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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2

덧없는 양들의 축연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4점

 

덧없는 양들의 축연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인사이트 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젊은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신작 단편집입니다. 부유한 가문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모두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으로 묶이는 "기묘한 맛" 류의 연작단편집이죠. 일상계 소품이었던 작가의 전작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도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클로즈드 써클류의 정통 본격 추리 스릴러였던 <인사이트밀>과도 전혀 다른 쟝르죠. 작가의 도전정신이 눈에 띕니다.

그러나... 도전은 좋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일단 전작들은 '트릭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점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탁월하다 싶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트릭 창작력은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작품은 추리적인 부분에서 많이 부족합니다. 트릭이 거의 등장하지 않을 뿐더러 거의 모든 이야기의 동기가 애매하고 설득력이 없거든요. 물론 쟝르가 정통 추리물은 아니라는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작가의 이름값에서 일말의 기대를 했었는데 많이 아쉽더군요. 아울러"기묘한 맛"류의 작품치고는 반전이나 서늘함 역시 별로 뛰어나다 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문제고요.

그리고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설정과 전개가 여전히 별로인 탓도 큽니다. 그나마 일상계 두편은 아무래도 일상계이기에 비현실적인 설정이 덜했고 <인사이트밀>은 설정보다는 트릭이 포인트라서 단점을 많이 상쇄시키는데 이 작품에서는 연작이라는 주제에 얽매인 듯 작위적인 설정이 너무 많아서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에요. 하녀와 메이드, 그리고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너무 만화적인 설정이잖아요? 부유한 가문의 어두운 진실이라는 주제도 현실적이지 못한 낡아빠진 설정이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전작들에 비하면 부족한, 작가의 단점이 두드러지고 장점은 잘 보이지 않는 작품집이었어요. 작품별 상세 분석을 통한 별점은 2.4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덧없는 양들의 만찬>인데 그나마도 별점은 3점이네요. 이 단편집에 한해서는 차라리 만화로 발표하는게 더 나았을 것 같군요. 다음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의 장점을 잘 살린 정통 본격 퍼즐 미스터리를 선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덧붙이자면 출판사 홍보문구는 - 요네자와 호노의 블랙 미스터리 연작 소설. 상류계급의 영애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독서 모임이 있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바벨의 모임'. 명예, 애증, 꿈…. 이 '바벨의 모임'에 소속된 영애들과 그 집안을 둘러싼 차갑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 인데 이거 완전 과장광고에요! 뭔가 온다 리쿠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환상이고 뭐고 없는 내용이며 주요 소재인 것으로 보이는 "바벨의 모임"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도 딱 두편 뿐이라 연관성을 지녔다고 말하기 힘들거든요. 게다가 "블랙 미스터리"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나 로열드 달이 "블랙 미스터리" 작가던가? 홍보문구에 낚이는게 한두번은 아니지만 씁쓸합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탄잔가문의 후계자이자 외동딸인 후키코의 하녀 유우히의 수기형태로 전개되는 작품. 후키코의 오빠로 부적절한 행실로 인해 집안에서 축출당한 소타가 저택을 습격하다가 한손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사라진다. 그 뒤 후키코의 고모와 할머니가 살해당한채, 그것도 한손을 잃은 상태로 발견된다.
일견 전형적인 고전 추리소설과 같은 전개죠? 하지만 급작스럽게 후키코의 지병(?)이라는 동기로 마무리되며 이야기는 안드로메다로 가 버립니다. 정말이지 동기가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나 뜬금없었어요. 몽유병이라는 설정 역시 작위적이었고요. 후키코가 비밀스럽게 읽는 책들을 유우히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나중에 동기와 연관된다는 부분 하나만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북관의 죄인>
무츠나 가문의 정부의 딸로 태어난 나 (아마리)는 북관에 먼저 거주하는 무츠나가문의 후계자였던 소타로의 하녀 겸 간수가 된다. 절대 북관을 나갈 수 없는 소타로의 부탁으로 다양한 물건들을 구해주지만 그 물건들의 사용처를 모르는 상태, 하지만 소타로가 병으로 사망한 뒤 남긴 그림을 통해 물건들의 사용처를 알게된다.
작품들 중 가장 합리적인 동기, 즉 "돈"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이러한 동기와 범죄보다는 소타로가 아마리에게 부탁한 여러가지 물건들의 사용처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식초로 시작해서 압정, 실톱,막자사발, 목재, 니스, 연을 날릴때 쓰는 실, 마로 된 천, 납, 계란, 피, 라피즈라즐리 원석들 말이죠. 이 물건들이 앞부분에서 등장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앞과 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전개가 아주 깔끔해서 마음에 드네요. 그림에 약간의 장치를 통해 서서히 색깔이 변해가도록 했다는 트릭이 사건의 진상, 즉 아마리의 범죄를 드러낸다는 내용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너무 번잡스러웠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한 것 자체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작위적이어서 아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장난스러운 장치 이외의 의미는 없던 트릭 역시 문제였고요. 범인만 알 수 있는 다이잉메시지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작가의 현학적인 지식의 과시 이외의 알맹이가 부족했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산장비문>
무역상 타츠노의 별장 비계관의 관리인 야시마는 조난당한 등산객 오치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손님이 없어 활기없는 비계관에 손님을 찾아오게할 묘책을 생각해 낸다
"바벨의 모임"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별장관리인이 등장하는, 합리적인 내용과 함께 이야기 전개가 깔끔한 소품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입막음의 수단으로 쓴다는 '만지면 손을 벨 것 처럼 날카롭고 사람을 때려죽일 수 조차 있는 벽돌같은 덩어리'라는 묘사는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금괴라고 하던가. 아니면 그냥 죽이던가..
그래도 합리적인 동기와 더불어 오치의 생사를 놓고 도우미 유키코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등 흥미진진한 전개 등으로 평균적인 수준의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이죠. 별점은 2.5점 입니다.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
오구리 가문의 외동딸 스미카의 유일한 친구는 하녀 이스즈.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후계자 지위에서 박탈당한 스미카는 집안에 유배되고 목숨까지 위협받게 된다.
할머니에게 지배되는 시골의 명문가라는 설정은 21세기에 들고 나오기에는 너무 낡은게 아닌가 싶었어요. 손자 타이하쿠의 죽음과 노마님의 죽음으로 이어지는사건의 연쇄 역시 그닥 논리적이지 않고요. 또한 이야기가 스미카의 추측과 추정으로만 진행되고 이스즈의 심리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등 사건으로 성립하는게 힘들어 보였습니다. 서늘한 느낌은 괜찮았는데 뭔가 좀 미완성인 느낌이 강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덧없는 양들의 만찬>
졸부 오데라 가문 딸의 일기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의 작품. 그녀는 일기에서 바벨의 모임의 소멸에 대해 다룬다. 이유는 그녀가 "아밀스턴 양 요리"를 가문의 요리사 나츠에게 시켰기 때문.
스텐리 엘린의 걸작 단편 <특별요리>에 등장하는 아밀스턴 양 요리, 윌리엄 아이리시의 긴박감 넘치는 소품 <색다른 토끼스튜 (손톱)>의 토끼스튜 등 명작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쓰이기 때문에 추리 애호가로서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맛'보다 '머리'로 즐기는 것이라는 아밀스턴 양 요리에 대한 설명과 마지막 결말의 서늘한 느낌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1인칭의 일기 형태로 작품을 진행시킨 것은 불필요한 설정이라 생각되며, 전개도 지루한 편이라 마지막 반전의 맛이 부족한 것은 좀 아쉽네요. 그래도 "기묘한 맛"류의 작품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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