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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4

슬로모션을 다시 한번 - 카노우 리에 / 허윤 : 별점 2점

슬로모션을 다시 한번 1 - 4점
카노우 리에 지음, 허윤 옮김/대원씨아이(만화)

80년대를 좋아하는 고교 1년생 오오타키와 야쿠시마루가 서로의 공통점을 알고난 뒤, 알콩달콩한 첫사랑을 키워나간다는 청춘 멜로물.

달달하면서도 순수한, 그야말로 플라토닉한 고등학생들의 첫사랑을 80년대 풍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래전 작품 느낌이 나는 이유는 주인공들이 너무나 착하고 순진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전 7권 분량 동안 둘이 교제를 결심하는 것도 막바지인 6권부터이며, 교제를 시작해도 남녀 주인공은 키스 한 번 하지 않는 순진한 아이들로 묘사됩니다. 지나치게 소심하고 착한 야쿠시마루야 그렇다쳐도, 남자 주인공인 오오타키마저도 큰 가슴에 혹하기는 하지만 별다른 성욕이나 망상을 드러내지 않고요.
캐릭터 묘사도 80년대스러워요. 작화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여주인공 야쿠시마루는 80년대 대표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의 판박이입니다. 흔치않은 이름부터가 80년대 최고의 아이돌 중 한 명이었던 야쿠시마루 히로코에서 따왔으니 말 다했죠. 중간 중간 등장하는 컷 일러스트들도 추억을 돋게 만들고요.

또 이야기의 주요 흐름이 80년대의 아이돌과 그들의 노래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점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제목의 <<슬로 모션>>은 물론, 소제목 모두가 당대 인기곡들 제목이며, 그 외 수많은 80년대 아이돌과 노래가 직, 간접적으로 전개에 영향을 주거든요.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진 소녀 야쿠시마루를 만난 오오타키의 모습 뒤에 두근거리는 감정 표현과 함께 <<슬로 모션>>의 클라이막스인 '만남은 슬로우 모션' 이 흐르는게 좋은 예입니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이 전 가사가 '갑자기 등줄기를 따라, 사랑의 예감이 달콤하게 달렸어'라는걸 알고 있으니까요. 이외에도 어떤 순간, 80년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던가, 다케우치 마리야의 시티팝은 어른 노래라고 하는 등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장치가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길게 끌고나가지 못한 이유도 명백합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무리하게 길게 끌고 나가서 생긴 온갖 문제가 전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둘의 교제가 시작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너무 깁니다. 아무리 80년대 복고풍 청춘 멜로물이라 하더라도, 21세기에 발표된 작품이 별다른 애정표현도 없이 6권에서야 사랑 고백을 하다니 이건 좀 지나치죠.
또 나카이도나 고이즈미와 같은 쓸데없는 라이벌의 등장과 이를 통해 삼각 관계나 사각 관계를 끌고가려는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별다른 고민없이 그냥 인기있던 작품들의 설정들을 억지로 가져다 붙인 느낌이에요. 하긴, 좀 더 매끄럽게 삼각 관계, 사각 관계를 그려냈더라면 지금보다야 연재가 길게 이어지긴 했을겁니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으나 작가의 실력이 부족했던거지요.
여러가지 전개 상의 시행착오 끝에 둘이 사귀기 시작한 뒤도 급하게 마무리되는 것도 아쉽습니다. 정작 사랑 이야기보다는 야쿠시마루의 성장기 중심으로 이야기도 완벽하게 궤도가 바뀌거든요. 그나마도 좀 극적이었다면 모를까, 클라이막스인 패션쇼가 전혀 와 닿지 않아서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야쿠시마루 아버지 실종의 진상도 뭐 그런가보다, 싶은 정도로 넘어가버리고요.
이럴거라면 중간부분을 모두 들어내고 분량을 대폭 줄여서 둘이 교제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끝나도록 3˜4권 정도로 발표하는게 훨씬 완성도가 높았을 듯 싶네요. 그랬다면 걸작이 되고, 영상화도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80년대를 사랑하는 아이들' 이라는 컨셉을 너무 과하게 우려먹는 것도 문제에요. 초반부는 옛날 노래가 등장하는 상황이라던가, 다른 등장 소품들이 이야기와 잘 어울리고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는데 가면 갈 수록 소재 고갈 탓인지 억지가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오오타키가 결의를 다지기 위해 밤에 부르는 노래가 <<쥴리아의 상심>>이라는건 누가 봐도 좀 오버스럽지 않나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단점은 아니지만, 80년대 아이돌과 노래들도 초반이 중심이며 밴드는 고작해야 첵커스, RC석세션 정도만 등장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었습니다. 저에게 80년대는 안전지대, 튜브, 사잔, 오메가 트라이브의 시대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아이디어도 나쁘지않고,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성공했지만, 전개와 마무리는 영 좋지 못했습니다. 작가와 편집자 모두 실력이 부족한 탓이지요. 권해드리기는 조금 애매한데 80년대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1,2권 정도은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뒤로 가면 갈 수록 별로라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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