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조커 2 -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문학동네 |
레이디 조커 3 -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문학동네 |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던1권에 이어, 거의 2년여 만에 읽게 된 후속권입니다.
1권에서는 주요 등장인물 소개 및 히노데 맥주 사장인 시로야마 납치 사건이라는 본 사건의 전초전이 벌어지는 도입부라면, 2권은 히노데 맥주를 협박하는 범죄집단 '레이디 조커'의 범죄 행각과 요구했던 거액의 돈을 손에 넣는 과정, 그리고 경찰에서 시로야마 사장의 안전과 사건 수사를 위해 파견한 고다 형사가 이런 저런 단서들을 통해 범인의 정체를 차츰 눈치채 가는 과정이 주로 그려집니다. 중간에 대화가 단절된 것에 대한 분풀이로 레이디 조커가 경고했던 맥주 내 이물질 투입이 벌어지고, 이후 히노데 맥주의 임원이자 시로야마 사장의 처남이기도 한 스기하라의 자살이 대미를 장식하지요. 여기에 기자 네고로가 사건 이면에 주식 매매를 둘러싼 네트워크 존재를 알아내고 관계자들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3권에서는 레이디 조커 사건의 비중은 미미합니다. 레이디 조커 멤버들과는 거의 무관한 2차 범행 및 경찰의 끊임없는 수사 과정과 네고로 기자의 실종으로 촉발된 오카다 경우회 검거 및 관련자들의 재판을 주로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범행에 성공한 레이디 조커 멤버들은 등장은 거의 후일담 수준이며, 히노데의 시로야마 사장과 오카다 경우회 관계자들 비중이 훨씬 큽니다.
즉 레이디 조커 사건은 2권까지가 핵심인데, 2권에서 레이디 조커 일당의 범죄 계획, 그리고 그에 따른 범행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다카무라 가오루 작품답게 심리 묘사도 발군이고요. 특별한 근거 없이 심리 묘사 만으로도 범행의 동기가 설명될 정도니 말 다했죠. 다카무라 가오루는 제 머그컵이 저를 살해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머그컵 시점에서 설득력있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니까요. 경찰 수사와 네고로와 구보 등 기자들의 취재 활동, 시로야마 등 히노데 맥주 관계자들의 업무 및 회의, 레이디 조커 일당의 경마장 묘사 등 등장하는 모든 장소, 상황 및 행동에 대한 디테일도 아주 빼어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게 끌고 가면서 도대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묘사 과잉의 애매모호한 전개와 결말을 갖춘 그런 작품이에요. 무려 3권, 페이지로는 1,000여 페이지에 가까운 대장편의 결말이 30여 페이지도 안될 정도입니다.
우선 레이디 조커 사건부터 제대로 끝맺지 못합니다. 고다의 말대로 한다가 본인 스스로 범인이라고 주장했음에도 왜 체포하여 심문하지 않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신 이상으로 퉁쳐서 넘어가기에는 어려워보이는 대형 사건이잖아요? 물론 경찰이 내부에 범인이 있다는 희대의 스캔들을 감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랬다면, 한다를 추궁하던 고다라도 그 사실을 독자에게 독백 식으로나마 설명해주는게 필요했습니다.
그 외에도 설명되지 않는건 많습니다. 레이디 조커 일당인 누노카와가 돈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레이디를 둔 채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역시나 일당인 고가 벌인 마이니치 맥주를 노린 2차 테러의 목적과 결과가 무엇인지 등이 그러합니다. 3권의 핵심 이슈인 시로야마 사장의 고뇌를 불러일으키는 오카다 경우회와의 악연 역시 마찬가지에요. 정작 오카다 경우회를 중심으로 한 악의 세력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떻게 되었는지 등도 모두 심리 묘사나 정황 묘사가 전부입니다. 시로야마 사장이 저격당해 사망하는 등 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할거라는 인상만 강하게 심어줄 뿐이죠. 무언가 진행된 것 처럼 보이는 검찰 수사 결과도 등장하지 않으며, 네고로 기자의 실종 역시 진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물론 모든 사건들이 깔끔하게 해결되는게 오히려 현실적이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범죄를 테마로 한 순문학을 추구하는 다카무라 가오루다운 작품이기도 하고요. 읽다보면 누노카와는 삶에 대한 열정을 잃었고, 고는 단지 주가 조작이 목표였으며, 오카다 경우회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큰 흑막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모든 사건이 흐지부지 끝나버린다는건, 관심있게 수백여 페이지를 읽어온 독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 않나 싶네요.
심리 묘사도 좋다고는 하지만, 고다 형사를 비롯하여 네고로 기자, 시로아먀 사장 등 주요 등장 인물 중심으로 시점이 자주 바뀌며, 묘사도 지루하고 장황한 편이라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등장 인물들 모두가 생각이 너무 많은 탓이에요. 특히 주인공 격인 고다 형사와 범인들의 리더격인 한다가 심합니다. 사건에 대한 추리 외에도 개인적인 생각과 호기심도 많고, 심리도 복잡한 인물인 탓입니다.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그릴 필요가 있었을지는 의문이에요. 그리고 욕정을 품었다 운운하는 묘사는 등장하지 않느니만 못했고요.
또 고다는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인데 다른 작품들보다는 더 멋을 들인 티가 납니다. 바이올린 연주를 즐기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티보가의 사람들>> 등을 읽는다는 등의 설정을 마구 덧붙인 덕분이죠. 그러나 멋있기는 한데,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모든 형사가 술, 담배를 즐기고 폭력적이라는게 오히려 편견이겠지만 그래도 더무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캐릭터를 설정해 버리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다카무라 가오루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여기서 심리 묘사를 덜어내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끝맺었다면 보다 대중적이며, 보다 제 취향의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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