키의 첫 만남에서 노자키가 사쿠라를 자신의 팬으로 오해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로렐라이가 유즈키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와자키를 활용한 개그라든가, 동료 만화가 미요코와 노자키의 대화를 듣고 오해하는 미요코의 대학 친구들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6권까지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정말 재미있네요. 제 평생 이 설정이 실패한 적은 없어요. "바쿠만"이나 "아오이 호노오"가 대박 나기 전부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2009/09/14

전쟁 전 한잔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전쟁 전 한 잔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사립탐정 켄지는 상원의원 스털링 멀컨의 의뢰를 받는다. 의뢰내용은 동료인 브라이언 폴슨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일하던 제나 안젤린이라는 여성을 찾아서 그녀가 훔쳐간 중요 서류를 돌려받게끔 도와달라는 것. 켄지는 파트너 엔지와 함께 그녀를 찾는데 성공하지만 그녀는 켄지에게 사진 한장을 전해준채 눈 앞에서 사살당하고 켄지는 사건뒤에 얽힌 흑막과 함께 지역 암흑가 조직의 암투에 휘말리게 되는데....


지금은 초유명한 초베스트셀러작가인 데니스 루헤인의 데뷰작입니다. 유명 시리즈라는 "사립탐정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처음 완독하고나서 들은 생각은 "데뷰작스럽다"는 겁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내용 자체가 굉장히 전형적이라는 것이죠.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국식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가장 뻔한 전개, "뭔가 미심쩍지만 간단해보이는 의뢰를 받아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다보니 의뢰의 배후에 어마어마한 흑막이 존재해서 거기에 휩쓸려 들어간다" 는 전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형성은 작가의 전작들과는 많이 다른데 (읽어본 작품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전형적 전개를 지니는 작품이 아무래도 출간에, 데뷰에 유리했을테니 데뷰작스럽다...는 느낌이 든 것이죠.

하지만 뻔하긴 해도 이 작품이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바쿠만"이라는 요사이 즐겨보는 만화에서 두 신인만화가가 "점프 만화"의 "왕도"라는 것에 대해 언급하며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힘겹게 분투하는 과정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히트치기는 쉽겠지만 사실 구현하기는 어려운 "전형적이지만 재미있다!"라는 명제에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거든요. 이러한 재미는 데니스 루헤인의 글솜씨가 데뷰작에서부터 작렬한 탓이 크겠죠. 하여간 이 작가는 재미의 포인트를 잘 아는것 같아요. 별거 없어보이는 단순한 사건 뒤에 감추어진 흑막을 더듬어나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지루해질려고 하면 어김없이 엄청난 액션이 지면을 가득 채워서 한숨 돌릴 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데뷰작임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폭행같은 충격적인 이슈를 이야기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도 대단하고요. 350여페이지나 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룻만에 뚝딱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데뷰작의 한계랄까? 하는 부분도 눈에 띄입니다. 애시당초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약간 부족한, 헐리우드 범죄-스릴러물이라는 점은 어쩔 수 없겠죠.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구조를 위해서 복잡하게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은 대폭 줄이고 대신 화끈한 액션으로 작품을 채워넣고 있으니까요.

단 아무리 전형적이라도 그렇지 주인공인 켄지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생각하던 그대로의 스테레오 타입이라 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더군요. 20세기 후반~21세기 미국 하드보일드 탐정의 전형인 "뭔가 고민거리를 하나이상 안고 살아가는, 차가운 도시남자지만 자기 여자에게는 따뜻한(응?) 탐정" 그 자체거든요. 조금은 다르게 보이려는 의도였는지 어렸을 적 주변사람들은 영웅으로 알고 있는 권위주의자이자 가정폭력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사는 인물이라는 설정을 덧붙이긴 했는데 이 설정 역시 구태여 이렇게 복잡스럽게 만들어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단순무식했더라면 (부바처럼?) 외려 더 독특했을거 같아요. 작품에서 소시아 - 롤랜드라는 두 암흑가 보스의 싸움과 중첩시켜 복잡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작가의 의도라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효과적으로 쓰인 것 같지도 않거든요.

