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호의 조난 - A. 코레아르.H. 사비니 지음, 심홍 옮김/리에종 |
뗏목에서 여러명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메두사 호의 조난을 제리코가 그린 위의 그림은 한 번씩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이 책은 이 그림의 소재가 된 메두사 호 해상 조난 사건의 피해자의 수기로 이루어진 논픽션입니다. 이런 류의 해상 재난 관련 논픽션은 <<바다 한 가운데서>>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책 소개도 그럴듯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책은 메두사 호가 항해하게 된 이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814. 15년 파리 조약을 통해 원래 프랑스 땅이었지만 영국이 보유하고 있던 아프리카 서해안의 권리가 명확해 진 후, 프랑스가 자신들의 소유지인 거점 도시 생 루이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4척으로 구성된 세네갈 원정대가 출발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원정대원들도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해 3개 중대 250여명의 군인은 물론 신부, 의사, 정원사에 제빵 기술자 등 다양한 직업의 인원들로 구성되었으며, 같은 이유로 다양한 물자도 운반하였는데 이 중에는 무려 10만 프랑에 이르는 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능한 원정 함대 사령관 쇼마레 탓에 원정대의 기함 메두사 호는 케이프 블랑코 모래톱에 좌초하게 되고, 무익한 노력이 이어지다가 배의 파손이 심해져 결국 구명정 등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당연히 악천후 등에 의해 망망대해에서 배가 침몰한 사고라 생각했었는데 부주의로 인해 육지 근처 모래톱에 좌초한 것이라니 굉장히 황당하더군요.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났다면 당연히 이 사건이 그림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하진 않았겠죠? 더 큰 어려움, 비극이 찾아오는데 그건 바로 조난자들의 절반 가까이인 152명이 프리깃함의 자재로 대충 만든 뗏목에 탑승하게 되고, 노 하나 없어서 다른 구명정 들이 끌어주어야 함에도 이들이 예인줄을 풀어버렸기 때문에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가 소수만 구조되는 처참한 이야기로 이 책의 절반 정도 분량을 차지합니다. 주로 뗏목에서 당시 군의관 사비니와 인부 리더 코레아르가 활약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조난당한 이유도 황당하지만 무려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타야 할 뗏목의 준비 역시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나침반 하나 없고 음식도 제대로 싣지 않고 출발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닥치거든요. 심지어 일부 승선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기까지 하니 말 다했죠. 이 과정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할 식인도 시작되고 말이죠. 결과적으로 10%인 15명만 생존하고, 이 중 5명도 구조되자마자 바로 죽어버리는 참혹한 표류가 적나라하게 펼쳐집니다.
뗏목 조난 외의 나머지 절반 분량은 다른 구명정과 상륙정에 탑승했던 조난자들이 육지로 상륙하여 도보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이야기인데 이 역시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확실히 바다보다는 사막이 생존에는 더 낫다 싶긴 했어요. 물과 식량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고 탐욕스러운 (이들의 말에 따르자면 그렇습니다. 멀쩡한 남의 나라를 자기 멋대로 식민지로 만드는 무리들이 염치도 없지...) 무어인들을 만나 고초를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망한 사람은 소수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애초부터 메두사 호에 있던 군인들 중심으로 확실하게 규율을 잡고 식량을 확실하게 확보하여 도보로 이동하는게 더 나은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표류, 조난 이야기 외에도 구조된 이후의 후일담도 상세합니다. 생존자 대부분이 가진 재산 모두를 약탈당하고 알거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잊혀졌고, 심지어 사비니의 수기는 정치적인 음모로 이용되고 코레아르는 정부 관계자에게 완전히 무시당하는 등 살아 남은 뒤에도 고초를 겪는다는 내용이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수기가 쓰여진 목적은 사비니와 코레아르가 자신들의 영웅적인(?) 행동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걸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묘사들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었어요. 식량이 없어 죽어나가며 식인도 했다고 서술하면서 또 어떤 부분에서는 국왕 폐하의 신하들을 바닷 속으로 돌려보냈다는 식으로 장례를 치뤄 주었다고 쓰는 등 앞 뒤도 잘 맞지 않고요. 때문에 정말로 함대 사령관 쇼마레가 이렇게나 무능했는지, 총독은 자비심이라고는 없었는지 등도 별로 신뢰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류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문제는 보통 윗 사람들 때문이라는 고금동서의 전례가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 것 증명된 건 없으니까요. 솔직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포도주를 독차지하고 죽은 사람들의 고기를 먹은 인간 말종들이었을 수도 있죠.
게다가 수기 내내 스스로의 영웅적인 행동과 박애정신에 감탄하고, 자기들이 조국과 국왕에 충성하며 헌신하는 국민이라는 걸 수기 내내 강조하는 것도 읽으면서 솔직히 짜증이 났던 부분입니다. 이유는 역시나 자신들에 대한 보상 목적이라 생각되는데 오히려 이런 불필요한 묘사로 정작 중요한 표류, 생존을 위한 투쟁에 대한 묘사가 희석되고 깊이가 없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여러가지 디테일들 - 뗏목에서 더위를 잊기 위해 모자에 바닷물을 담가 얼굴을 씻고, 머리를 적시고, 물속에 손을 넣는 것을 반복했다, 사막을 도보로 횡단하던 중 약 2미터 깊이로 모래를 파면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무어인은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불을 붙인 나무뿌리와 함께 잡은 황소를 던져 넣고 모래로 덮은 후, 다시 그 위에 숯불을 덮어 조리했다. 무어족 가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염소 가죽은 방수가 완벽했다 등 - 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도보 횡단 중 만난 무어인의 왕 자이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이드 왕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는 국제인으로 소개되거든요. 왕이라기 보다는 좀 큰 유목민을 이끄는 리더로 보이는데 당대 아프리카 서부 세네갈의 한 지역 부족장이 이 정도의 국제 감각과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건 상당히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토착 민간 요법으로 열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럼주를 넣은 매우 뜨거운 펀치를 '카엔 후추'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고추 삶은 물과 함께 큰 잔에 넣어 마시는 것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는 것과 진배 없어 보였거든요.
하지만 살기 위한 처절한 투쟁 묘사는 그닥 상세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애초 글이 쓰여진 목적이 조금은 불순하고, 그래서 저자 시점에서 왜곡된 내용이 많은 듯 하여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인쇄 상태, 폰트 등 책의 만듬새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류의 해상 조난 관련 논픽션을 원하신다면 <<바다 한 가운데서>>를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디테일, 깊이 모두 차원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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