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에의 제물 - 나카이 히데오 지음, 허문순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일단 <안티 미스터리>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아래와 같더군요.
- 미스터리 속에 미스터리가 존재
- 스토리의 반전이 많다.
- 결국 미해결 사건이 되거나 뒷맛 씁쓸한 결말로 끝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과연 이 작품안에서 등장인물인 무레타가 쓴 소설인지, 아니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추리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추리를 쏟아내기 때문에 추리와 트릭이 난무할 뿐 아니라 추리마다 새롭게 이야기가 반전되기 때문에 결국 뭐가 진상인지도 헛갈리거든요. 마지막 결말이 씁쓸한것 역시 공식대로고요.
또한 <안티 미스터리>라는 이름답게 정통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반대되는, 어떻게 보면 고전 본격물의 패러디같은 느낌을 강한게 전해주는건 특이했습니다.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던가 "밀실",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악연", "증오가 넘치는 가족관계", "색깔로 형상화된 범행" 등과 같은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 본격물의 요소들을 모조리 도입하여 작품안에서 정말 작위적으로 녹여내는 점이라던가, <녹스의 추리소설 10계> 나 란포의 <속 환영성> 같은 추리소설의 교과서적인 룰들을 따라 추리쇼를 진행하는 것 모두가 본격물에 대한 비틀기, 패러디로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비틀기와 패러디가 좋은 쪽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라 앞과 뒤가 연결이 잘 안되는 것도 있었지만, 비틀기와 패러디를 위한 작가의 의도가 지나쳐서 뒤로 갈수록 몰입하기 힘들었거든요. 작위적 설정이 한두번 정도 양념으로 쓰인다면 모를까 전편에 걸쳐 벌어지니 지루할 수 밖에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질때마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만의 장황한 추리를 펼치는 추리쇼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책의 구성도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는 사람이 아는 독자들을 위해 맘먹고 비틀고 패러디한 희대의 괴작' 입니다. 중반까지는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괜찮은 추리와 트릭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본격 추리소설의 얼개를 제대로 갖추고 있기는 해서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기는 합니다만 패러디와 비틀기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지루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어떻게보면 미완성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해괴한 작품이네요.
아는 사람이 읽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기도 쉽지 않으며, 보는 시각에 따라 5점 ~ 1점을 오갈 수 있어서 별점으로 평가하기가 정말로 어려운 작품인데 제 개인적인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악명높은 동서문화사의 번역본이라 걱정했는데 역시나 뒤로 갈수록 번역이 거슬리더군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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