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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30

정의 - 하마오 시로 외 / 페가나 : 별점 2점

정의 - 4점
하마오 시로 외/페가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컨텐츠들을 번역 소개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페가나의 일본 단편 추리소설 모음집입니다. 비교적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임에도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번역의 질도 괜찮다는 점에서 가끔 생각이 나면 구입해 읽곤 하는 시리즈죠.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전 모음집에 비하면 별로였습니다. 추리물도 아니고 한 편의 이야기로 보기에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2편 (<<촬영장 살인사건>>, <<병사와 배우>>) 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추리물들도 딱히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은 고전 본격물의 재탕이거나 심각한 단점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제작인 <<정의>> 만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주탑의 비밀>> 코가 사부로
일본 작가 코가 사부로의 명탐정 하시모토 빈이 등장하는 단편. 이전 읽었던 <<혈액형 살인사건>> 에 수록되었던 작품이죠. 전람회장에서 거액의 진주탑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2Kg 정도 되는 탑을 5미터 높이의 창으로는 가지고 나갈 수 없고, 범행 당시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침입할 때가 아닌 도망갈 때 들렸다는 점, 그리고 진주탑이 바꿔치기 되었다는 증언은 사세 주임 단 한 명이 확인했다는 단서를 모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다 아셨겠지만 진주탑은 바꿔치기 된 게 아니고, 가장 비싸다는 진주 한 개만 바꿔치기 된 것이죠...
이렇게 몇몇 단서들을 토대로 진상을 밝혀내는 전개는 전형적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로 단서, 추리, 진상 모두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딱히 흠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무난해서 새로운 점은 딱히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모조 진주탑을 만들어 달라는 우연한 의뢰가 겹쳐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 건 완전한 억지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 3의 인물이 개입한 것이 우연이라는 점에서 작위적일 뿐더러, 사세 주임이 처음부터 진주 몇 개를 빼돌릴 생각을 하지 않고 우연에 기인해 거액을 들여 기묘한 사기를 치려고 한 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그렇게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촬영장 살인사건>> 사카이 카시치
촬영장에서 동료 엑스트라를 죽인 남자는 미친 척을 한 것일 뿐이라는 내용의 단편.
의외성도 없고 추리물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망작입니다. 어차피 도주에 성공한 거라면 미친 척을 할 이유도 없잖아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미친 기관차>> 오사카 케이키치
명탐정 아오야마 쿄스케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오사카 케이키치는 다른 단편집으로 이미 접했었던 작가인데 추리적으로는 반짝반짝했던 작품들이 많아서 기대가 컸습니다.

내용은 기차역 (W역) 에서 가해자의 흔적이 전무한 사체가 발견된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과학 수사" 가 핵심이라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쿄스케가 광학 현미경을 요구한 후 피해자 상처의 모래의 재질에 대해 분석한 후 흉기를 추리하는 과정이 특히 그러합니다. 내용도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조면암과 석영조면암을 구분하여 설명할 정도로 깊이가 있는 편이에요.
그 외에도 기관차와 선로. 열차 운행 시간, 물과 석탄의 보충, 운행 속도 등을 감안한 추리, 또 열차 내부 장치와 흉기인 곡괭이 자루 구멍을 연결하는 추리도 나름의 탄탄하고 깊이 있는 자료 조사가 뒷 받침 된 덕에 굉장히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초창기 기차와 기차역에 대한 묘사는 철덕들에게는 굉장히 사랑을 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푸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리로 밝혀낸 진범인 역장의 동기가 장점을 다 잡아 먹습니다. 열차에 손을 잃은 후 그 열차를 바다로 밀어넣는 복수를 위해 두 명이나 되는 승무원을 죽인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요. 정차해 있는 동안 불이라도 지르던가...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동기만 설득력 있었어도 조금은 높은 점수를 받았을텐데 아쉽네요.

