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엔젤 - 가사이 기요시 지음, 송태욱 옮김/현대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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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주요 참고인 앙드레가 호텔에서 폭사하며 조제트, 뒤 루아가 연이어 시체로 발견되어 사건은 오데트의 돈을 노리고 조제트와 뒤 루아가 벌인 범행 (앙드레는 꼬투리를 잡고 협박하다가 살해당함)으로 잠정 결론 내려지는데...
가사이 기요시의 데뷰작.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Mystery Best'에서 선정한 '일본 본격 미스터리 100선'에도 20위로 올라와 있을 만큼 이전부터 명성은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너버스 브레이크 다운>>에서도 같은 제목의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했었죠. 그 작품에서는 "엔젤"이 환상의 엔젤 피쉬와 한 여성, 두명을 중의적으로 다루고 있었지만...
명성에 비하면 국내 소개는 좀 늦은 편인데 읽어보니 명성에 값하는 점이 많더군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이라면 추리적으로 빼어나다는 점입니다. 처음 발견된 사체의 머리가 없는 이유, 호텔방에서 앙드레가 살해된 사건에서 겹겹이 짜여져 있는 교묘하고 거대한 트릭 등 사건에 관련된 추리적 장치들이 모두 상당한 수준입니다.
특히 '현상학 탐정'이라는 별명은 허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현상학을 활용한 추리가 돋보입니다. 특히 '본질직관' - 모든 사람들이 자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메커니즘 -을 강조하는건 굉장히 새로왔습니다.
또 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목 절단은 범죄의 은닉을 위한 의지이다, 그러면 범인은 목을 절단해서 누구한테 무엇을 숨기려고 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식으로 사건의 핵심에 맞는 정확한 추리와 단서를 독자에게 연이어 제공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독특함은 물론 추리적으로도 완성도 높고 독자에게 공정하기까지 하니 과연 명탐정은 명탐정이구나 싶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첫 사체의 머리가 없는 이유를 야부키의 입으로 추리 매니아들과 추리 소설 속 탐정을 공격하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잠깐 소개해 드리면
"이야기 속에서 상상 속의 명탐정은 머리 없는 시체에서 인간 교체 트릭을 인식할 수 없는, 개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경찰관들을 비웃지만, 사실상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그들 명탐정입니다. 절단된 인간의 머리에는 무한한 의미가 숨어 있고 무한한 기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이렇게 얼굴이 개인의 판별 수단으로 너무 많이 이용된 결과 기묘한 착각이 발생하게 됩니다. 인간의 두부에 새겨진 무한하게 다양한 의미 속에서 단지 얼굴의 개인성, 인칭성만이 특권화되어 두부라고 하면 얼굴, 얼굴이라고 하면 개인을 특정하기 위한 기호라는 직접적인 의미 침전이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발상을 고집하는 것 만큼 무자각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태도도 없습니다. 상상 속의 명탐정들과 나디아의 추리가 공유하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말이지 한번 새겨들음직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 역시 정체를 숨기기 위함으로 생각했는데 정작 진상은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전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으로 충분히 독자의 의표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또 관계자 앞에서 추리쇼를 펼친 나디아보다 우직하게 수사해 간 모가르 경정의 추리가 더 현실에 부합했다는 점도 역시나 의외성이 높았고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앙드레 살해 사건에 쓰인 복잡한 트릭도 볼거리입니다. 정체불명의 사라진 투숙객이 앙드레였으며 다른 모든 장치는 앙드레가 726호에 투숙했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진상은 의표를 제대로 깨 주네요. 여러명이 시간과 공간을 조작해 가며 치밀하게 펼친 공작이라는 점에서 설득력도 높아요. 모가르 경정의 가설 - 626호 남자가 공범으로 726호 열쇠를 바꿔치기 해서 밀실을 만들었다 - 도 그럴듯한 등 즐길거리가 참 많았습니다.
여러모로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도 눈에 띈 점입니다.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범행 동기가 "혁명"과 "조직"이며 무대 역시 프랑스라는 점이 그러하죠. 현상학에 바탕을 둔 야부키 가케루의 추리법 역시 철학 이론을 망라하고 있기에 작가의 전공과 무관하지는 않은 듯 싶네요. 열성적인 좌익 학생 운동가였지만 1972년 "연합적군 사건" 이후 전향하여 프랑스로 건너간 후 혁명과 학살에 대한 평론을 준비했던 작가의 작품다왔습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읽기가 쉽지 않아요. 친숙하지 못한 '현상학'을 들고 나온 탓에 현상학적 분석을 하는 부분들은 대체로 지루합니다. 가케루의 말투도 굉장히 장황한 편이고요. 다른 묘사들도 사실 뛰어나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디아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그리고 발표 당시에는 먹혔을지 모르나 지금 읽기에는 동기와 진범은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혁명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이 모든 범죄의 배후에는 비밀결사 '붉은 죽음'과 리더 마틸드가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러워요. 마틸드의 정체가 뜬금없이 드러나는 것도 당황스러운 점이고요. 이 정도 조직의 리더라면 경찰 수사에서 뭔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게다가 질베르, 앙투완에 앙드레까지 주요 인물들 모두 '붉은 죽음' 조직원이라는 것은 확실히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마틸드가 몸으로 유혹해서 이용한 것이라는게 더 설득력은 높았을거에요.
마지막으로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왜 프랑스가 무대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지방 유지인 뒤 라브낭가와 라루스가 인물들의 비틀릴 대로 비틀린 가족 관계는 고전 일본 변격물과 하등 다를 것이 없을 뿐더러 딱히 프랑스만의 특징적인 무언가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혁명을 핵심 동기로 다루고 있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당시 일본에도 적군파라는 강경한 조직이 있었으니 그냥 일본을 무대로 해서 썼다 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약간 작가의 잘난척 같은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장점, 단점 모두 명확한데 추리적으로는 확실히 괜찮았습니다. 몇몇 단점은 데뷰작이라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추리 소설 애호가분들께서는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빨리 작가 최고 걸작이라는 <<썸머 아포칼립스>>를 읽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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