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
-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전후 일본, 오쿠다마 깊은 곳에 위치한 히메카미 촌을 지배하는 히가미가는 '아오히메' 전승에서 비롯된 저주로 아들들이 일찍 죽어왔다. 아들 조주로와 딸 히메코 쌍둥이가 태어난 십삼년째 밤, 무사를 바라는 ‘십삼야 참배’ 의식이 진행되던 도중 히메코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장성한 조주로가 아내를 맞기위한 혼담 모임을 여는 날 신부후보 마리코와 조주로가 목없는 사체로 발견된다.
야구가 끝나니 (최소한 제게는 끝났습니다) 이제서야 겨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 미쓰다 신조의 대표작으로 그야말로 정통 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맥을 잇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 이름과 탐정역의 캐릭터만 제외한다면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 2차대전 직전부터 시작하여 한 시골지방을 지배하는 가문 안의 암투와 이해할 수 없는 증오, 그리고 그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와 그 저주와 관련하여 기이한 연쇄 살인사건이 10년을 주기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기이한 콩가루집안 +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 + 저주와 연관된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3종 세트가 모두 모인 격이죠.
그리고 전개 방식도 특이해서 동네 주민이자 추리소설가이기도 한 히메노모리 묘겐이 잡지에 연재하는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얼마전 읽었던 <시체를 사는 남자>와도 좀 비슷하네요. 현대에 정통 본격물의 스타일을 부활시켰다는 점도 그러하고요.
그러나 정통 본격물로서는 기대에 못 미친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 사건, 즉 십삼야 밤의 히메코 살인사건은 가장 중요했던 요키타카의 증언을 애매하게 처리한 것이 사건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고 두번째 사건인 혼사 모임에서의 마리코 - 조주로 살인사건 역시 '마리코'의 얼굴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보았는데 어떻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게 아쉬웠습니다. 한마디로 본격 추리물에서는 지양해야 할 '변장'을 극대화한 트릭이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아울러 너무 아오히메 전승과 연관시키려 '목없는 사체'에 집착한 듯한 느낌을 준 것도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차라리 불을 지르던가 하는게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죠. 또 범인의 즉흥적인 발상이 앞뒤가 딱딱 맞아들어갈 정도로 치밀하게 진행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졌어요. 운이 좋은 것도 정도가 있어야죠! 이러한 창작방식이 작가의 특기라고는 하지만 이래서야 너무 억지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방대한 작품 곳곳에 단서를 녹여놓았다는 것, 심지어 잡지 연재물의 특성을 빌린 '막간' 이라는 부분에서 핵심적인 단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괜찮았으며 마지막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계속해서 펼쳐지는 반전과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일본 정통 본격물을 좋아라 하기도 하고 형식도 독특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핵심 트릭만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으면 굉장한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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