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4/04/12

우부메의 여름 - 교코쿠 나츠히코 : 별점 2.5점

우부메의 여름 - 6점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손안의책(사철나무)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작가 세키구치는 친분이 있던 탐정 에노키즈의 조수 역할을 한 것을 계기로 유서깊은 산부인과 병원 가문인 구온지 의원의 괴사건 - 구온지 가문의 사위인 마키오씨가 밀실에서 행방불명되고 아내인 교코는 20개월째 임신 중인 상태라는 것 - 에 참여하게 된다.
전쟁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일종의 과거-원념을 볼 수 있게 된 에노키즈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긴채 사건에서 손을 떼지만, 과거 마키오와 학교 동창으로 교코와 마키오의 연애편지를 전달했던 역할을 했던 세키구치는 심약한 성격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과거에 쫓기며 사건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결국, 사건은 평소 친하던 고서점 교코쿠도의 주인이자 세이메이의 계보를 있는 신사의 신주인 추젠지 아키히토의 추리로 구온지 가문의 숨겨진 역사와 사건의 뒤에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일본의 유명 인기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의 데뷰 장편. 꽤 비싼 가격이지만 괜찮게 디자인된 장정과 작가 이름에 혹해서 바로 집어 든 작품입니다. 좋은 책은 많이 사 주어야 추리장르가 활성화 되겠죠? (물론 저도 헌책방을 애용하긴 하지만요...) 손안의 책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디자인과 장정은 정말 괜찮네요.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는 추리소설가이기도 하나, 일본 요괴에 대해서도 권위자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전에 먼저 접해보았던 단편집 “백귀야행”도 괴담류의 공포소설이었죠. 그래서 그럴까요? 이 작품 역시 “우부메”라는 일본 전통 요괴, 즉 아이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의 집념이 형상화 된 요괴를 테마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단순 괴담은 아니며 20개월이나 임신을 하고 있다는 임산부나 밀실에서 사라진 의사, 그리고 구온지 가문 병원에서 발생한 계속된 신생아 실종 사건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전통 요괴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현대적인 감각의 추리 소설로 재탄생시키는 솜씨가 과연 일품이더군요. 변격물과 유사하지만 그 감각을 따와서 보다 현대적인 작품으로 발전되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세간의 호평, 걸작이라고 소문에 비하면 아쉬움이 더 많습니다. 일단 말 많은 주인공인 추젠지 아키히토부터가 별로에요. 똑똑하고 잘난척 하는 탐정의 전형이라 왠지 거부감이 느껴질 뿐더러, 추리의 바탕이 되는 논리를 설명하는 부분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장황하고 지루하거든요.
해설자역의 실질적 화자 세키구치 역시나 추리소설의 해설자 역으로는 빵점에 가깝습니다. 본인 스스로 너무나 심약하고 마음의 병도 있는데다가,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여되어있기도 해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결정적 이유가 세키구치의 오락가락하는 정신 상태 탓이니 더 말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제가 추리소설에 보아왔던 것 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감점 요소에요. 이래서야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작가의 논리 - 추젠지의 말을 빌린 - 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수긍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독특하고 감성적인 문체에서 발생하는 흡입력도 상당하며, 현대적 감성의 변격물을 요괴 이야기와 결합한 아이디어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정통 본격 추리소설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웠던 결과물입니다. 
제가 아는 추리 매니아이신 decca님은 집어들고 하루만에 다 읽으셨다고 하는데, 좀 더 추리소설에 가까운 후속작을 기대해 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