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시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해문출판사 |
셰일라 웨브는 캐븐디시 비서용역 사무실에서 일하는 속기 타이피스트. 어느날 손님의 요청으로 윌브러햄 크레슨트가 19번지라는 낯선 주소로 출장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해양 생물학자이지만 영국 정보원으로 비밀리에 일하는 콜린 램은 크레슨트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회주의 조직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현장을 목격한 뒤, 사건을 맡은 하드캐슬 경부의 조력자로 사건에 뛰어들지만 집 주인이 장님인 맹아학교 교사라는 것, 피해자가 누구인지 도무지 밝혀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 한시간 빨리 가도록 조작된 4개의 시계 등의 수수께끼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자신의 친구인 에르큘 포와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최근은 묘하게 크리스티 여사님 책만 열심히 읽게 되네요. 이 작품은 여사님의 54번째 추리 장편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다면 화자로 "콜린 램"이라는 배틀 총경의 아들을 내세워 완전한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콜린 램 혼자 행동하고 관찰하여 수집한 정보를 포와로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라서 포와로는 그의 말 그대로 "안락의자 탐정" 역할만 수행하고 있으며, 독자 역시도 포와로와 똑같이 정보를 제공받기 때문에 진정한 독자와의 추리 대결이 가능한 방식인 것이죠. 그야말로 정통파 고전 미스테리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고나 할까요? 트릭 역시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초보자도 쉽게 수긍하고 즐길 수 있는 간단한, 그렇지만 정교한 여러 장치를 통해 사건이 해결되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제일 중요한 첫 사건 이후에도 관련된 살인사건이 2건이나 더 발생하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가 계속 유지되며 콜린 램의 정보요원으로서의 활약도 약간이나마 사건과 교차하여 벌어지고 있어서 읽는 재미도 뛰어난 편이고요.
그러나 제목이기도 한 "4개의 시계"가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은 큰 맹점이라 생각되네요. 셰일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과정의 설득력이 제로에 가까웠기에 더더욱 불필요한 장치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또 트릭 자체도 분명 괜찮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으로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상황묘사를 통해 조금씩 밝혀지는 진상을 결론에서 터트리는 방식이라서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면 질 수록 단서를 숨기기는 쉬웠겠지만 여사님 내공이라면 보다 이야기를 압축하면서도 핵심만 짚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는 길어서 늘어지는 감이 있었거든요. 별반 중요치 않은 "비밀 정보요원" 콜린 램의 활약을 부각시킨 탓도 크겠지만.
그래도 역시 고수의 범작은 범인의 걸작과 맞먹는 법이죠. 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닐 뿐더러 몇몇 단점들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와 정교한 트릭이 곁들여진 두뇌싸움이 펼쳐진다는 점에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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