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사는 남자 -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몽환>시리즈로 굴지의 명성을 얻었으나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해 절필을 선언한 추리작가 호소미 다쓰토키는 잡지 <월간 신소설>에 연재된 작품 <백골귀>를 읽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백골귀>는 에도가와 란포를 주인공으로 하여 란포가 말려든 시라하마 삼단벽에서의 괴이한 자살사건을 친구 하기와라 사쿠타로와 함께 해결해 나가는 3부작 연재 소설.
<백골귀>의 작가 니시자키 가즈야는 호소미 다쓰토키와 만난 뒤 작품에 원전이 되는 사건에 대해 경찰출신인 외할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알게되어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을 털어놓고, 호소미 다쓰토키는 작품의 저작권을 자신에게 줄 것을 그에게 요청하는데...
이 작품은 작품 내부에 <백골귀>라는 소설이 포함되어 전개되는, 이른바 액자소설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풍의 30년대 분위기 물씬 나는 <백골귀>가 잡지에 한번 연재되는 분량 (총 3회) 사이사이에 현 시점 (1990년)에서 그 소설을 접한 추리소설 작가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겹쳐져서 하나의 완성된 결말을 이루는 구조죠. <백골귀>의 비중이 굉장히 큰 편이라 액자소설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오히려 여러가지 면에서 전형적인 액자소설을 깬 작품이기도 합니다.
<백골귀>는 앞선 줄거리에서 이야기했듯이 30년대를 무대로 에도가와 란포와 란포의 친구로 알려진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등장해서 시라하마의 '삼단벽' 에서 발생한 자살사건에 관련된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탐정역을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소화하고 있으며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심약한 조력자'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단 30년대 란포의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로 끌고나가려 노력한 티가 물씬 납니다. 시대적인 배경을 잘 살리기도 했지만 대단치 않아 보이는 요소들을 '괴이'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묘사들이 특히 그러하죠. 소제목들을 란포 작품에서 빌려오는 등 작품 내부에서 란포의 작품을 여러모로 인용하는 것도 인상적이고 말이죠.
그러나 단순한 분위기와 캐릭터 차용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추리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도 준수한 편입니다.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열쇠가 되는 증거가 앞부분에 공정하게 단서로 제공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복선이 깔려있으며 이러한 장치에 의한 반전도 괜찮으니까요.
그러나 왜 살해했는지에 대한 동기가 단순한 분노라는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 반전에 이르는 과정 중 중요한 요소가 '쌍둥이'형제'라는 설정에서 기인하는 뻔한 것이었다는 등의 몇가지 단점 때문에 <백골귀>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때문에 액자소설의 형식을 빌려 삽입된 현재의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죠. <백골귀>라는 작품과 현재의 호소미 다쓰토키에 얽힌 이야기의 결말, 진짜 반전까지 들어간 최종 결말이 삽입됨으로써 작품의 재미와 수준이 함께 올라가거든요. 앞서 이야기한 '동기'와 '뻔한 설정'의 한계를 결국 극복하지는 못하나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한 충분히 설득력있으면서도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치는 듯한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액자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것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30년대 분위기의 작품들도 아주 좋아하기에 이 작품으로만 끝내지말고 에도가와 란포가 등장하는 작품을 계속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기도 하네요.
덧붙이자면, 역자도 해설에 첨부하였지만 다 읽고나서도 제목이 왜 <시체를 사는 남자> 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시체는 <백골귀>라는 작품을 은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역자의 애너그램 풀이처럼 제목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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