또 전개에 있어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브라이언 폴슨이 애시당초 사진의 "원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전혀 설명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상식적으로도 "복사본"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더군다나 이 중요한 사진에 대한 관리 허술은 설명되고 있지는 않지만 역시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고요. 그 외에도 고문의 달인 소시아가 애시당초 왜 켄지와 신사적으로 협상을 하려 했는지 등등 대충대충 넘어가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상식 밖의 전개가 꽤 있습니다.

그래도 어쨌건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데뷰작이겠죠?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물이긴 하지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재미 하나는 확실한 작품이니까요. 조금만 추리적인 부분이 많았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도 몇몇 묘사에 있어서는 데니스 루헤인스러운 면모도 보이고 있는 등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4/12/05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 우치다 야스오 / 김현희 : 별점 2.5점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 6점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검은숲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 신주쿠 중심가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피해자 가와시마의 사인은 독살로 밝혀졌지만, 범인과 이유는 미궁에 빠졌다. 유일한 단서는 그가 지니고 있던 삼각형 모양의 기이한 방울 하나 뿐이었다. 비슷한 시기, 노가쿠 명문 미즈카미류의 후계자 가즈타카가 "도조지" 공연 중 죽었다. 심근경색이라고는 했지만, 독살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한편 아버지 지인의 부탁으로 취재 차 노의 본고장인 요시노와 덴카와 신사 근처에 머무르던 아사미 미츠히코는 우연히 미즈카미류 종가 가즈노리 실종사건에 연루되어 사건에 뛰어드는데...

1988년 발표된.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 23번째 장편입니다. 그동안 읽어본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들은 대체로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5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명성과 인기가 이해되는, 대중 소설로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루해질만 하면 사건이 벌어지는 전개(가와시마 살인사건 → 가즈타카 살인사건 → 가즈노리 실종사건 → 아사미 체포 → 가즈노리 변사체 발견 ...)로 흥미를 유발시키는 솜씨도 일품이고, 일본 전통 무용 노가쿠와 덴카와 신사와 엮어서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해주기 때문입니다. 

"노가쿠", "노", "노멘"이 핵심 설정이자 트릭으로 이용되어서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이 역시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런 설정은 "탐정 레이디 X 시리즈 - 거울 속의 나"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부키, 고토 종가 가문의 후계자 다툼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설정 자체는 거의 판박이니까요. "도조지" 공연 중 종 안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는 "갤러리 페이크"가 떠올랐고요(여기서는 일종의 사고였지만요).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제목이기도 한 요시노 지방 및 덴카와 신사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도 아주 인상적이에요. 풍광이라던가 다양한 행사, 먹거리까지 꼼꼼하게 소개되는데 한 편의 기행문이라 해도 손색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아사미 미츠히코 캐릭터의 매력도 볼만합니다. 인기 시리즈가 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독특한 맛이 느껴졌어요. 명문가의 훈남으로 당시 잘나가던 스포츠카 렉서스 소아라 (1세대겠죠?)를 타고 다니는 멋쟁이지만 허술한 면모도 보여주는게 여심을 자극할 듯 합니다. "바쿠만"에서 대박이 나려면 여성 독자가 읽어야 한다고 나왔었는데 왜 이 시리즈가 대박이 났는지 조금 알 것 같네요.

그러나 읽히는 재미에 비하면 추리적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이유로는 첫 번째 범행, 즉 가와시마 독살사건이 너무나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탓이 커요. 협박범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우편배달부를 살해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또 메신저를 살해했다면 바로 협박범도 찾아가서 죽였어야지, 왜 진짜 협박범은 그냥 살려둔 걸까요? 협박 당사자인 나가하라 도시코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 역시 이해 불가에요. 자기 대신 찾아간 사람이 죽었다면 겁이 나서라도 경찰에 신고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게다가 가즈타카가 죽은 시점에서 도시코가 가만히 있을 이유도 없고, 종가인 가즈노리가 도시코를 찾아가서 무슨 결말을 지었는지도 설명되지 않는 등 일련의 과정이 대충대충 진행되는게 영 별로였습니다.

