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2/11/17

죽이러 갑니다 - 가쿠타 미쓰요 / 송현수 : 별점 3점

죽이러 갑니다 - 6점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Media2.0(미디어 2.0)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살의'를 테마로 쓴 단편집.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잘 모르는 작가로 독특한 범죄 스릴러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죽이러 갑니다"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과거 초등학교 때 자신을 가혹한 악의로 대했던 선생이 떠올라 찾아간다는 표제작 <죽이러 갑니다> 같이 일상 속 소소한 살의와 그것에 대처하는 일반인의 모습을 그린 소품들이더군요. 여성 작가가 일상 속 살의를 주제로 썼다는 점, 주제를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고이케 마리코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이케 마리코 작품과 가장 큰 차이점은 살의는 그냥 살의로 끝날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나 적극적인 행동은 거의 등장하지 않거든요. 그나마 살의를 품은 이유가 확실하고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체력을 키우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던 <잘 자, 나쁜 꿈 꾸지말고>의 사오리조차도 살의의 대상인 전 남친 고타와 마주치자 아무런 액션 없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과를 하고 도망칠 뿐이에요. 여기서 범죄를 저지르면 고이케 마리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살의와 절망이 끝없이 업그레이드될 뿐이라면 기리노 나쓰오가 되겠지만... 이런 비겁합이 보통 현실인거죠.
또 약간 독특했던 것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성을 주요 매개체의 하나로 등장시키고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식이라서 하나로 이어진 연작이 아닌가 생각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독특했어요.

그런데 아주 일상스러운 느낌을 주기에는 극단적인 상황과 설정이 많다는 점은 좀 아쉽더군요. 일본에서는 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히키코모리, 왕따, 학대, 이유없는 증오 등이 등장하고 그에 따르는 트라우마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자주 있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래도 일상스러우면서도 오싹한, 서늘한 느낌을 주면서도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되네요. 대부분 "살의"를 어떻게든 극복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멀어져가는 부부관계를 몇몇 대사로 표현하는 <스위트 칠리소스>와 어렸을 적 동경의 대상이던 친구가 사소한 왕따 등의 증오를 스스로의 내부에서 키워나가다가 붕괴하는 모습에 대해 지켜본 것을 회상하는 <우리의 도망> 이 개인적으로는 베스트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소설도 아니고 장르문학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소소한 일상 속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즐기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