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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전쟁 전 한잔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전쟁 전 한 잔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사립탐정 켄지는 상원의원 스털링 멀컨의 의뢰를 받는다. 의뢰내용은 동료인 브라이언 폴슨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일하던 제나 안젤린이라는 여성을 찾아서 그녀가 훔쳐간 중요 서류를 돌려받게끔 도와달라는 것. 켄지는 파트너 엔지와 함께 그녀를 찾는데 성공하지만 그녀는 켄지에게 사진 한장을 전해준채 눈 앞에서 사살당하고 켄지는 사건뒤에 얽힌 흑막과 함께 지역 암흑가 조직의 암투에 휘말리게 되는데....


지금은 초유명한 초베스트셀러작가인 데니스 루헤인의 데뷰작입니다. 유명 시리즈라는 "사립탐정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처음 완독하고나서 들은 생각은 "데뷰작스럽다"는 겁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내용 자체가 굉장히 전형적이라는 것이죠.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국식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가장 뻔한 전개, "뭔가 미심쩍지만 간단해보이는 의뢰를 받아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다보니 의뢰의 배후에 어마어마한 흑막이 존재해서 거기에 휩쓸려 들어간다" 는 전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형성은 작가의 전작들과는 많이 다른데 (읽어본 작품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전형적 전개를 지니는 작품이 아무래도 출간에, 데뷰에 유리했을테니 데뷰작스럽다...는 느낌이 든 것이죠.

하지만 뻔하긴 해도 이 작품이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바쿠만"이라는 요사이 즐겨보는 만화에서 두 신인만화가가 "점프 만화"의 "왕도"라는 것에 대해 언급하며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힘겹게 분투하는 과정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히트치기는 쉽겠지만 사실 구현하기는 어려운 "전형적이지만 재미있다!"라는 명제에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거든요. 이러한 재미는 데니스 루헤인의 글솜씨가 데뷰작에서부터 작렬한 탓이 크겠죠. 하여간 이 작가는 재미의 포인트를 잘 아는것 같아요. 별거 없어보이는 단순한 사건 뒤에 감추어진 흑막을 더듬어나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지루해질려고 하면 어김없이 엄청난 액션이 지면을 가득 채워서 한숨 돌릴 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데뷰작임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폭행같은 충격적인 이슈를 이야기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도 대단하고요. 350여페이지나 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룻만에 뚝딱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데뷰작의 한계랄까? 하는 부분도 눈에 띄입니다. 애시당초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약간 부족한, 헐리우드 범죄-스릴러물이라는 점은 어쩔 수 없겠죠.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구조를 위해서 복잡하게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은 대폭 줄이고 대신 화끈한 액션으로 작품을 채워넣고 있으니까요.

단 아무리 전형적이라도 그렇지 주인공인 켄지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생각하던 그대로의 스테레오 타입이라 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더군요. 20세기 후반~21세기 미국 하드보일드 탐정의 전형인 "뭔가 고민거리를 하나이상 안고 살아가는, 차가운 도시남자지만 자기 여자에게는 따뜻한(응?) 탐정" 그 자체거든요. 조금은 다르게 보이려는 의도였는지 어렸을 적 주변사람들은 영웅으로 알고 있는 권위주의자이자 가정폭력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사는 인물이라는 설정을 덧붙이긴 했는데 이 설정 역시 구태여 이렇게 복잡스럽게 만들어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단순무식했더라면 (부바처럼?) 외려 더 독특했을거 같아요. 작품에서 소시아 - 롤랜드라는 두 암흑가 보스의 싸움과 중첩시켜 복잡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작가의 의도라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효과적으로 쓰인 것 같지도 않거든요.

또 전개에 있어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브라이언 폴슨이 애시당초 사진의 "원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전혀 설명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상식적으로도 "복사본"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더군다나 이 중요한 사진에 대한 관리 허술은 설명되고 있지는 않지만 역시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고요. 그 외에도 고문의 달인 소시아가 애시당초 왜 켄지와 신사적으로 협상을 하려 했는지 등등 대충대충 넘어가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상식 밖의 전개가 꽤 있습니다.

그래도 어쨌건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데뷰작이겠죠?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물이긴 하지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재미 하나는 확실한 작품이니까요. 조금만 추리적인 부분이 많았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도 몇몇 묘사에 있어서는 데니스 루헤인스러운 면모도 보이고 있는 등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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