아울러 가와시마 사건을 추적하던 경찰이 가즈노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 시점에서 가와시마 살해가 가즈노리의 자살로 이어졌다는 당연한 추리와 수사를 하지 못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수사만 제대로 했어도 가와시마 살해 동기를 본격적으로 밝혀서 보다 손쉽게 진상이 드러났을 텐데 말이지요. 특히나 덴카와 신사의 미스즈로 인해 두 명의 연결고리가 드러난 이상, 이렇게 수사하지 않은건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중 명탐정이라 불리우는 아사미의 활약도 거의 없습니다. 작중에서의 아사미의 추리는 본인 스스로 "감"이라는 것에 의존할 정도로 비논리적입니다. 가와시마가 독살당한 사건에 "여자"가 관련되었을 것이다라고 추리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노멘 가면에 독을 발라서 살해했다는 트릭도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되는 탓에 명탐정의 추리가 필요할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고요. 또 가즈노리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사미의 추리는 수사에 방해가 되었을 뿐이에요. 결국 죽을 사람이 다 죽은 뒤에나 진상을 알게 된다는 점도 당황스러운데, 일본 추리소설 속 명탐정들의 전통이자 특징인걸까요? 하지만 어차피 죽을 사람 다 죽으면 탐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다행히 가즈타카 살인사건 하나만큼은 동기도 명확하고 트릭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동기나 트릭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본격물스러운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주요 설정인 노가쿠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트릭인 만큼 점수를 더 주고 싶네요. 가와시마 사건은 지워버리고 가즈타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게 더 나았을 겁니다. 가와시마의 딸 치하루 시점에서 쓰여진 배경 묘사도 다 들어내는 식으로 정리하면 300페이지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었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맛은 있고 추리소설계에 이름을 남긴 명탐정 아사미 미츠히코의 매력은 가득합니다. 추리애호가로서 "추리" 요소가 부족한 탓에 감점하지만, 추리소설 초심자, 특히 여성분들이라면 꽤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일찍이 영상화가 여러 번 된 작품인데 (심지어 첫번째 작품은 가도카와 제작 - 이치가와 곤 감독이라는 상상이상의 컴비!) 추리적으로는 간단하고 오히려 훈남 주인공과 주위의 미녀들, 아름다운 풍광 등이 부각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영상물로 감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한 번 구해봐야겠습니다.

2011/02/17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1 - 카이타니 시노부 : 별점 2점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1 - 4점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원아웃""라이어 게임"이라는 두 작품으로 두뇌 배틀 장르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거둔 카이타니 시노부의 작품.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코믹한 분위기의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많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TV 드라마화도 될 정도의 인기작이니 당연히 뭔가 건질 게 있겠죠? 일단,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로 20세 때 FBI 수사요원으로 발탁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추리력을 바탕으로 '영능력자'라고 사기를 치는 시대의 아이콘, 오다기리 쿄코라는 캐릭터가 독특하고 유쾌합니다.

그리고 가볍게 즐길 만한 일상계 추리물로서는 적절한 수준의 추리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총 4편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인 대학교 치한 체포 작전이라든가 두 번째 에피소드인 뇌졸중으로 쓰러진 노인이 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러합니다. 독자가 범인과 진상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쉽지만, 그만큼 설득력 있고 효과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전작에서 느꼈던 정교한 설정에서 오는 두뇌 게임의 박진감과 의외의 결말이라는 요소를 경마장의 우승마 맞추기에 대한 이야기인 네 번째 에피소드 "적중"에서 선보여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작가의 특기를 잘 살린 작품이었으며, 반전도 괜찮았거든요.

그러나 캐릭터 구도가 "블랙 라군" 등과 별반 차이 없는 자기중심적 여걸 - 평범한 사람에서 우연히 말려든 불쌍한 청년이라는 전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 남자 주인공 타니구치 이치로가 실제로 하는 게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너무 과장되고 희화화되어 있다는 점 등은 감점 요소입니다. 이러한 요소는 이 작품의 대상 독자 연령대가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아울러 앞서 장점으로 이야기한 '추리적 완성도' 역시 가벼운 일상계 추리물 수준으로 괜찮다는 것이었지, 작가의 전작들에서 기대했던 꽉 짜인 긴장감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라 작가의 팬으로서는 실망스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은 "바쿠만"에서 천재 니즈마 에이지가 그린 로맨틱 코미디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이유와 일맥상통하네요. 작가에게서 기대하는 부분이 명확한데, 그걸 잘 살리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선뜻 추천하기는 약간 어려운, 미묘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후속권을 구입해봐야 명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텐데, 후속권을 구입해야 하는지부터가 망설여지네요...

