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빙해사기 - 상 - 다니구치 지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
지구빙해사기 - 하 - 다니구치 지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
빙하기가 찾아온 지구, 인류는 컴퓨터 라 벨 메르의 도움으로 어비스 메가로폴리스를 구축한 뒤 극지 자원을 채취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갑자기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는 대격변을 맞이한다.
자원 개발 공사 석탄 채굴 기지 털파에서 일하는 타케루와 동료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기지를 빠져나와 어비스로 향하고, 여정의 와중에서 여러 인물들과 만나며 타케루는 서서히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힘'을 자각하게 되는데....
1987~1990년 까지 연재된 다니구치 지로의 SF 만화. 상, 하권 구성입니다.
일단, 상권 초반에서 묘사되는 자원 개발 공사 석탄 채굴 기지 털파를 무대로 한 일상 속 모험담은 꽤 재미있습니다. 가혹한 환경 하의 고립된 기지에 갇혀 근무하는 사람들의 디테일이 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 접대부가 바뀌지 않는 술집, 극한의 폐쇄 공간인 탓에 사소한 일로 벌어지는 싸움들, 지하와 지상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다양한 사고와 수리 작업 등이 다니구치 지로의 정교한 그림으로 손에 잡힐 듯한 느낌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엄청난 현실감을 보장하고요.
그러나 이러한 기지의 일상 이야기 외에는 도저히 점수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저히 모르겠거든요.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호해요. 처음에는 급작스러운 태풍으로 고립된 털파 기지에서의 탈출을 보여주나 했더니, 그 다음에는 빙하기가 끝났다며 살아 움직이는 숲이 나오는 등 나우시카스러운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마지막에는 어비스에 도착한 타케루가 컴퓨터 라 벨 메르가 만든 신인류와 맞서 싸운다는 급작스러운 결말로 끝이 납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들은 각각 제도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아요.
더 큰 문제는 뿌려놓은 떡밥조차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타케루가 어떻게 거인신과 교신하는지, 거인신의 정체와 의도는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살아 움직이는 숲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 세계가 변화하는 상황 역시 묘사만 있고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더 가관이에요. 타케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고 털파 기지의 생존자들을 비롯한 여러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 하나 없이 마무리되니까요. 이 정도면 소드전사 야마토급 엔딩이라고 봐도 무방할겁니다. 아니, 그보다도 못하죠. 제대로 끝내지도 못했으니.
또 디테일한 작화에 비해 캐릭터들은 영 별로입니다. 주인공 타케루가 가장 심각한데, 사장의 사생아로 사고만 치는 문제아였다가 급작스럽게 모두의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의 설득력이 너무 약합니다. 다른 캐릭터들 모두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일 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당대를 풍미했던 오토모 가즈히로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 설정, 작화와 분위기를 적당히 섞어 만든 하이브리드 혼종이나 결과물은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절대로 권해드릴 수 없는 졸작입니다. 편집자 잘못인지, 아니면 다니구치 지로는 제대로 된 원작이 없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건지 판단은 잘 되지 않는데 개인적으로는 후자 쪽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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