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子連れ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으로도 잘 알려진 고전 시대극 만화입니다. 주말에 이래저래 집안에만 처박혀 있다가 한번에 읽어버린 만화죠.
기본 설정은 당대의 인기작답게, 영화로도 여러편 나왔을 정도로 매력적이긴 합니다. 아들을 일종의 무기창고이자 방패와 썰매로도 활용하는 만능(?) 유모차에 태우고 전국을 헤메는 사연많은 최강 사무라이, 그를 잡으려는 일본 막부 배후의 실력자 야규가문의 승부를 큰 축으로 해서 주인공인 수구류의 오가미 잇토가 의뢰금 500냥으로 벌이는 다양한 자객 활동을 양념처럼 곁들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비가 갖추어진 리어카와 주인공의 먼치킨적인 속성, 그리고 어떤 적도 베어버리는 전쟁용 칼 동태관의 존재는 이 작품이 "베르세르크"에 큰 영향을 주었구나...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참신한 설정과 비교적 괜찮은 자객 활동 에피소드들에 비하면 전체적인 큰 줄거리는 쓰레기라 해도 될 정도로 함량미달이었습니다. 김성모 화백의 만화를 보는 친숙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오가미 잇토가 너무 강하다는 것입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1:1로 상대가 될만한 인물은 야규가문의 수장 야규 레츠도 단 1명일 뿐, 그 외에는 수백명이라 하더라도 모두 칼만 들었지 죄다 허수아비일 뿐이에요. 심지어는 완전무장한 군대와도 한판 승부를 벌여 이길 정도이니 말 다했죠. 이렇게 강하면 처음부터 집을 습격한 야규 일당을 다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레츠도와 승부하면 깔끔했을텐데 왜 4년이나 방랑하며 자객활동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오가미 잇토라는 캐릭터도 문제가 많죠. 본인 스스로는 승리를 위해 3살박이 아들을 이용해먹고 비밀장치가 숨겨진 유모차로 적들을 학살하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싸이코패스인 주제에 명부마도를 걷고있다고 정당화시키니 이거야말로 자기합리화의 극치죠.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을 운운한다니 이런 철면피 같으니라고!
야규 레츠도 역시 뒤로 가면 갈수록 야규가문을 위해 오가미를 모함한 악당에서 어느새 무사도 정신에 투철한 진정한 사무라이로 캐릭터가 바뀝니다. 흥행을 위한 선택인 것은 분명한데 문제는 악역으로 긴급 투입한 정부의 순역 가이이입니다. 초반의 두뇌파 악당 역할은 잠시일 뿐 곧바로 찌질이 개그캐릭터로 돌변해 버리거든요...
무엇보다도 중반부의 결전 이후 "야규봉회장"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야기는 산으로, 달로, 안드로메다로 저 멀리 가버려 김성모 스타일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제일 웃기는 것은 오가미 잇토가 비밀을 알아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야규봉회장"이 결국 아무 역할도 못한다는거죠. 거의 10권 넘는 분량을 무슨 대단한 비밀인것처럼 취급하더니 마지막은 아무 상관없는 그냥 1:1 대결. 대체 이것때문에 죽어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뭐였던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40권이나 되는 분량을 한번에 읽게끔 하는 김성모적인 재미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설정 (예를 들자면 "동반검객")은 마음에 들기에 별점은 쓰레기급에 조금 얹어서 1.5점입니다만 유명세와 영향력에 비하면 너무 실망이 컸습니다. 야규와의 승부보다 자객활동하면서 벌어지는 잔잔하면서도 의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더 좋았는데 차라리 이런 에피소드 중심의 외전이 나온다면 훨씬 좋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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