2022/05/01

아랑전 - 유메마쿠라 바쿠 / 타니구치 지로 : 별점 2점

餓狼傳 (MF文庫) (文庫) - 4점유메마쿠라 바쿠/メディアファクトリ-

'화력' 하나로 일가를 이룬, 고 타니구치 지로의 격투 액션 만화입니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이 원작이지요. 국내에는 "바키" 시리즈의 이타가키 케이스케가 작화를 맡은 버젼이 세주 문화사를 통해 출간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타가키 케이스케 버젼으로만 접했을 뿐입니다. 국내에는 소개된 적도 없고요. 타니구치 지로의 팬이며 오래 전 "만화의 시간"에서 추천한 작품이라 관심을 가졌었는데, 운좋게 일본어 문고본을 구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만화의 시간"에서 언급했듯, '싸움' 묘사만큼은 발군입니다. 타니구치 지로가 잔잔한 만화 뿐 아니라 이런 만화도 그릴 수 있다는걸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정말 아프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래와 같은 여러 관절기 묘사가 아주 일품이에요. 타격기에서 관절기로 넘어가는 등의 격투 장면 연결도 깔끔하고 유려하고요.

그러나 제대로 완결되지 않았다는 문제는 너무 큽니다. 주인공 탄바 분시치가 북진관의 이즈미, 그리고 프로레슬러 카지와라 두 명과 겨루는 묘사가 거의 전부이며, 이야기는 카지와라와의 승부 이후 급작스럽게 마무리됩니다. 이후 벌어질 가라데와 프로레슬러들간의 세력 다툼과 그 속에서 탄바가 어떤 싸움을 해 나가는지는 알 수 없어요. 제자처럼 탄바를 따르게 된 쿠보가 어떻게 되는지, 숙적처럼 묘사되는 히메카와와의 승부는 어떻게 나는지 등 뿌려놓은 떡밥들도 제대로 회수되지 못하고요. "만화의 시간"에 따르면 연재하던 잡지의 폐간 탓이라고 하는데, 여러모로 애석합니다. 개인적으로 과장이 심한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작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현실적인 타격감과 고통 가득한 타니구치 지로의 작화로 이 멋진 작품을 즐기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화와 내용 모두 훌륭하지만 완결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는 불가하여 감점합니다. 같은 이유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힘들 것 같네요.

2010/04/27

만화제국의 몰락 - 니시무라 시게오 / 정재훈 : 별점 3점

만화 제국의 몰락 - 6점
니시무라 시게오 지음, 정재훈 옮김/스튜디오본프리

"안녕 내 청춘의 소년점프"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전(前) 소년점프의 편집장 (3대째)이었던 니시무라 시게오씨의 자서전입니다. 수년전 번역 출간되었는데 우연찮게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점프 초창기 연재작가였던 작가 우메모토 사치오 장례식 이후 자서전을 쓸 것을 결심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소년 점프의 창간부터 저자가 편집장을 역임했던 80년대까지의 이야기가 주로 펼쳐지며 이후 600만부 시대를 지나 몰락까지의 간략한 후기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소년 점프 편집부의 모토라던가 원가 등 잡지의 운영방식에서부터 편집부의 소수정예 체계라던가 "전속" 및 "인기투표"로 대표되는 가혹한 작가관리, 작가 발굴을 위한 신인들의 기용 방법 등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여러 인간관계가 얽힌 편집부 분위기는 어땠는지를 그야말로 현장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전해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죠.