<<병사와 배우>> 와타나베 온
병사 옹과 배우 하루는 친구로 옹은 옆나라 맘루크 술탄 왕국의 파르티잔 파업 진압 전쟁에서 막 돌아온 상태, 하지만 실제 전투는 없었기 때문에 영화사의 속임수가 아닐까 의심한다는 내용.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던 꽁트. 발표 년도인 1928을 생각해보면 체제 비판인 듯 싶은데 거의 백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눈길을 끌 만한 요소는 전무합니다. 왜 이상한 판타지스러운 설정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체제 비판이라서 설정을 틀었다고 보기에는 어차피 내용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그닥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거든요. 핵심 주제인 "전쟁은 추악하지만 전쟁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영화야 말로 진짜 쓰레기다." 라는 주제도 그다지 설득력있게 드러나지 못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정말로 파르티잔 파업 진압 전쟁이 영화사의 속임수라는게 밝혀졌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검은 수첩>> 히사오 주란
히사오 주란은 에도 시대를 무대로 한 <<아고주로 체포록>> 시리즈로 접해보았던 작가입니다. 모험물 성격이 강했던 아고주로 시리즈는 재미있게 읽었었죠. 이 작품은 근대를 무대로 일본인 파리 유학생 "나" 가 같은 건물에 살던 주민들과 얽힌 후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 가 허름하고 저렴한 하숙집으로 이사온 첫 날, 아래층 부부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미국 태생의 음악 전공인 일본계 이민자 2세 커플이죠. 그리고 우연히 친분을 맺게 된 윗층 남자는 룰렛 순열을 예측하는 공식을 알아낸 수학자고요.
그리고 유학 자금이 끊겨 한 방을 노리는 아래층 부부가 윗층 남자의 룰렛 순열 공식이 담긴 검은 수첩을 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법 탄탄한 설정으로 꽤나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 하나만큼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는 독자 심리를 자극하는 전개 능력이 탁월한 덕분일 뿐, 실제 그닥 깊이있는 고민이 반영된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룰렛 순열 공식이 무엇인지 등장하지 않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인데 장황한 대사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뿐, 결국 실체가 없는 이야기라 별로 설득력있게 느껴지기 않더군요.

그리고 캐릭터들도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유학 자금이 끊겼다는 이유로 도박이나 하려는 철없는 부부는 볼썽사납기 그지 없어요. 도박에서 살인으로 흐르는 인과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이라 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요.
단지 살인을 관찰하기 위한 주인공의 심리도 이해 불가입니다. 타인의 죽음을 방조하는 방관자는 또 다른 살인의 공범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그걸 정당화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캐릭터 설정과 묘사로 낯선 느낌과 불쾌함을 자극하는, 가학적인 분위기가 흥미를 자극하는 건 사실이지만 도무지 취향이 아니었어요. 

마지막에 결국 부부는 인간다움을 되찾지만 6층 남자는 실연과 잃어버린 젊음을 저주하며 자살하고, 도박 비법인 수첩은 주인공에 의해 난로로 향한다는 결말도 앞서 풀어나가던 과정에 비교하면 너무 쉽게, 대충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룰렛 시스템을 완성한 남자 수학자 캐릭터는 나쁘지 않긴 합니다. 카리스마 있고 괜찮은 편으로, 그가 일부러 잃으려 했지만 따 버렸다는 중반부 반전도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뭔가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갔어도 훨씬 괜찮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펄프 픽션 이상의 결과물은 아닙니다.

<<정의>> 하마오 시로
키누가와 변호사에게 찾아온 옛 친구 키요가와 준은 키누가와가 맡고 있는 마츠무라 자작 살인 사건 이야기를 꺼낸다.
마츠누마 자작은 호텔 방에서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자세와 현장 상태를 미루어 자살이라 생각되었지만 유서가 없는 점과 왼손잡이인 백작이 오른손으로 총을 쏠 리가 없었다는 점에서 호텔 종업원 모리키가 체포된 상황...


표제작. 하마오 시로의 작품은 역시나 페가나의 추리 단편 선집 <<감방>> 을 통해 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감방>> 에 수록되었던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 도 아주 좋았는데 이 작품도 괜찮습니다. 이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을 만 합니다.
내용은 이른바 '딜레마' 를 다루고 있는데, 모리키의 무고를 입증할 증인은 키누가와의 아내와 불륜 관계였다는 이야기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전개가 실로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뻔한 설정이지만 이를 법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논쟁을 벌이는 둘의 대화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딱 한가지, 증인인 A씨는 키요가와의 동생이 아니라 키요가와 준 본인이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선사하는 긴장감 넘치는 좋은 이야기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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