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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9

회랑정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임경화 : 별점 1.5점

회랑정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기업가 이치가하라가 사망한 뒤, 유언장 공개에 참석하기 위해 이치가하라가 소유한 여관 "회랑정"에 일족이 모인다. 이치가하라의 친구 아내로 이 장소에 참석한 70대 할머니 혼마 기쿠요의 정체는 반년 전 회랑정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인해 연인을 잃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기리유 에리코가 변장한 것이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복수를 위해 이치가하라의 유언장 공개 시 반년 전 사건의 진상이 담겨있는 기리유 에리코의 유언장을 공개한다고 말하는데, 그날 밤 유언장이 사라지고 이치가하라의 조카딸인 유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 한정 일본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 작품으로 1991년에 첫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일본 고전 추리물의 형태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는 특징이 눈에 뜨입니다. 초기작이라도 '가가 형사 시리즈' 류와는 다른, <<십자 저택의 피에로>>나 <<가면 산장 살인 사건>> 과 유사한 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십자 저택의 피에로>>,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추리적으로는 꽤 볼만한 점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실망스럽습니다. 이유는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완전히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초반 기리유 에리코는 화상에서 죽지 않고 깨어난 후 연인 지로의 사체를 확인한 후 오열합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연인의 떠올리며 복수를 위해 회랑정에 다시 찾아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요. 독자들도 탐정역인 기리유와 함께 진범을 찾기 위해 이치가하라 일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동기를 고민하고, 몇 안되는 단서를 조합하여 머리를 싸맵니다. 중반 이후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아들임이 밝혀지면서 부터는 범행 동기가 유산임이 명확해져서 이치가하라 일족은 더욱 의심스러워 집니다. 친아들이 있다면 다른 형제, 친척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확인한 지로는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고, 그녀의 연인으로 알았던 지로가 사실은 진짜 지로를 죽이고 그녀까지 죽이려 했으며, 그 정체는 변호사의 조수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 모든게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지로라고 속이고 대신 유산을 상속 받으려는 아지사와 히로미의 음모라는 것인데, 도대체 장황하게 앞 부분에서 복수 운운하며 여러가지 단서와 동기를 던져 놓고 고민한 게 만든 건 뭔가 싶거든요. 게다가 기리유는 자신이 알던 지로가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걸 이미 오래전, 이치가하라의 장례식 때 알아챘다고 하는 장면은 정말 넋을 잃게 만듭니다. 흑막이 누구인지 아는데 복수 운운하며 200페이작 넘는 분량 동안 탐정 행위를 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독자를 속이려고 하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억지스러워서 짜증스러울 정도입니다. 상식적으로 아지사와 히로미의 정체에 대해 안 시점에서 진범이 누군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구태여 회랑정에 일족이 모였을 때를 기다릴 필요 없이 변장해서 찾아간 후 복수를 하는 게 당연하죠. 

이렇게 이야기를 그려내려면 최소한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지로의 사체를 확인할 때 굉장히 많이 타서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관 지배인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것이 기리유의 추리에 의해 밝혀진 후, 그에 따라 왜 아무런 동기가 없는 (즉, 유산 상속과는 무관한) 그녀가 왜 이전에 지로와 기리유를 동반 자살을 위장해 살해하려 했는지? 에 대해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고 설명한 뒤 아지사와 히로미가 마지막 순간에 등장했다면 적당히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죠. 여기에 더해 두 명의 화자를 두어 (가장 상식인인 나오유키가 적합했을 듯 싶습니다) 탐정 역을 번갈아 하게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을 제껴두더라도 전개에 있어 동기와 용의자 구성도 정교한 편이 못됩니다. 이치가하라의 유산이 거액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범행 동기가 일족 모두에게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소스케는 국회 의원 출마를 예정 중이라 돈이 필요하다, 요코 남편의 회사가 어려워 돈이 필요하다 등은 모두 추정일 뿐 사실로 밝혀지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일족 모두 그다지 돈에 궁핍하지 않다는 묘사만 있을 뿐입니다.
또 일족은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 까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입니다. 

물론 속도감 있고 흡입력 있는 전개는 괜찮아요. 최소한 저 마지막 황당 장면 전 까지는 아주 흥미롭게 읽은 건 사실이거든요. 경찰이 기리유의 모발을 찾아낸 후 그녀가 점차 궁지에 몰리는 과정의 서스펜스도 좋고요. 추리적으로도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범인이며, 과거 사건에서 공범임을 알아내는 장면도 그런대로 쓸만한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숨어 있으려고' 그 방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왜 전혀 고민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이 정도 장점으로 단점을 덮기는 무리입니다. 탐정이 누가 범인인지를 이미 아는 상황에서 공범자를 알아내기 위해 벌이는, 무의미한 사기극에 불과하니까요. 제 별점은 1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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