그 외로 모토미야 히로시라던가 나가이 고에서 시작해서 죠지 아키야마, 쿠루마다 마사미, 테라사와 부이치, 유데 다마고 등의 작가들에 대한 여러가지 일화들과 "사나이 골목대장", "파렴치 학원", "서킷의 늑대", "닥터 슬럼프" 등 당대의 히트작에 대한 이야기도 확실히 재미있었습니다. 특히나 저자가 모토미야 히로시를 데뷰시키고 첫 히트작 "사나이 골목대장"을 세상에 내 놓은 장본인이라 관련 이야기가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생각하고는 좀 다른게 제목의 "몰락"은 나오지 않고 사실 약간 언급되는 몰락의 과정 역시나 지금은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한 내용들이라 크게 새로운 것도 없었습니다.
덧붙여 저자의 비겁하고 자기방어적이며 권위주위적인 모습이 많이 비추어지는 것은 좀 불편했어요. 예컨데 전속제도와 같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전임 편집장에게 떠넘긴다던가, 막판에는 줄타기의 와중에 밀려난 듯한 모양새인데 그것을 자기가 더러워서 떠난 것 처럼 묘사한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러했는데 역시 사람사는 곳은 그게 어디던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만화 잡지를 만드는 현장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한다는 측면에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만화 "바쿠만"을 좋아한다면 편집자 Side와 작가 Side를 비교해가면서 읽어도 재미있겠더군요. 취향을 굉장히 탈 책이긴 하지만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5/24

폐허에 바라다 - 사사키 조 / 이기웅 : 별점 2.5점

폐허에 바라다 - 6점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북홀릭(bookholic)

"에토로후 발 긴급전"의 작가 사사키 조단편집입니다. 홋카이도 도경 경부보 센도 타카시가 이런저런 부탁으로 개인적인 수사를 벌인다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탐정사전"에서 멋지게 소개된 덕에 기억하고 있다가, 우연찮게 읽게 되었네요. 

센도는 이전 사건 때문에 PTSD 장애를 입어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장기 요양 중으로, 의사 말에 따르면 "경찰에 관련된 일은 모두 잊어라, 가능하면 신문도 읽지 마라, 책은 읽어도 상관없지만 범죄 소설은 금물이다"라는 상황이지만 주위의 요구에 응해 이런저런 방법으로 수사를 돕습니다.

니세코 스키장, 홋카이도 동부 토카치 온천 여관, 유바리 시, 삿포로 시내, 히다카 등 북쪽 지방 이곳저곳을 자동차로 돌아다니며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관련 묘사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폐허에 바라다" 속 소도시는 가공의 마을 같지만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요. 유바리 시 인근 쿠라야마 초 등 현존하는 곳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덧붙여진 덕분입니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 대한 묘사는, 지금이라도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연어 정치망 어업과 가리비 양식이 주인 오오츠크해 연안 항구 마을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묘사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강하게 전해 줍니다. 또 매 이야기마다 실제 사건을 담당한 형사가 등장하는데,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것도 재미요소에요. 사건 해결을 위해 센도를 이용하는 형사가 있는가하면 센도를 방해꾼 취급하면서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형사도 있고, 애주가도 있고 패션 감각이 빼어난 패셔니스타도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나오키 상을 수상했을 만큼 문학적인 묘사가 돋보입니다. 사회파스럽게 현실에 대한 고발, 비판 의식을 이야기에 잘 담아낸 솜씨도 빼어나고요.

그러나 현실 고발없이 단순 범죄에 대한 이야기로만 끌고간 몇 몇 작품들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냥 멋드러지게 쓴 범죄가 등장하는 드라마일 뿐, 추리 소설이나 범죄, 수사물로 보기에는 영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합한 별점은 2.5점. 문학적으로는 근사하고, 뭔가 품격이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추리적으로 빼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와 같이 추리물에는 어느 정도 수수께끼 풀이나 트릭같은 요소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추리 애호가 분들께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60여 페이지에 불과한 짤막한 단편입니다. 이야기도 대단한건 없어요. 센도 타카시가 휴직 중인 탓에 치밀한 수사를 벌일 수도 없고요. 하지만 고작 하룻밤 조사로 아서에게 쏠린 혐의를 돌릴만한 정황 증거를 담당 형사에게 들이민다는건 너무하다 싶었어요. 그것도 잠깐 관계자 옆자리에 동석했던 정도라면, 현재 담당 경찰들이 수사를 등한시 했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지 경찰들이 '오지'에게 한 번 맛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죠. 용의자 아서의 아내는 일본인이고, 그의 자식 역시 일본인일테니 이렇게 푸대접을 받을 이유도 없고요. 특별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으며, 인간 관계 및 경제적인 이득 등 동기까지 명확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사토미와 아서가 관계를 맺었다는 등의 설정도 불필요했습니다.

