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냥꾼 - 존 백스터 지음, 서민아 옮김/동녘 |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언론인이자 영화인이며 자칭 '책 사냥꾼'인 존 백스터의 '책 수집'과 그의 인생에 대한 수다입니다. 그의 취미이자 직업이기도 한 '책 수집'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고 정작 존 백스터라는 인물의 저작이나 주요 활동은 언급되지 않으니 자서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어쨌건 방대한 책을 읽고 수집하며 다양한 활동을 한 사람답게 수다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깡촌 (?) 출신으로 철도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책의 세계에 빠지고 SF팬이 된 뒤 언론인, 작가가 되며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 그의 일생도 만만치 않지만 '책 수집'이라는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설명이 정말 대단하거든요. 관련자들과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어디서 어떻게 어떤 것을 구입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물론이고요.
또한 이러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문학작품에 빗대어 이야기하거나 실제 작가들과의 일화를 통해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현학적인 재미까지 안겨다 줍니다. 특히 저자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몇 작품은 저도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레이먼드 챈들러 작품은 이미 읽었지만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 라던가 제임스 블리시의 <지구인, 고향에 오다>와 같은 SF나 트루먼 커포티의 단편집 같은 것들은 찾아봐야겠어요. 노먼 린지의 그림들, 앨런 존스의 그림들도 마찬가지고요. * 방금 작품들을 찾아봤는데 역시나 싶네요...
아울러 같이 설명되는 저자의 일생 역시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재미납니다. '난교파티' 경험까지 설명하니 이건 뭐...
그리고 저자도 단순히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던 (초-중반부까지는 그레이엄 그린의 책들) 책을 구했을 때의 카타르시스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저 역시 오랜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절판되었던 구 동서 출판사 책을 과거 근무하던 사장님께 선사받았을 때의 기쁨,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신촌 '숨어있는 책'에서 구입했을 때의 희열,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을 고속터미널 재고떨이 서점 바닥칸에서 발견했을 때의 전율을 잘 알고 있기에 남 이야기 같지 않아 더욱 좋았던 것 같네요.
아울러 형이 일전에 로저 코먼이 방한했을때 모 영화제에서 사인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자리에는 저자의 책을 가지고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단순히 책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를 떠나서 좋은 기념이 될 것 같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일전에 모 사이트를 통해 이벤트로 증정한 저자 사인본 <경성탐정록>의 가치는 얼마나 되려나?)
그런데 딱 한가지, 번역도 좋은 편이고 작품별로 국내 출간된 정보를 알려주는 등의 세심한 주석은 굉장히 좋았지만 원문 그대로를 살리는 번역이 약간 아쉽긴 했습니다. '어메이징 스토리즈'를 '놀라운 이야기들'로 변역하는 식인데 말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원문 잡지명은 그 나름대로 고유명사인 만큼 그대로 살리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도 결론은 별점 4점. 한 개인의 장황한 수다가 이만큼이나 재미있고 유익할 수 있을까요? 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어차피 가까운 시기에는 전자책이 활성화되어 자연스러운 '화씨 451' 사회가 구현될테니 데이터로서가 아닌 '책'을 소장한다는 것 자체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어떻게보면 우표수집 같은 취미활동이 될 것 같긴 한데 그럴경우 이런 책사냥꾼들은 어떻게 될지 좀 궁금해지긴 하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