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0/10/23

크림슨의 미궁 - 기시 유스케 / 김미영 : 별점 3점

크림슨의 미궁 - 6점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창해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대기업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회사가 도산해 실업자가 된 뒤 전락한 후지키는 아르바이트에 응모했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가 정신이 든 곳은 '화성' 이라는 설정의,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벙글벙글' 국립공원이었다. 후지키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데....

"검은집", "유리망치" 단 두 편만 읽었지만, 두 작품 모두 인상적이었던 기시 유스케의 장편입니다. 타자로 비유하자면 타율과 장타력을 겸비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재미입니다. 후지키가 알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린 뒤 4가지 '선택지' 중 '정보'를 선택하고, 이후 게임의 단계별로 벌어지는 전개가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후지키가 자신의 정보와 아이템을 활용해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는 두뇌게임의 묘미도 느낄 수 있으며, '식시귀'라 불리는 식인종과의 마지막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이 넘칩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매우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게임북'이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정보'라는 선택지를 통해 얻은 단서들이 복선처럼 기능하는 부분도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단점이 작품의 핵심이기도 한 '게임'이고요.

이 작품처럼 '모종의 알 수 없는 단체나 집단에 의해 원치 않는 게임에 참가한 이들이 벌이는 생존 경쟁과 학살극'이라는 설정은 이미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익숙한 구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라 칭하는데, 이러한 설정의 작품들이 차별성을 가지려면 '게임' 자체가 얼마나 설득력 있고, 정교하며, 흥미로운지가 핵심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게임'은 초반의 4가지 선택지와 '정보'의 중요성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구조가 허술합니다. 예를 들어, 초반 선택지에서 '호신용'이라는 선택지의 중요성이 간과된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키가 2m에 달하는 세노오가 게임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플레이어 선택 과정에서 세노오 같은 특출난 인물이 포함되었다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게임'의 목적이나 단계별 과정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참가자들이 아이템을 공정하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소한 '식량'이라도 공유되었다면 이야기가 전개되지도 않았을 테니, 이러한 요소들은 작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는 아야의 주장도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지만, 최소한의 논리적인 설명이 더 필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마스터'와 '촬영자'라는 설정이 흥미로운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작중에서 거의 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게임 수행 과정에서 게임 마스터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상술한 요소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게임은 실패했을 겁니다. 때문에 후지키의 추측대로, 이 게임이 모종의 단체가 스토리가 있는 살육극을 스너프 필름으로 제작하고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훨씬 더 정교한 구성이 필요했습니다. 수십억의 돈이 들어간 거대한 프로젝트니까요. 이러한 점에서 게임 설정의 설득력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게임을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점이나 설명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점은 오히려 단점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러한 유형의 작품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을 취하긴 하지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만약 '게임' 설정이 좀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짜여 있었다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 내에서도 단연 빛나는 작품이 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