스키장 마을의 묘사라던가, 이야기를 쉽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전개는 나쁘지 않은데 특별히 점수를 줄 만 한 부분도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폐허에 바라다"

지독한 가난으로 어린 시절, 여동생을 죽이고 자살하려는 어머니를 목격한 뒤 범죄에 빠져버린 후루카와의 범행을 건조하게 그려냅니다. 후루카와를 한 때는 융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해버려 폐허가 되어버린 탄광촌 마을에 빗대는게 인상적이에요. 후루카와가 바란건 죽음이었고, 결국 자살로 센도 앞에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목과 겹쳐지고요. 폐허에 바라는건 결국 흉물스러운 모습을 창피하게 드러내어 명줄을 유지하는게 아니라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읽히거든요. 이런 내용으로 본다면, 사회 고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사건이 워낙 명확한 탓이에요. 후루카와와 만나기로 한 센도의 의도를 야마기시가 어떻게 알고 추적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있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렇게 형사가 등장하고, 비참한 현실과 그 때문에 생겨난 비극을 범죄 드라마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김성종"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슷합니다. 드라마로서 볼 만하고, 묘사도 특출난 부분이 있지만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일본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일본의 버블 붕괴 및 지방 경기의 몰락을 그렸기 때문에, "어느 창녀의 죽음"만큼이나 우리에게 와 닿기는 힘들지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빠 마음"

'토'라는 어부들의 조합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데 흉기가 어부들이 쓰는 마키리라는 등 어업과 관련된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지저분한 마을 유력자의 음모, 그와 손을 잡은 폭력단의 만행이 동기라는 점에서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회 고발에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사건 속 수수께끼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용의자 이시마루가 피해자 다케우치를 폭행한건 인정했지만, 칼은 가져가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단지 칼을 가져가지 않았을 뿐, 칼로 찌른건 명백한 사실이며 이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끝에 그냥 손에 잡힌 칼로 범행을 저지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시마루의 가족들이 이시마루가 범인이라고 못 박은 이유가 드러나는 과정은 볼 만 했어요. 앞서 이야기한 사회파적인 고발이 함께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순한 센도의 추측 - 추리라고 하기는 어려운 - 만으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전개는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쉽고 짧게 소비되어 버린 느낌도 들고요. "붉은 수확" 처럼 마을의 실력자,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장편 사회파 하드보일드물로 그려낼만한 이야기였는데 말이지요.

센도의 추리에 좀 더 설득력을 부여하고, 좀 더 드라마틱한 세력간 갈등을 그려낼 수 있는 장편이었다면 별점 3점 이상도 충분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별점 2.5점입니다.

"사라진 딸"

범행은 강력하게 의심되지만, 시체가 없어서 본격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작품. 경찰이 직접 일을 벌일 수 없어서 경찰 타나베가 미야우치에게 센도를 소개시켜 준 것입니다. 센도가 사건을 해결한 건 타카다 방에서 발견한 평범한 스냅 사진 속 인물에게 주목했던 덕분이고요. 그 인물의 정체를 알아낸 뒤, 전화 한 통으로 시체 은닉 장소를 알아내게 되거든요. 경찰이 수사 중 간과했던 단서에 주목한게 주효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경찰 수사의 디테일 부족으로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꽤 그럴듯했습니다. 추리적으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름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서 타카다의 과거를 상세하게 조사할 정도로 경찰이 수사를 확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설득력을 더합니다.

아주 빼어나지는 않지만, 실감나는 이야기라는건 분명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바쿠로자와의 살인"

저자 후기를 보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아들들이 극도의 증오심을 가지고 있고,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원수로 여기는 젊은이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도했다는 진상이 좀 비슷하기는 합니다.
여기에 더해 유언장이 주요 동기 중 하나로 등장하며, 지방 영주의 성 같다는 오하타 목장의 저택 묘사, 말을 키우는 목장 묘사 등이 더해져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일본이 아니라 영국 어딘가를 무대로 한 작품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작가의 의도는 러시아였겠지만요.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외에, 추리적으로 건질건 없습니다. 내용을 보면, 17년 전 피해자였던 나가누마의 어린 아들이 장성해서 복수를 한게 뻔해 보이고, 새로 온 잡역부 청년 하라다가 마침 18살이라 수수께끼고 뭐고 이야기할게 별로 없네요. 오히려 하라다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지 않은 경찰의 무능함만 돋보일 뿐이에요.

추리 소설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순문학, 드라마를 그리고 싶었다면 좀 더 길고 풍성한 묘사가 필요해 보였던 작품입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복귀 전날"

센도의 PTSD의 원인이 된 사건이 회자되며 센도의 완쾌를 알리는, 단편집의 대단원을 이루는 작품. 그러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추리적으로 대단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유미코의 전화는 도움 요청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하루카가 진범이라는걸 드러내기 위한 목적의 밀고 전화였다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이 역시 그렇게 의외의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화 내용이 사실과 달랐다면, 전화를 건 사람이 거짓말을 한게 당연하니까요. 오히려 왜 이렇게 밀고를 하려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라던가, 범행에 무언가 트릭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내용도 없어서 이게 추리 소설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유미코의 동기는, 센도가 처음 만났을 때 손에 반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라는 디테일과 하루카가 피해자인 나오와 남자 문제로 다투었다는 증언이 순차적으로 드러나니 그리 대단한 수수께끼는 아니거든요. 하루카의 범죄 역시,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나오를 죽이고 불에 태웠는지에 대한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그냥 그녀가 범인일 수 있다는 정황 증거 정도만 추가될 뿐이라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도 않고요.

물론 이렇게 추리적으로 허술하다는게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차피 이 단편집 수록작 모두가 마찬가지이기도 하고요. 또 아는 사람, 잘 해주는 듯한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명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를 위해 억지로 센도를 엮었다는 점입니다. 수록된 다른 작품들은 모두 센도가 사건에 개입되는게 나름 이유가 명확한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미코 본인이 와인바 사장인 유키에가 겪은 일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중요한 단서가 될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걸 그냥 경찰에 제보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구태여 센도를 중간에 연락책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어요. 오히려 가족을 밀고한다는 자신의 치부를 아는 사람을 만들 필요도 없고요.

이렇게 시리즈를 위한 억지 투성이인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2/14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 네모 : 별점 2.5점

일본 현지에 거주하는 저자 네모가 도쿄의 로컬 맛집을 직접 소개하는 가이드북입니다. 조만간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유명 체인이나 후기 위주의 맛집이 아니라, 실제 현지인이 일상 속에서 방문하는 식당과 요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더군요. 

책은 음식 종류를 기준으로 챕터를 나누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돈부리, 라멘, 소바와 우동 등 면 요리, 고기와 생선 요리는 물론, 일본식 가정 요리와 양식, 카레, 베이커리, 디저트, 편의점 음식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음식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일본 현지인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메뉴들 소개도 인상적입니다. 닭고기 사시미 스테이크나 멸치 육수 츠케멘, 낫토 소바, 토로로, 각종 후라이 요리처럼요.
또 소개된 식당들 대부분이 관광객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라는 점도 좋았어요. 각 식당의 대표 메뉴, 가격, 위치, 영업 시간, 휴일 등 기본 정보 역시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어 실용적이기도 하고요. 요리를 맛있게 먹는 팁은 정말 꼭 참고할만 합니다. 

츠케멘은 히가시이케부쿠로 다이쇼켄에서 개발한 메뉴로 원래는 가게 영업이 끝난 후 직원 식사용으로 남은 면에 라멘 국물을 찍어 먹던게 시작이다, 2000년대 중반에 대유행을 한게 진한 국물에 우동만큼 굵은 면을 찍어 먹는 스타일 츠케멘이다, 가마타마 우동은 가마아게 우동의 일종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우동에 날달걀을 얹은 메뉴이다, 이나니와 우동은 1600년대 아키타현 영주 가문에서 먹었던 음식이며 냉우동으로 츠유에 찍어먹는 스타일이다와 같이 각 요리들에 대해서 짤막하게라도 소개를 덧붙여 주어서 일본 음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흥미로운 정보와 함께 요리를 워낙에 맛깔나게 소개하고 있어서 꼭 방문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아래 가게들은 구글 맵에 저장해 두었지요. 한두 군데라도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웨이팅이 꽤 있다고 해서 걱정이 되네요.

  • 텐동 덴후쿠
  • 카츠동 엔라쿠
  • 토지나이 카츠동 즈이초
  • 소유라멘 키라쿠
  • 멸치 육수 츠케멘 미야모토
  • 이타소바 카오리야
  • 낫토 소바 바쿠잔보
  • 붓카케우동 오니얀마
  • 가마타마 우동 마루카
  • 야키니쿠 잠보
  • 야키니쿠와 곱창 호르몬 마사루
  • 우설 규탄 아라
  • 모츠니코미 아부쿠마테이
  • 아지후라이 아오키 쇼쿠도
  • 카키후라이 타라라
  • 크로캉 쇼콜라 365日
  • 철판 프렌치 토스트 빵토 에스프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분명 존재합니다. 우선 양식이나 카레는, 굳이 일본에서까지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물론 일본에서의 맛은 다를 수 있고, 이런 요리들 애호가도 있겠지만 보통의 여행자 입장에서는 굳이 시간과 동선을 들여 방문할 정도의 메뉴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도판의 품질도 그리 뛰어나지 않으며, 특히 지도가 아예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도 큰 단점입니다. 특정 지역별로 맛집을 묶어 ‘아침–점심–저녁’ 코스를 추천해주는 구성이 있었다면 활용도가 훨씬 높았을 텐데 말이지요. 가격 때문이겠지만 지나치게 런치에만 집중하고 있는 점도 아쉽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참고해 볼 만한 가이드북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05/29

오드 택시 (2021) - 키노시타 바쿠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 완료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약사의 혼잣말"에 이어 올해 두 번째네요.
택시 운전사 오도카와가 이마이의 복권 당첨금을 손에 넣으려는 한구레(로 보이는) 도부와 야노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와중에, 아이돌 '미스터리 키스' 멤버 살인 사건과 회사원 타나카의 복수(?)에 연루된다는 이야기로 1시즌 13화의 적당한 분량으로 깔끔하게 끝납니다.

가장 큰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살인 사건에 꽃뱀 사기, 납치와 현금 강탈, 권총 난동, 사체 훼손 및 유기, 일가족 동반 자살 등 온갖 강력 사건이 가득한 세계관을 산리오 캐릭터가 떠오르는 귀여운 동물들이 선보인다는게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거든요. 귀여운 그림체로 잔혹한 이야기를 그려낸 사이바라 리에코의 "우리집"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초반부터 언급된, 오도카와가 태워주었던 '실종된 네리마구 여고생'이 알고보니 미스터리 키스 멤버로 살해당한 미츠야 유키였으며, 오디션에서 네 번째 입상자라 아쉽게 데뷰조에 속하지 못한 와다가키 사쿠라가 미츠야를 살해한 뒤 대역을 소화하고 있었다는 '미스터리 키스' 멤버 살인 사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꽤나 복잡하게 꼬아 놓았지만 복선도 나름대로 제시해주고 있을 뿐더러, 마지막 회에서 와다가키가 미츠야를 살해한다는 충격적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이 아주 볼 만 했기 때문입니다. 와다가키가 전화 통화로 자신의 야망을 밝힌 뒤, 오도카와의 택시에 타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네요. 추리 애호가 분들이라면 한 번 꼭 보셔야 된다 싶을 정도에요.
아울러 동물 캐릭터로 구현된 세계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도 신선했습니다. 알고보니 이는 어린 시절 사고로 뇌 손상을 입은 오도카와 시점에서 바라본 세계였습니다. 오도카와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뒤에는 모두가 제대로 사람으로 보이게 되고요. 이렇게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세계관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세계관으로 돌아온 뒤 오도카와 집에 있던 생명체(?)의 정체도 그냥 평범한 고양이로 밝혀지는 등, 작중 뿌려둔 복선들도 대체로 잘 회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곁가지 이야기가 과하게 많기는 합니다. 카바사와의 관종 유튜버 행태, 다나카와 게임 이야기, 인기없는 만담 컴비 '호모 사피엔스; 이야기 등은 메인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는데도 비중이 높습니다. 오도카와의 친구 가키하나가 꽃뱀에게 걸려드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이보다는 도부가 오도카와를 범행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이유라던가, '말레이 맥' 아저씨가 오도카와를 선뜻 통 크게 도와준 이유를 좀 더 잘 설명해주는게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간만에 재미있게 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